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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운.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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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고정운 (高正云 / Ko Jeong-Woon)

생년월일

1966년 6월 27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전라북도 완주군

포지션

미드필더 / 윙어

신체조건

177cm / 74kg

학력

이리고-건국대

프로입단

1989년 일화 천마

소속팀

일화 천마/천안 일화천마 (19891996)
세레소 오사카 (1997
1998)
포항 스틸러스 (1998~2001)

스태프

선문대학교 (2003 / 감독)
전남 드래곤즈 (2004 / 코치)
FC 서울 (20052006 / 코치)
성남 일화 천마 (2008 / 유소년코치)
풍생고등학교 (2010
2011 / 감독)

국가대표

77경기 10골

1989년 K리그 신인상

황보관(유공코끼리)

고정운(일화 천마)

송주석(현대호랑이)

1994년 K리그 MVP

이상윤(일화천마)

고정운(일화 천마)

신태용(일화천마)

1994년 K리그 도움상

윤상철(LG치타스)

고정운(일화 천마)

아미르(대우로얄즈)

**199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이기근

FW
고정운

MF
김현석

MF
이영진

MF
김주성

MF
최강희

MF
이상윤

DF
정용환

DF
박현용

DF
테드

GK
김풍주

**199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윤상철

FW
라데

FW
김경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황보관

DF
안익수

DF
유상철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사리체프

**199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황선홍

FW
노상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김현석

MF
김판근

MF
아미르

DF
최영일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사리체프

**199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안정환

FW
샤샤

MF
서정원

MF
고종수

MF
데니스

MF
고정운

DF
강철

DF
김주성

DF
마시엘

DF
신홍기

GK
이운재

전 축구선수 및 지도자이며 성남 일화천마레전드이자, K리그의 레전드.SPOTV 해설위원, 적토마

Contents

  1. 선수시절

1.1. 클럽

1.2. 국가대표

  1. 은퇴 이후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A%B3%A0%EC%A0%95%EC%9A%B4?action= edit&section=1)]

1. 선수시절 ¶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A%B3%A0%EC%A0%95%EC%9A%B4?action= edit&section=2)]

1.1. 클럽 ¶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으로 이리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9년 일화천마에 입단하였다. 입단 첫해 주전자리를 꿰차며 31경기 4골 8도움을 기록하며 그해 신인왕에 올랐다. 왼쪽 측면에서 저돌적으로 뛰어가는 모습은 흡사 적토마를 연상케 하였고, 그의 별명이 되었다. 일화에서 9시즌을 보내며 프로생활의 대부분을 함께 하였다. 1991년에는 40경기에 출장해 13골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자신의 득점 커리어에서 최고 기록을 세웠고, 그해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994 시즌은 최고 전성기였다. 21경기에 출장해 4골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작년시즌에 뒤이은 팀의 리그 2연패를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그 해 리그 MVP와 도움왕, 베스트 일레븐을 차지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1995년과 1999년에도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는 등 그의 활약은 꾸준하였다. 1997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세레소오사카에서 2시즌 동안 29경기 3골을 기록하였다. 1998년 포항스틸러스로 이적하며 국내로 복귀하였다. 포항에서 첫 시즌인 1998년 16경기에 출장해 5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특히 9월 5일 역대 최초로 40-40 클럽(40골 40도움)에 가입하는 대기록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1999년에도 21경기 9골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활약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출장기간이 줄어 2000년에는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였고, 2001년에도 4경기 출장에 그치게 되었고, 8월 5일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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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국가대표 ¶

1989년 5월 23일 이탈리아월드컵 예선 싱가포르 전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하지만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하였고,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포함되어 조별리그 전경기에 풀타임 출전하였다. 미국월드컵 당시 기존의 장점이었던 전진돌파력에 전술적인 움직임까지 크게 향상된 모습으로 스페인전에서 상대팀의 핵심수비수였던 나달을 퇴장시키기도 하는 등 모든 경기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으며, 2골을 넣은 홍명보와 함께 해외진출이 가장 유력한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레버쿠젠에서 눈독을 들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오퍼가 왔다 하더라도 구단이 반대하면 해외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던 시기라..) 이후 활약을 이어가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wik i/1994%20%ED%9E%88%EB%A1%9C%EC%8B%9C%EB%A7%88%20%EC%95%84%EC%8B%9C%EC%95%88%20 %EA%B2%8C%EC%9E%84)과 1996년 AFC아시안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였으나 이후 나이가 들며 조금씩 하향세를 탔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 엔트리에서는 제외되었다. (차범근 감독과 불화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같은 윙플레이어인 이상윤서정원이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워낙에 날아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레 밀려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가대표팀에서의 전성기가 짧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의 임팩트 있는 모습에 비해 저평가받고 있는 선수 중 한명이다.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A%B3%A0%EC%A0%95%EC%9A%B4?action= edit&section=4)]

2. 은퇴 이후 ¶

은퇴 이후 2003년 선문대학교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2004년 전남드래곤즈의 코치직을 맡았고, 2005년부터 2006년까지 FC 서울의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8년 성남 일화천마의 유소년코치를 맡았다가 2010년부터 2011년까지 풍생고등학교의 축구부를 지휘하였다.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가 2014년 SPOTV해설자로 데뷔하였다.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