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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화학.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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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氣化學
Inorganic Chemistry

Contents

  1. 정의
  2. 역사

2.1. 참고자료

  1.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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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 ¶

무기화학이 아니다
탄화수소를 기본 골격으로 하지 않는, 즉 유기화학에서 다루지 않는 다른 모든 물질에 관한 화학이다. 현대의 무기화학은 주로 분자 또는 초분자 수준의 배위, 유기금속, 또는 주족원소 화합물을 연구하며, 넓게는 무기재료화학까지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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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

'무기화학(inorganic chemistry)'란 단어 자체가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은 1830년대의 일이다.[1]

그러나 1830년대 이후 19세기가 끝날 무렵까지 화학 연구의 주도권은 유기화학이 틀어쥐고 있었고, 물리화학과 생화학이라는 새로운 분과가 각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자리를 잡았지만, 무기화학이 학문 분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까지는 수십 년이 더 걸렸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으로 후대에 무기화학으로 불리게 될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때때로 나타났다. 19세기에는 화학 분석의 발전으로 많은 수의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었으며, 멘델레예프(Mendeleev)는 1869년에 최초로 주기율표를 발표함으로써 무기화학이 잡다한 사실의 무질서하고 무미건조한 집합이 아니라 주기율이라는 규칙에 따라 정돈될 수 있는 분야임을 증명하였다. [3]

그러나 주기율표가 발표된 이후에도 수십 년간 무기화학은 유기화학이나 물리화학과는 달리 추상적인 이론이나 모델을 결핍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줄기 빛이 된 것은 베르너(Werner)의 금속 착화합물의 분자 구조에 관한 연구였다. 베르너의 연구 이전에는 외르겐센(Jørgensen)의 체인 구조 모델이 지배적이었으나, 베르너는 1893년 코발트 착화합물의 이성질체의 종류와 특성을 비교함으로써 팔면체 분자구조 모델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였다.[4] 또한, 히버(Hieber)는 1927년 이후 금속-카보닐 화학의 연구에 헌신하면서 유기금속화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5]

루이스(Lewis)와 폴링(Pauling)은 스스로 전혀 무기화학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화학 결합 이론은 무기화학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 폰 라우에(von Laue)와 브래그(Bragg) 부자가 19141915년에 개발한 X선 회절 분석을 비롯하여 19세기 말20세기 중반에 이뤄진 분광학, 전기화학 분석법, 전자현미경의 발달 역시 무기화학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한편, 학문으로서의 무기화학의 발전과는 별개로 화학공학 분야에서는 암모니아, 질산, 황산과 같은 다양한 무기화합물의 산업적 수요가 증가하며 이들의 대량생산 공정이 발달하였다. 대표적으로 1909년 하버(Haber)에 의해 개발되고 1913년 보쉬(Bosch)가 이끄는 BASF 연구진에 의해 산업화된 하버-보쉬 과정이 있다.

1950년대에 들어 비로소 샌드위치 화합물, 양자화학 통한 메커니즘 연구와 같은 새로운 연구 주제가 속속 나타나고 무기화학 연구자의 숫자가 증가하며 무기화학이 작지만 일반화학과 구분되어 하나의 분야로 자리잡게 된다.[6] 1951년에는 폴슨(Paulson)에 의해 최초의 샌드위치 화합물인 페로센(ferrocene)이 합성되었고, 다른 무기화학자들은 금속 착화합물의 반응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에서 내부권 메커니즘 (inner-sphere mechanism)의 발견과 같이 전에 없던 발전을 이뤄냈다. 1954년에는 리간드장 이론(ligand field theory)은 무기화합물의 메커니즘 및 광학적 성질 연구에 있어 중요한 진전이었다. 1955년에는 지글러-나타(Ziegler-Natta) 촉매가 개발되었고 이는 유기금속촉매 개발의 효시를 마련했다. 그 외에도 붕소, 규소 및 금속 수소화물에 관한 연구가 이 시기 활발히 진행되었다.

1960년대 이후 나타난 무기화학의 새로운 경향 중 하나는 생무기화학(bioinorganic chemsitry)의 발전이다. 1969년에는 로젠버그(Rosenberg)가 시스플라틴(cisplatin)의 항암작용을 확인했고 1970년대에는 콜만(Collman) 등이 금속단백질(metalloprotein)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1962년에는 기존에 화학적으로 비활성(inert)이라고 간주되었던 백금, 라돈, 제논 등도 화합물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한편, 1970년대 이후 재료화학의 발전으로 무기화학자들이 결정성 물질의 합성과 분석, 응용 분야에서 널리 활동하게 된다. 1970년대 후반에는 금속 클러스터 화합물의 화학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1985년에는 벅민스터풀러렌(Buckminsterfullerene)이 발견되었으며 이와 같은 성과는 나노과학의 태동에 기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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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참고자료 ¶

J. A. McCleverty, Highlights in inorganic chemistry over the last 100 years, Annu. Rep. Prog. Chem., Sect. A, 2004, 100, 3-13
J. A. Labinger, Up from Generality: How Inorganic Chemistry Finally Became a Respectale Field, Spring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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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징 ¶

크게 각 족, 주기, 원소의 화학적 성질에 관한 서술과 무기화학의 일반적 원리에 대한 탐구가 주된 관심으로, 전자를 descriptive inorganic chemistry라고 부르며, 후자는 physical, theoretical, 혹은 mechanistic 등의 접두사를 붙여서 칭한다.

탄소, 수소 및 주기율표상에서 그와 이웃한 원소들의 특징적인 화학적 성질에 의해 어느 정도 단순한 법칙에 기반하고 있는 유기화학과는 달리 주기율표 전체를 아우르는 이상 대단히 다양한 결합과 분자구조와 반응을 다루게 된다. 따라서 유기화학과 비교하면 물리화학적, 특히 양자화학적 배경지식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강조된다.

산업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분야로, 황산, 질산, 암모니아, 염소, 이산화티타늄과 같은 무기화합물 자체의 산업적 수요가 높을 뿐만 아니라, 공업적으로 사용되는 촉매의 대다수 역시 무기화합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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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organic chemsitry'란 말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1810년에 등재되었다.
  • [2]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1940년대까지도 학부에서 일반화학 수업 외에서는 무기화학을 접하기 어려웠다. 이는 무기화학이 초기에는 주로 독일에서 연구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3] 주기율표의 발명을 무기화학의 탄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4] 그러나 베르너의 성격이 너무 엄하고 권위적이었던 탓에 그를 추종하는 학파가 생기지 못했고 이로 인해서 무기화학의 전반적인 발전이 늦어졌다.
  • [5] 또한 히버는 1931년에 금속 수소화물을 최초로 합성했다.
  • [6] 전쟁 중에 많은 화학자들이 군수공업에 종사하며 무기화합물에 익숙해진 것도 한 요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