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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역사
- 특징
3.1. 여타 개신교와의 비교
3.2. 가톨릭과의 비교
- 조직
- 대한성공회
- 기타
- 성공회 신자 혹은 성직자인 캐릭터
7.1. 가상인물
7.2. 실존인물
![http://news.anglican.ca/images/stories/449/449.jpg](http://news.anglican.ca/ images/stories/449/449.jpg)
聖公會
Anglicanism(잉글랜드 외 대부분의 국가),
Episcopal Church(미국[1]
,
필리핀,
스코틀랜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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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교회(Church of England)에서 기원한 개신교의 한 분파이다. 다만 다른 개신교 교파들과는 달리 가톨릭교회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 특징.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성공회'라고 부르는데,
**성/공회(聖/公會)이지성공/회(成功/會)**가 아니다.[2]
그래도
이혼은 성공했잖아
성공회의 의미는 성스럽고 공번된('보편적'이라는 뜻) 사도적
교회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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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개신교와도 다르고 가톨릭하고도 다른 독자적인 정체성과 형태를 지닌 교회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사실 종교적인 것보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훨씬 컸기 때문에 그랬다. 정작 성공회 신학자들은 그렇게 크게 취급하고 있지는
않지만[4]
아주 결정적인 분열의 씨앗을 잉태했던 것이 바로 **헨리8세의
이혼**문제였다.
하지만, 단순히 이혼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힘든 것이 당시 잉글랜드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크랜머 등 협력한
성직자들이 상당수였다는 점이고 이들이 영국 교회를 종교개혁적인 신앙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주도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 미사를 비롯한
전통이라는 이름에 유지되던 가톨릭적 관습에 깊은 회의를 느꼈고 동시에
섬나라 잉글랜드 교회의 독자적인 특성들에 이해하고
로마교회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당시 왕의 측근이었던 토마스 크랜머는 왕의 이혼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자신의 숙원이던
'성공회 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5]
'를 발간해 지금의 성공회 예배 형식인
감사성찬례의 원형을 만들었다.
어쨌든 헨리 8세의 원래 의도도 어디까지나 로마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교회조직을 만드는 것이지 영국교회 체제 전체를 전복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실제 개혁을 움직인 성직자들도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영국 교회만의 독자적인 신학을 정립하려는 의도였던만큼 사실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면
가톨릭적 외적 요소들에
루터교나
장로교의 교리를 조금 첨가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며 갈수록 넓어지는 스펙트럼을 가진 성공회 신학을 단순히 정의하기는 힘들다. 어디까지나 그 기원에 대해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므로 위에 적힌 말을 성공회 신자에게 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들은 거리낄 것 없이 성공회를 디스하고 성공회 신자는 이에
반박하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한가지 더 헨리 8세가 가톨릭적인 요소들을 용인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장로교식의 개교회주의가 헨리 8세가 원했던 목적들을 이루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평적 정치문화가 발달했던 스코틀랜드 교회가 장로교 체제 도입 후 최종적으로 주교감독제를 폐지한 것과 대비되게 중앙집권과, 어디까지나 국가교회체제 도입을 우선시했던 왕에게는 수직적 계서제의 주교감독제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때문에 초기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른바 '청교도'들이 종교탄압을 피해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났으며, 이들이 미국인의 선조가 되었다. 그리고 정작 영국 국교회이면서 메리1세나 제임스2세 같은 가톨릭 신자인 왕에게 탄압받기도 했다. 물론 그 시대를 제외한 대다수 시대에는 가톨릭이 탄압받았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이전 왕들의 잔혹한 종교탄압에 대한 교훈을 얻어 'Via Media'(중용의 길)이라는 모토가 성공회에 자리잡았다. 물론 그 당시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된 적은 별로 없지만... 여하간 이 모토 역시 성공회의 태생과 그 정체성, 현실적 제도와 맞물리면서 그야말로 '개혁하는 보편교회'라는 성공회의 모토를 한 마디로 압축하는 핵심이 되었다. 가톨릭적 전통과 외형을 보전하면서 신학과 믿음에서는 끊임없는 개혁을 추구하는 점에서 보수와 진보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포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후임 제임스1세때도 유지되어 스코틀랜드 출신의 가톨릭교도인 그도 주교제 아래에 움직이며 보편교회와 개신교회를 동시에 추구하는 성공회를 중심으로 국교회 체제를 강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올리버 크롬웰 시대에는 보수적인 장로교 문화로 주교제가 폐지되고 성공회 신학이 매우 급진적인 예정설로 흐르게 된다. 이후 한동안 국가교회의 정체성만 간신히 유지하다가 19세기 헨리 뉴먼 등을 중심으로한 옥스퍼드 운동으로 '보편교회'로써의 정체성과 가톨릭적 전통들을 다시 복원, 확산하게 된다.
이 시기 이후 성공회의 이른바 '고교회파'와 '저교회파'가 확연히 구분되기 시작한다. 고교회파는 소프트웨어상으로는 이신칭의와 유일구원설을 믿지만 하드웨어상으로는 가톨릭과 상당히 유사한 반면, 저교회파는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다른 개신교 종파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한국 성공회는 고교회파 중에서도 초하드코어 고교회파가 주류인 관계로 가톨릭과 하드웨어만 놓고 보면 구분되지 않지만, 모든 성공회가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독립전쟁과 함께 성공회 내에서도 근왕파의 보수성을 연상시키는 고교회파도 어느 정도 정리해 버린 미국성공회의 경우 위상도 높고, 영향력도 크고, 신자도 많으나 의례든 신학이든 장로회, 루터교와 훨씬 더 유사한 편이다.
넓은 신학적 저변을 가지고 있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점에서 성공회는 다른 교파에 비해 적극적인 교회일치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보편교회적 특성에서 로마 교황의 절대적 수위권을 거부하고 지역교회간의 자율과 권한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동방정교회와도 대화가 가능하고 신학, 교의적인 측면에서 개신교와 연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교회일치운동에 빼놓을 수 없는 교단이 되었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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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여타 개신교와의 비교 ¶
여타 개신교 교파들과 동시대에 생긴 종파이며,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왔고, 역사상으로 개신교 세력과 연대를 많이 하였기에 현실적으로는 개신교로 인식한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개신교 신문이나 잡지, 방송 중에서는 CBS 기독교방송에 끼어서 소개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교리나 교회제도 등을 보자면 다른 개신교와 차이가 많이 난다. 사도적인 보편교회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3중
성직제도(주교>신부>부제), 주교감독제의 교회제도, 5가지의 성사적 행위[6]
등 보편교회에서 찾을 수 있는 특징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의 이름에서와 표방하는 모토인 '개혁하는 보편교회'라는 말에서도 그 정체성이 짙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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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이 이런 탓인지 성공회는 하드웨어상으로는 많은 면에서 가톨릭과 유사하며, 차이점을 드는 게 빠를 정도이다. 가장 특징적인 점이라면 다른 개신교회와는 달리, 천주교의 **7성사**를 형식적으로나마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39개조 신앙고백 상으로는 세례와 성찬 2개의 성사만 인정하지만, 나머지 5개도 형식적으로 실시한다. 이를 성사적 행위라고 하는데, 성경에 없기 때문에 세례 및 성찬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기는 한다는 것. 물론 이런 성사적 행위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가톨릭과는 안드로메다급(일단 이신칭의가 기본 교리인 상황에서 고해성사에 대한 입장이 가톨릭과 같을 리가 만무하다.)이지만, 일종의 예식으로 형식상으로나마 실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주교,
정교회처럼 신자들이
**세례명**을 가진다.
7성사 가운데 나머지 5개도 성사적 행위라는 이름으로 살아 있기 때문에 세례나
제례에 대해서는 공교회들(가톨릭,
정교회)과는 완전 공유하고,
개신교에 대해서는 일부 인정한다. 다시 말하면
가톨릭,
정교회 믿던 사람은 다시 세례없이 성공회 신자가 될 수 있지만,
개신교 신자가 성공회 신자가 되려면
견진성사를 더 받아야 한다. 왠지 성년식을 2번
치르는 느낌이지만 넘어가자[7]
한국
천주교는 성공회의 세례를 인정한다.[8]``[9]
성공회의 예배양식 역시 비록 '성공회 기도서'의 영향으로 로마 형식의 미사와 세세한 측면에서 간소화되고 달라진 점들이 있으나 독자적인 '새럼 양식'의 전례와 미사를 연구하여 이를 조화시킨 감사성찬례가 있다. 기본적인 틀과 구조는 미사와 동일하며 이 역시 장엄전례로 드릴 경우 가톨릭 미사 못지 않게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자기 자신은 공교회(가톨릭, 정교회 등)를 주장하긴 하는데, 정작 다른 공교회들은 성공회의 공교회 속성을 부정한다.[10]
이는 가톨릭
측이 보기에 성공회가 에드워드 6세
이후 변경된 주교서품 예식이 원래 서품 형식 대신 개신교적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이로 인한 성공회의
사도전승 단절을
교황이 직접 선언해버렸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올리버 크롬웰 시대 주교제 폐지로 인해
더 이상 실질적으로도 주교직 전승이 끊긴 탓도 있었다. 이로 인해 동방정교회까지 이를 받아들여
개신교로 묶고 있는데다가 후술한
여성 사제 서품으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관계가 많이 소원해지기도 했다.
참고로 이쪽은 가톨릭과는 달리
정교회처럼 사제급
성직자들이 혼인가능하다.[11]
그러나
정교회 주교는 미혼자만
가능한 반면 성공회에서는 혼인한 성직자도 주교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 예컨대 2014년 현재 캔터배리 대주교인 저스틴 웰비는 결혼했고 아이도
6명이나 있다. # 참조. 물론
수도자는 결혼 못한다.
수도자 겸 사제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또한 가장 큰 특이점이라면, 여성 사제를 인정한다는 것. 다른 공교회들과 달리 여성이 사제의 일을 수행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모 마리아를 13번째 사도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고 또 그렇다고 해서 사제의 직위에 사도를 넣지 않는 것도 아니다. 비슷한 이유로 일부 국가에는 동성애자 사제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사제를 허용한다 되겠다.) 하지만 여성 사제를 인정했을 때 성공회 내부에서도 엄청난 반발이 있었고, 상당수 사제들이 천주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동성애자 사제를 놓고는 더 이상의 자세한설명은 생략한다
성공회 여성사제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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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비슷한 하드웨어 때문에 '영국 성공회(The Church of England)'가 성공회의 대표성을 지닌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공동체 내에서 역사적 대표성을 지닌 점을 빼놓고는, 어디까지나 '영국 성공회' 역시 '세계성공회공동체'의 일부이다. 간혹 로마 가톨릭 신자들이 세속적 정치체로서는 자국에게 충성하나 영적 지도자로서는 로마 바티칸 아래 있는 것처럼 성공회도 국교회 수장인 영국 왕실에게 영적 친교관계에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영국 왕실은 성공회 공동체의 일부인 영국 국교회, 사실 영국 전체도 아닌 잉글랜드 국교회의 수장일 뿐이므로 한국인, 미국인까지 갈 것도 없이 같은 영국 내 웨일즈나 스코틀랜드 성공회 신자도 영국 왕실과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없다.
이 '세계성공회공동체'는 지역, 국가별로 독립적인 성공회 관구들이 공통의 신앙을 가지고 연대한 조직으로 이를 통해 성공회는 스스로를 보편교회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성공회의 출발점이자 지금도 영국 성공회의 정신적 수장인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전체 세계성공회공동체의 정신적인 지주로 의장주교의 역할을 수행하며 전체 성공회 입장을 조정한다. 이런 점 때문에 운영방식은 10개의 독립교회를 중심으로 각 교회의 최고 주교가 각 지역에서만 자치권을 행사하며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는 동방정교회의 운영과 매우 흡사하다.
캔터베리의 대주교는 특별히 세계성공회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노력의 의무를 지녀 10년마다 전체 성공회 주교들의 회합인 '램버스 회의'를 주관한다. 어디까지나 의장주교이며 정신적인 수장을 맡는다는 점에서 수많은 지역 성공회들에게 권고와 자문 정도만 할 뿐이지 그 역시 캔터베리 관구를 제외한 다른 성공회들의 신학, 조직, 재정 등의 문제를 치리할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 관구가 하나의 독립교회로 역할하기 때문에 비록 10개로 나뉘어져 있다곤 해도 어느 정도 계서화된 시스템을 구축한 동방정교회에 비해 지역교회에 독립성이 더 크며 이론적으로 같은 나라에 있어도 관구 자체가 다른 지역교회와 별도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며 나아가 다른 성공회 공동체와 연결을 단절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성공회가 동성애자 사제 진 로빈슨(Gine Robinson)을 주교로 서품하자 이에 반발하는 보수적인 교구들이 전부 미국성공회를
탈퇴하는 일이 벌어지고 새 성공회 공동체를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이후 있은 램버스 회의에서 보수적인 교구들이 전부 불참을
선언하는 일이 빚어졌다. 교구-관구-교황청 순으로 누층적 교계제도를 이루는 가톨릭에서 일개 교구가 공동체를 탈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전에 파문 당하지 않나
이러한 분권화 경향에 캔터베리 관구도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세계성공회공동체 계약서'를 전 관구에 배부하여 이를 승인하여 공통적인 신앙과 보편교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4%B1%EA%B3%B5%ED%9A%8C?action= edit§ion=7)]
한국에도 소수이지만 신자가 있다. 다른 영미권 계통 개신교처럼 구한말인 1889년에 첫
선교가 시작되었으니 생각보다 일찍 들어오긴 했다. 대한성공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2011년 2월말
현재 5만여 명의 국내 신자가 있고,[12]
3개 교구(서울교구, 대전교구, 부산교구)와 100여 개의 성당이 있다.
서울특별시
시청역 3번출구
덕수궁 옆에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과 성가(聖架) 수녀원이
있으며[13]
, 구로구 항동에는
**성공회대학교**도
있다. 성공회대학교는 대한민국의 기독교계 대학교 중에서
한신대학교와 함께 신학과 사회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가장 진보(?)적인 학풍으로 유명하다.
한동안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관구 직할로 있다가 1967년 처음으로 한국인 주교 이천환 바우로가 착좌하면서 서울의 주교를 의장으로 하는 독자적인 한국관구(대한성공회)가 성립하였다.
2001년에는 대한성공회 최초로 여성이 사제서품을 받았다(민병옥 가타리나, 부산교구). 2004년 서울교구에서도 처음으로 여성 사제를 배출했으며(김기리 미리암), 2007년에는 첫 여성 수도사제도 탄생했다(오인숙 가타리나, 성가수녀회). 현재 대한성공회에는 대략 20여명의 여성 사제들이 있다고 한다.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4%B1%EA%B3%B5%ED%9A%8C?action= edit§ion=8)]
성향은 크게 3개로 나뉘어진다. 구교에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성공회 전례를 잘 따르는 '고교파', 사회구원과 진보신학 성향을 보이며 가장 진보적인 신학을 추구하는 '광교파', 주교제도를 거의 신경쓰지 않고 개신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저교회파'. 서울교구의 성공회 교회들은 거의 고교파이고, 지방으로 갈수록 저교파 성향이 진해진다. 참고로 저교파 그룹은 감리교가 처음 생길 때 존 웨슬리를 따랐지만 선교적 사정으로 별도의 교회로 갈라질 때 나가지 않은데서 그 유래가 있다.
아무래도 다른 개신교 교파와는 달리 천주교와 크게 다른 점이 없기에, 옛날부터 천주교와 합치자는 얘기가 있었고 몇차례 긍정적 합의를 보기도
했으나, 여성사제 인정 등 여러가지 문제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가톨릭 측에서 일단 '결혼한 성공회
남성 사제를 조건부 인정한다'는 전제를 파격적으로 내세운지라 다시 적극적인 논의가 되고 있지만 대한성공회는 이러한 의사를 부인하고 있고 거의
나라별로 분권화가 이루어져 있으며 [14]
영국 감리교와 성공회가
합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결론내기는 힘들어질 듯 싶다.[15]
앞서 말했듯 가톨릭 사제가 성공회로 가거나, 거꾸로 성공회의 보수적
사제들이 가톨릭으로 가는 외국 사례는 매우 많았고 국내에서도 아주 없는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성공회대학교의 학풍이나 장로교의 기복신앙과 기득권 지향적 면모와 대비되는 등의 영향으로 성공회가 진보적이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는 종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다만 성공회 자체에는 위에서 서술되었듯 신학적인 입장이든 세상에 대한 입장이든 진보도 보수도 모두 존재하며 딱히 진보적인 종파는 아니다. 물론 가톨릭이나 근본주의 개신교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여성 사제, 동성애자 사제 인정 등 성공회 자체에도 혁신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하튼 한국에서는 젊은 신학생들을 중심으로 사회운동 등을 거치면서 교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진보적인 기독교 종파 중 하나로 꼽히는 편이다.
이렇기에 가톨릭과 합치자거나 유사성을 강조하는 입장은 국내 성공회 신자들에게는 크게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편이다. 가톨릭에서 결혼한 사제는 인정해도 여성사제는 인정할 가능성이 희박한데다가, 국내 성공회 신자와 사제 중에 민중신학 등 진보적 신학에 관심 가졌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사람이 많은데 역시 가톨릭 주류와 잘 맞지 않는다. 물론 형식적인 면에서 가톨릭의 전례와 유사하기는 하지만 형식은 형식일 뿐.
하지만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서는 성공회 신자 수가 많으며 기득권 교단에 속한다.[16]
DC에 가면 미국의 '국립' 성공회 성당도 있고, 성공회 신자인
대통령이 가장 많이 나왔을 정도로 메이저 종교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사회적인 스탠스나 대통령 배출횟수나 가톨릭이 마이너하다. 다만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크니 지역별 편차가 강해서 이건 간단하게 일반화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단 단일 종파이자 조직력으로는 미국 내에서도 가톨릭이
가장 크고, 남부와 중부로 내려가면 미국 성공회가 속한 '메인 라인 프로테스턴트'[17]
가 아니라 남부
침례교로 대표되는 보수적 복음주의 개신교의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하다.
동북부 자유주의적 개신교 중에서 가장 영향력 강한 편인데, 역으로 말하면 남부나 중부 같은 미국 내에서도 오지로 나가면 리버럴 빨갱이들이랑
타협하며 주교제를 유지하는 이단이라고(…) 까인다[18]
.
여담으로 나이지리아 성공회는 영국 성공회 다음으로 가장 큰 교회다. 사실 남아공의 투투 주교도 여기에 속하고, 자메이카에서도 위상이 큰 듯이 대영제국에 속했던 식민지 중 힌두교나 이슬람이 이미 토착종교로 깊이 뿌리 박혀 선교가 잘 안 된 곳들, 즉 인도나 이집트 같은 곳을 제외하면 옛날 영국이 있었던 곳에는 성공회 또한 상당한 발자취가 있는 편이다.
대한성공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함께 1957년 이래 연세대학교 이사회의 일부를 구성하는 파송교단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던 것이 97년 이후 20년 가까이 이사장을 지켜오던 방우영의 말기인 2011년경 기장교단과 함께 파송재단에서 빠지게 되었다. 언더우드 가문의 후손들과 성공회 차원에서 항의할 정도의 사안이었으나 여론의 주목은 받지 못하였다. 현재 연대 이사회에서 참여하는 기독교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이며 공식적인 교단의 파송이사인지, 교단을 대표한 개인자격의 참여인지는 추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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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4%B1%EA%B3%B5%ED%9A%8C?action= edit§ion=11)]
- 엘리자베스 2세
잉글랜드 성공회 수장이니 당연한것 아닌감? - 김승연 - 한화그룹 회장.
- 시몬 마사토 - 일본의 에니메이션 주제가 가수
- 이재정 - 정치인, 성공회 신부로, 참여정부 하에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통일부장관을 지냈고 2014년 6월 4일 경기도 교육감으로 선출되었다.
- 알리 - 가수. 세례명은 세실리아.
- 조지 워싱턴 -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이신론자 겸 성공회 신자였다. 이외에도 제임스 매디슨, 존 타일러 등의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인물들은 대부분 이신론자이거나 이신론자 겸 성공회 신자였다.
- 프랭클린 D. 루즈벨트
- 조지 부시
- 윈스턴 처칠
- 마가렛 대처
- 존 뉴턴
- 데스몬드 투투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이자 성공회 대주교.
성공회 대주교가 성공회 신자가 아니면 뭐겠냐먄은.
\----
[1]
미국 독립후 Anglican이라는 말이 영국 왕당파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Anglican 대신 Episcopal로 바꿔 쓴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대부분의 성공회 교회는 중립을 지켰지만, 일부 왕당파 성공회 성직자들은 박해를 당하기도 했다.[2]
표준발음법상 '성'을 장음으로 발음한다. '성스럽다'는 의미의 한자 '성(聖)'은 장음으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 즉, 4대 성인의 '성인(聖人)'은 장음으로[
성ː인]
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으며, '어른'이라는 의미의 '성인(成人)'은 단음으로[
성인]
으로 발음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장단음의 구별이 많이 사라졌지만…[3]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하나이고 거룩하고(성) 보편되며(공)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회)를 믿나이다"에서 따왔다. 좀 더 가까이로는 서방교회의 주요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교회(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와도 같은 것이다.[4]
이 시기까지 영국 천주교회가 대륙과 달리 갖춰온 독자성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는 편이다.[5]
공동기도문, 공도문이라고도 불렀으나 기도서로 용어를 통일하였다[6]
성공회는 신앙고백 상으로는 세례와 성찬 2개만을 성사로 인정하며, 나머지 5개는 성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5개를 완전히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성사적 행위라 해서 형식적으로는 실시한다. 다만 가톨릭처럼 은총을 주입하는 수단이라느니 구원의 필수요소라느니 하지 않을 뿐.[7]
다만 개신교인은 성공회에서 미사와 성찬 참석을 할 수 있다. 이게 장로교나 감리교와 공동예배를 할 수 있는 이유이다.[8]
성공회 사제가 준 세례는 아무 이의 없이 인정한다고 공칙된 바가 있다.[9]
참고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선의를 가진 동방 정교회인은 누구든 천주교 7성사를 받는 것을 허용한다. 단지 정교회 측이나 천주교 측이나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하지 않을 뿐이다.[10]
가톨릭과 정교회는 서로 공교회로 인정한다.[11]
이거 때문에 가톨릭 성직자와 성공회 성직자가 친할 경우에는, 서로서로 놀리면서 산다고 한다.가톨릭: 결혼에 성공해서 성공회냐?/성공회: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해물론 이런 대화는 서로가 친할 때만 가능하다.[12]
인구대비로 볼때 극소수이지만 그래도 신도수가 5천여명밖에 안되는 루터교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볼 수 있다.[13]
주한**영국**대사관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사실 이 성당과 영국대사관 모두 예전 덕수궁의 원래 권역 안에 있는 것이다. 덕수궁 건물 중 하나인 양이재 건물이 주교관으로, 현재 대성당 경내 안에 자리잡고 있다.[14]
천주교의 바티칸과 달리 캔터베리로 대표되는 영국 성공회가 전세계 성공회를 통제하지 못하고 대개 국가별로 설정되는 관구의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특성이 가장 근본적 장애가 될 확률도 높다. 그래서 10년마다 전세계의 주교들이 모이는 렘바스 회의에 불참한다는 식의 행동이 가능하다.[15]
감리교는 성공회에서 갈라져 나왔다. 그러나 성공회가 예정설을 믿는 반면, 감리교는 예정설을 부정하고 자유의지에 의해 누구에게나 구원의 기회가 열려 있음을 믿는다.[16]
모 성공회 신자의 증언에 의하면 미국에서 성공회성당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신부가 다른 미국인 신자들과는 다 악수하면서 인사를 나누면서 동양인인 자신은 슬쩍 무시하고 지나갔다고 한다.인종차별하는 작자가 그리스도교 신부라니[17]
20세기 초중반 신정통주의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를 중심으로 신정통주의적 개혁을 받아들인 동북부 엘리트 위주의 감리교, 장로회, 루터회의 진보적 교회들과 성공회를 일컬으며, 이들은 대부분 동성애, 여성 사제 등의 사회, 종교적 이슈에 관하여 진보적 접근을 공유한다. 숫적으로는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개신교의 주류였으나, 레이건 정권 시절 미국 사회에서 68혁명에 대한 반동적 역풍이 불 때 복음주의 개신교에 역전당했다[18]
애초에 개신교 종파 중에서는 장로교, 루터회 등과 함께 종교개혁 당시 뿌리를 두고 있는 유서깊은 교회에 오래되어 봐야 19세기 영적 부흥운동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신학적, 의례적 얆음을 무마하기 위해 초대형 기업형 교회, 텔레비전 과시적 설교 따위에 강조를 두는 복음주의 계파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애초에 레드넥들이 뭐 역사성이나 정통성 같은 걸 고려할 만한 사람들이 아닌지라.[19]
팬들은 가톨릭이자 성공회 신자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