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a/Aceh_Regencies.png /416px-Aceh_Regencies.png](http://z1.enha.kr/http://upload.wikimedia.org/wikip edia/commons/thumb/b/ba/Aceh_Regencies.png/416px-Aceh_Regencies.png)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9/Flag_of_Aceh.svg /320px-Flag_of_Aceh.svg.png](http://z2.enha.kr/http://upload.wikimedia.org/wik ipedia/commons/thumb/3/39/Flag_of_Aceh.svg/320px-Flag_of_Aceh.svg.png)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서북쪽 끝에 있는 지역. 면적은 5만 8375km²이며 인구는 400만 명 좀 넘는 수준이고 중심지는 반다아체(Banda Acèh). 주민의 대다수는 아체인으로 이들의 언어는 인도네시아어보다는 참파에서 쓰였던 참어와 가깝다고 한다.
동남아시아 최초로 이슬람이 퍼진 지역으로 이슬람 왕국이었던 아체 술탄국이 번영했었던 지역이다. 포르투갈이 말라카해협 건너의 말라카를 점령하자 이슬람 국가들이 말라카 해협을 통과할 때 중간의 아체를 거쳐가면서, 그리고 후추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리즈시절엔 수마트라 섬을 거의 차지하다시피 할 정도. 그러나 1873년 네덜란드가 말라카 해협의 안정을 핑계로 아체에 쳐들어왔으며, 30여년간의 전쟁 끝에 아체는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아체는 인도네시아 독립 때까지 네덜란드에 저항해 1만 명의 네덜란드군이 사망했다.
1949년 아체는 인도네시아의 북부 수마트라 주의 일부가 되었으나 북부 수마트라 주의 주민족인 바탁 족은 기독교도일 뿐더러 아체인과는 언어도
크게 달랐다. 아체인들은 소요 사태를 일으켰고 결국 1959년 아체는 자치권을 가진 주가 되었다. 그러나 1968년
수하르토가 집권하면서 아체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지배가
강해졌고 인도네시아 정부와 결탁한 미국의 석유 회사가 아체의 석유를 착취해 갔다. 결국 1976년 하산 디 티로가 자유 아체 운동을 결성해
내전이 시작되었고 이 때 반군 진압 중
인도네시아군이 저지른
인권유린이 문제가 되었다. 90년대 말 인도네시아의 정정 혼란과 함께
동티모르의 독립에 고무된 아체 반군은 아체 주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공세에 들어갔으나 동티모르에 이어 아체까지 독립시킬 순 없다고 생각한 인도네시아는 이를 대군을 동원해 강경진압했고,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으로 아체 지역이 큰 피해를 입고[1]
반군에 대한 국제 사회의 외면이 계속되자 2005년 아체 반군은 독립을 포기해 내전은
종결되었다. 이후 아체에서 지방선거가 실시되어 자유 아체 운동 세력이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한편 2003년 이래로 샤리아를 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 원리주의 이슬람은 다른 지역,특히 사이가 나쁜 중앙정부과와 구분되는 정체성과도 같다.[2]
\----
[1]
남아시아 대지진 희생자 중 절반 가량이 아체에서 발생했다.
[2]
무슬림이 대세인 말레이시아가 오히려 더 세속적이고,무슬림이 약세이고 차별의 대상인 필리핀이나 태국 남부의 무슬림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엄격한 율법을 스스로 따른다.억압받는 자신들의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더 답답해보이는 원리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