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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89년 10월 11일 (미국 하와이)
국적: 미국
신체: 183cm, 70kg
스폰서: 나이키 골프
학력: 스탠포드대학교
데뷔: 2005년 LPGA 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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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PGA에서 활약 중인 골프 선수. Michelle Wie. 한국 이름은
위성미.[1]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B%AF%B8%EC%85%B8%20%EC%9C%84?acti on=edit§ion=1)]
LPGA 데뷔 전 미국 아마 골프계를 평정하고 주목을 받았다. 당시 미국 국적의 LPGA 스타 플레이어가 적었고 다들 중견급이었기 때문에
미국 LPGA의 차세대 기대주로 기대가 엄청났기에 데뷔 첫 해(2005년) 나이키와 소니 등 세계의 유수 기업들이 앞다투어 스폰서가 되었고
1,00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금을 받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이는 그 당시 LPGA의 여제였던 아니카 소렌스탐의 계약금보다 약 2배 정도
많은 수치였다. 특히 미셸 위의 경우는 다른 여자 선수들에 비해 월등히 신체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성(性)대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레발기대가 많았고, 본인 또한 기회가 될 때마다 성대결을 시도할 것이라며 그 기대를 한층 더 증폭시켰다.
이렇게 화려하게 데뷔하고 금방 턱 하니 우승이라도 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시망똥망(...)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장타는 정말 쭉쭉 나갔지만 문제는 샷의 정확도가 엄청나게 떨어졌다는 것이었고, 멀리 나간 샷은 페어웨이 또는 그린을 벗어나 벙커에 빠지거나 풀숲으로 들어갔다. 본인 또한 주위의 과도한 기대에 부담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면서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05년 데뷔 후 Top 10에는 여러번 들었으나 우승을 기록하지 못했고, 종종 컷오프 탈락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기대는 서서히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 와중에 지속적으로 남자 대회에 출전하면서 성대결을 펼쳤으나 같은 여자 선수들도 이기지 못하는 마당에 신체 조건과 파워가 월등히 좋은 남자 선수들을, 그것도 프로 선수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가는 대회마다 컷오프 탈락하면서 "스폰서 때문에 남자 대회 나가는 것이 아니냐","LPGA에서부터 우승이나 해봐라" 등등의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딱 1번 남자대회에 컷오프를 통과했지만 한국에서 열린 대회라 참가선수들이 아무래도 유명선수가 적어서 운좋게 통과했다는 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남자대회만 나가면서 여성골프계에서도 안 좋은 소리를 했으며 골프여제 소렌스탐도 여자대회 우승부터 하고 나가라는 쓴소리를 했다.
그 와중에 부상과 학교 생활 적응 등이 겹쳐 미셸 위는 2007,2008년 완전히 버로우하게 된다.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신지애는 2008년과 2009년 3승을 연달아 거두는 등 LPGA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 된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2009년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래도 괜찮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우승하며, 생애 첫 LPGA 우승을 기록하게 된다. 사실 이전에도 슬럼프에 빠지기 전에는 Top 10에 여러번 들었었는데, 문제는 1~3라운드 잘 치다가도 꼭 4라운드만 가면 삽을 푸는 바람에 우승을 놓친 대회에 꽤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승의 맛을 봄으로서 앞으로 더 치고 나갈 가능성이 상승하였다.
2010년 CN 캐나디언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추가하였고 이후 자주 Top 10에 들면서 세계랭킹을 현재 10위까지 끌어올렸다. 학교 생활을 병행하면서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괜찮은 수준이다.
2012년 겨울 고질적인 문제 퍼팅을 해결하려고 허리를 90도로 굽히는 등골브레이커
기이한 퍼팅 폼을 시도 중. 그렇게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2013 크래프트 나비스코에서는 3퍼팅을 3홀에서나 했다!) 본인은
괜찮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고 있지만... 아마추어들에게도 퍼팅 폼의 타산지석(...)쯤으로 언급된다.
결국 학교 졸업 이후 잠재력이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치에 비해서는 매우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2014년 4월 20일 고향인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LPGA 3승째를 달성했다. 여전히 퍼팅을 포함한 숏 게임 자세는
그리 좋은 평을 듣고 있지 못하지만(...) 숏 게임 성적 자체는 의외로 상당히 개선되어 종종 상위권에 입상하고 있다. 참고로 2014시즌
독보적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계 뉴질랜드인 리디아고(한국명 고보경)와 미셸 위는 모두 한국인 부모를
두었으나 한국 국적으로 활동하지는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덕분에 경기를 감상하며 "역시 LPGA는 한국 세상이군"이라 여기던 한국팬들이
스코어보드에서는 성조기와 뉴질랜드 국기를 목격하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정작 한국 국적의 선수들은 아직 1승을 올리지
못했으며 박인비를 제외하면 대부분 개인적 부진으로 인해 분위기가 좋지 못한
상황.박인비도 세계랭킹 1위를 내주긴 했다
2014년 6월 23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메이저 대회 US여자오픈에서 2언더파로 우승하며, 2005년 프로 전향 이후 9년 만에 드디어 커리어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추가하였다. 시즌 2승이자 통산 4승째.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B%AF%B8%EC%85%B8%20%EC%9C%84?acti on=edit§ion=2)]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 국적의 한국계 미국인이며, 영어로 주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2]
와 어머니가 모두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도 곧잘 구사하며 의사소통에 크게 지장이 없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것도 1회에(...) 하지만 출연 후 부진에 빠졌고 '무한도전의 저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스탠포드 대학교에는 조기전형으로 합격하여 2007년 가을에 입학하였다. 원래 PGA, LPGA 선수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뛰어들어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 관례였는데 최근에는 대학을 포기하고 프로 생활에 전념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미셸 위는 학교에 졸업할 때까지 계속 다닐 것이며 학교 생활과 선수 생활을 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2008년 스탠포드 대학교의 농구 선수이자 미셸 위의 1년 선배인 로빈 로페즈와 사귄다는 기사가 나왔다. 결별 기사는 아직 나온 것이 없는 상황.
한국 언론과의 각종 인터뷰에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며 애국심을 나타내었고, 부모님의 고향인 전남 장흥의 주민들은 후원회를 결성하여 재정지원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미국 국적을 선택하며, 한국 국적을 포기하였다.관련기사
2011년 발효된 국적법은 선천적복수국적자에게 만22세 전에 국내에서 외국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쓸 경우 복수국적을 인정한다.[참고](http://usa-boston.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 ardread.jsp?typeID=15&boardid=9517&seqno=807826&c=&t=&pagenum=1&tableName=TYPE _LEGATION&pc=&dc=&wc=&lu=&vu=&iu=&du=) 국적포기가 미국에서 프로 골퍼로서 활동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은 아니었다는 얘기.
89년생인 미셸 위는 시기를 놓쳤다는 의견도 있으나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적용연령이 넘어선 경우에도 본인의 요청이 있으면 심사 가능하며, 미셸 위의 선택은 법무부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이루어진 것으로 완전한 본인의 선택이다.[참고](http://sports.khan.co.kr /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302272237526&sec_id=530201)
철저하게 상업화된 LPGA에서 살아남아야할 프로 골퍼로서 스폰서를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중론.
참고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의 보호아래 성장하며 정체성이 성립되었으며 앞으로도 미국에서 생활할 것이므로 여러모로 미국 국적을 택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리하다는 것이 골프계의 시각이다.[관련기사](http://sports.media.daum.net/golf/news/general
/breaking/view.html?cateid=5004&newsid=20130228071407732&p=sportsdonga)
애초에 미셸 위의 '고국행'은 스폰서가 주도한 수익성 마켓팅의 일환이었으나 국내언론은 이것을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고국방문 '으로 포장하여 보도하기에 바빴다.
이러한 한국 국적 포기 때문에 인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난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특히 누구와 비교하면서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그 누구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그동안 미셸 위를 응원해주었던 팬들의 일부 중에서는 배신당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훗날 미래에 미셸 위가 다시 한국에 온다 하더라도 국적논란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박근혜정부 초기 개각 인사에서 위스콘신 대학교 - 성균관대학교 - 국가미래연구원 라인을 탔던 사람들을 집대성했다고 하여 위성미 인사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당연히 미셸 위는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성시경 인사(성균관대학교 - 행정고시 - 경기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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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성미로도 해당 항목에 들어올 수 있다.[2]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미국의 대학 교수이고 할아버지 역시 서울대에서 교수를 지낸 학자집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