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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폰 노이만.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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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von Neumann

출생: 1903년 12월 28일
사망: 1957년 2월 8일

“내가 두려워한 유일한 ​​학생. 취리히에서 폰 노이만을 포함한 대학원생(Advanced student)들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을 때, 나는 그곳에서 학생들에게 내가 어떤 가설을 만들었고 아직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으며 그것은 너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노이만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5분 후에 손을 들었습니다. 내가 그를 불렀을 때, 그는 칠판에 가서 증명을 적어 제출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폰 노이만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 포여 죄르지(Pólya György): How to Solve It(1957)

악마의 두뇌

Contents

  1. 개요
  2. 생애
  3. 성격
  4. 일화
  5.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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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부다페스트 출신의 미국인 수학자. 20세기의 수학자들 중에서 핵심적인 인물로 꼽힌다. 양자 역학, 함수해석학, 집합론, 위상수학, 컴퓨터공학, 수치해석, 경제학, 통계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걸쳐 큰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연산자 이론을 양자 역학에 접목시켰고, 맨해튼계획과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에 참여하였으며, 게임 이론과 세포 자동자의 개념을 공동 개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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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부유한 은행가 유대인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헝가리식 이름은 '노이먼 야노시 러요시(Neumann János Lajos)'이며, 독일식으로 쓰면 '요한 루트비히 노이만(Johann Ludwig Neumann)'이다. 1913년에 그의 아버지가 귀족 작위를 사서 이름에 귀족임을 뜻하는 '(von)'이 들어가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많은 양의 영재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어린 폰 노이만에게 개인 도서관을 선물하고 학교에 가기 전부터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영어, 고대 그리스어라틴어까지 가르쳤다.

어렸을때부터 수학, 언어, 암기의 분야에서 강한 능력을 보인 신동 이었다. 5세때 여덟자리수의 나눗셈의 하였으며, 8세때 미적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독해력은 매우 빨랐고 무언가를 암기하고 잊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1]] 노이만의 부모는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노이만의 암산 능력을 보여 주며 즐겁게 해 주기도 하였다. 상기한 암산 능력과 책 읽는 속도는 물론 전화번호부에서 아무 페이지를 한 번 본 다음 서번트증후군처럼 번호의 합을 알아내기도 했다. 동생 마이클은 형이 당시 인기 있었던 서술가 빌헬름 옹켄(Wilhelm Oncken)의 44권짜리 세계사 시리즈에서 그가 읽은 부분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십 년 후 폰 노이만의 동료 한 사람은 존이 옹켄의 책 중 한 챕터 전체를 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8살에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수업 내용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아무런 예습 없이 수업에 참여해 다른 급우들을 압도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여기서 훗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는 유진위그너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15살에는 유명한 수학 교수인 가볼 세고(Gábor Szegő)의 가르침을 받아 고등 미적분학을 접했는데, 가볼 세고와 노이만의 첫 만남에서 가볼은 노이만의 수학적 능력과 사고 속도에 대해 감명을 받아 울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19세에는 서수(ordinal number)에 대하여 논문을 냈다. 22세에 파즈마니 페테르 대학(Pázmány Péter University)에서 수학 주전공에 물리, 화학 부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수학자보다 공학자가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아버지의 생각으로 박사 학위와 동시에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Zürich)에서 화학공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20대에 《양자 역학의 수학적 기초》나 《집합론의 공리화》, 《에르고드 이론의 연구》, 《실내 게임의 이론》[2] 등을 저술해 당대 최고의 수학자 중 한 명이 되었으며, 이러한 업적으로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의 종신직 교수로[3] 초청받게 되었다. 특히 최초로 힐베르트 공간을 양자 역학에 도입한 《양자 역학의 수학적 기초》는 아직까지 판매되고 있다.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에서 1943년부터 맨해튼계획에 참가해서 고폭발성 렌즈를 발명했다. 폭축 렌즈라고도 하는데 이는 플루토늄을 이용한 팻 맨의 발명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었다. 2차대전 중에는 영국 수학자 G.I. 테일러와 함께 **폭발파(Blast wave)**에 대해 최초로 연구했다. 이후 다른 수학·물리학자들과 함께 이를 출판했으며 아직도 판매중이다. 또한 유체 역학에 관련해 최초로 **인공 점성(artificial viscosit)**을 정의했다.

1944년 게임 이론과 경제 행동》을 경제학자 오스카 모르겐슈테른과 함께 저술했다. 이 역시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는 서적. 이후로 게임 이론의 연구를 통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물이 여러 번 나왔다.

DNA, RNA의 존재를 최초로 예견한 사람이었지만 세부 사항을 완성하기 전에 사망하여 빛을 보지 못했다. 컴퓨터 연구에 뛰어든 이후로는 프로그램 내장 방식, 디지털, 이진법이라는 기본적인 골격을 만들었으며 순서도와 서브루틴, 몬테카를로법을 최초로 사용했다. 전산학과라면 배울 **병합 정렬(merge sort)**을 1945년에 만들었고, 최초로 컴퓨터 기반의 pseudorandom process를 연구했으며 그 결과로 Middle-square method를 창시했다. 또한 Randomness extractor를 최초로 연구해 Bernoulli sequence를 이용한 Von Neumann extractor를 남겼다. 그리고 수학을 사용해서 일기 예보를 하려던 노력은 이전부터 있었으나 최초로 컴퓨터를 이용해 기상 예측을 하려던 사람은 폰 노이만이다. 이산 구조 등에서 배우는 ALU(arithmetic logic unit)도 폰 노이만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다.

말년에는 인공 지능과 인공 생명에 관한 초기 연구를 남겼다. 그는 간단한 원칙만으로 스스로 진화하는 복잡한 프로그램을 구상했고 이를 오토마톤이라고 칭했다. 1949년에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에서 오토마톤에 대해 처음으로 강의를 했으며 나중에 Theory of self-reproducing automata를 발표했다. 폰 노이만이 만든 이 자기 복제 컴퓨터 프로그램은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라고 평가받는다.

1957년 방사능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골수암에 걸려서 사망했다. 이 때 그는 인공 지능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고 《컴퓨터와 뇌》를 저술하고 있었지만 이른 죽음으로 인해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특히 이 책에서 메모리 계층 구조가 필요해질 거라는 예측을 남겼다.

죽기 전 많은 후회를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방사능의 위험성을 간과하여 막을 수 있는 위험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육체적으로는 늙어갈지언정 지능은 더 좋아지고 정신은 더 또렷해졌다. 사망 전인 50대에도 뇌와 컴퓨터에 대해서 활발하게 연구 중이었으나 불치병인 암 진단을 받자 감정적으로 무너지고 매우 괴로워했다고 한다. 군사 기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병원에서 면회할 수 있었던 인물은 소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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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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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뛰어난 수학자의 성격하면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떠올리지만 그는 이와 반대로 매우 사교적이었다고 한다. 파티를 자주 즐기며 프린스턴 고등 연구원에서도 남들과 다르게 자주 파티를 열었다. 또한 대단한 반공주의자로 상호 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를 제안했는데 이 용어의 약자가 절묘하게도 MAD가 된 이유는 순전히 그의 유머러스한 성격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같은 점은 그가 만든 컴퓨터의 이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바로 Mathematical Analyzer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 MANIAC이다. 정말 남다른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고밖엔…….

반공주의자이자 군대와 연계된 연구가 많다는 점에서 그가 학문을 연구한 이유가 권력에 대한 욕심과 군대에 대한 동경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폰 노이만의 딸은 아버지의 연구에 대한 열정의 가장 큰 동력은 인류의 더 나은 삶이었다고 한다. 이는 그가 철저한 반공주의자에 보수적인 정치관을 가졌지만 냉전기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학자들과 친구들을 앞장서서 도와주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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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화 ¶

  • 어릴 때, 부유했던 집에서 파티를 하면 전화번호부를 통째로 외워서 읽어주는 묘기를 하였다. 또, 파티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이름, 주소, 전화 번호를 물어보고 집에 갈 때 문 앞에서 한 명씩 인사하면서 저 정보를 다 읊어줬다고.

  • 유진 위그너는 노벨상을 받을 때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존 폰 노이만이란 말을 했다. 기자가 위그너에게 “왜 헝가리에는 그렇게 뛰어난 천재가 많습니까?” 라고 물었다.[4] 이 질문에 위그너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천재가 많다니요? 천재는 오직 폰 노이만 한 사람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 뛰어난 수학자였던 포여 죄르지는 취리히 대학에 다닐 적 폰 노이만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예전에 그가 있던 클래스에서 강의할 때, 어떤 정리를 소개하고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며 아마 꽤 어려울 거라고 이야기했다. 폰 노이만은 5분 후 가만히 손을 들더니 칠판에 나와 증명을 바로 써 내려갔다. 그때부터 나는 폰 노이만을 두려워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 비슷한 일화로, 한 교수가 증명되지 않은 정리를 수업에 설명했는데 수업이 끝나고 폰 노이만이 증명한 종이를 들고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 동료가 어릴 때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읽은 《두 도시 이야기》를 암송해보라고 하니까 멈추라고 할 때까지 30분가량 외웠다.

  • 동료 물리학자인 아브라함 페이스[5]는 맨해튼 계획 후 오펜하이머 사건 때, 존 폰 노이만과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6]의 안 좋은 사이를 보며 오펜하이머가 폰 노이만의 재능에 대해 질투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고 서술했다.

  • 괴팅겐에서 다비트 힐베르트의 초청으로 강의를 하게 된다. 양자 역학의 형식주의에 힐베르트 공간을 도입한 인물은 힐베르트가 아니라 폰 노이만이다. 폰 노이만은 수학을 논리학으로 귀속시키려는 버트런드 러셀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시도를 냉소했고, 수학의 한 이론의 무모순성을 증명 체계 속에서 증명하려는 힐베르트의 시도에 역시 회의적이었다. 전자의 시도는 다수의 수학자들에게 별 관심을 끌지 못했고 후자의 시도는 쿠르트 괴델의 등장으로 불가능함이 밝혀졌다. 실은 폰 노이만 역시 괴델의 아이디어를 이미 생각해 본 적이 있었으나 힐베르트에 대한 존경심으로 그의 시도를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이해한 사람도 노이만 한 사람뿐이었다.

  • 또, 위의 물리학자가 쓴 일화로, 또 다른 뛰어난 수학자 친구가 며칠 동안 밤을 새서 푼 문제를 갖고 폰 노이만에게 장난을 치려고 문제를 풀었다는 것을 숨긴 채 같이 문제를 풀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폰 노이만이 문제를 순식간에 술술 풀어나가고 동료 수학자가 밤을 새워서 풀었던 가장 어려운 부분만 남겨놓자 화난 수학자가 답을 말하고 나가 버렸다. 1분 후 폰 노이만은 그가 말한 답이 옳다고 말한 뒤 30분 동안 어떻게 자신보다 빨리 풀었는지 고민하다가 물리학자가 사실을 이야기해 주자 그제야 웃으면서 밥 먹으러 갔다는 훈훈한 일화도 있다. 어느 부분이 훈훈한 거지.

  • 아브라함 페이스는 폰 노이만보다 위대한 인물은 만나 봤지만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으며 이는 그의 동료들도 동의했다. 참고로 아브라함 페이스는 천재들의 시대에서 유명한 천재란 다 만나고 다녀 본 사람이다.

  • 프린스턴에선 그가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터득한 외계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 이렇게 너무나 놀라운 재능을 가진 그를 두고 주변 사람은 혹시 그가 악마가 아닐까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 의견은 동료 수학자의 한마디에 의하여 각하되었다. “악마가 인간을 연기한 거라면 그렇게 연기를 못할 리가 없다.”

  • 아내와 영화를 볼 때면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뉴스는 정말 집중해서 봤으나 막상 영화가 시작하면 자 버렸다고 한다. 그 후 나와서 아내가 영화에 대해 물어보면 봤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즉석으로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한다.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였지만 영화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 폰 노이만이 자문을 해주었던 군사 협력 업체에서 복잡한 계산을 위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고민하다가 폰 노이만한테 물어봤는데 잠깐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보더니 "컴퓨터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라며 종이에 몇 줄의 식으로 완벽한 해답을 내놓고 사람들이 입을 떡 벌리고 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이제 밥 먹으러 갑시다" 라고 말했다.

  • 7개의 외국어를 모국어같이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으며 발음도 원어민과 흡사하였다. 어릴 때 영어를 배웠지만 미국에 오면서 좀 더 수준을 높이기 위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통째로 외우기도 했다.

  •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의 초창기, 개발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시작했으므로, 개발과정이 맞는지조차 혼란스러워했다. 이 와중에 누군가 '노이만에게 물어보자' 하여 개발자들이 몇개월간 연구한 수천 페이지의 문서를 들고가서 부탁을 했고, 노이만은 흔쾌히 들어주겠다 하였다. "그럼 몇주 후에 오면 될까요?" "아, 거기 잠깐만 앉아 보세요." 2시간 후 자료를 뒤적거리던 노이만은 종이와 펜을 들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설명은 완벽했다고...

  • 또 위의 미사일 개발 도중, 한 학자가 수백장의 보고서를 들고 폰 노이만에게 찾아감. 폰 노이만은 보고서를 앞 장을 엄청 빠른 속도로 읽더니 갑자기 뒤에서부터 대충 몇 장 넘기더니 "이 구상은 불가능합니다" 라고 말하고 곧바로 완벽한 설명. 하지만 그 학자는 납득하지 못하고 2달이나 더 매진해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세계 최고의 천재들이 모여 있는 프린스턴 연구소에서도 폰 노이만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물어볼 것을 들고 줄을 섰다고... (폰 노이만은 다방면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연구소에 머물지 않았다.)

  • 김나지움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어느 연구 기관이든 동료들은 압도적인 천재성을 인정했다. 신기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뇌세포가 노화는커녕 증식이라도 하는지 계산력과 암기력이 갈수록 좋아졌다고 한다.

  • 엔리코 페르미의 부인은 “조니(노이만의 애칭)는 뒤에서 험담을 듣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 비서의 책상 앞부분을 없애놓고 가끔씩 허리를 숙여 비서의 치마 속을 보는 취미를 가져서 비서가 마분지로 책상 앞을 가려 놓았다고 한다. 이런 변태 영감!

  • 누군가 “200마일 길이의 철로의 양쪽 끝에 서 있는 두 대의 기차가 시속 50마일의 속도로 서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때부터 두 기차가 서로 충돌할 때까지 파리가 시속 75마일의 속도로 두 기차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파리가 이동한 거리는 모두 몇 마일일까요?”라는 질문을 폰 노이만에게 했다. 폰 노이만은 1초의 지체도 없이 150마일이라고 대답했다. 질문을 한 사람은 실망하면서 “역시 당신은 속임수에 걸리지 않는군요. 대개 사람들은 이 문제를 무한급수를 이용해서 풀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매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간단한 논리를 이용해서 파리가 2시간 동안 움직인 거리를 알아내면 금방 풀리죠. 당신은 그렇게 풀어낸 거죠?”[7] 폰 노이만은 대답했다. “아뇨. 무한급수로 풀었는데요.” [8]

  • MIT 학생이 복도에서 폰 노이만을 만났다. 학생이 “실례합니다. 폰 노이만 교수님, 계산 문제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라고 묻자 폰 노이만이 자신은 바쁜 남자라며 빨리 하자고 했다. 학생이 이 적분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자, 폰 노이만은 잠깐 생각하고 답이 2π라고 말했다. 학생이 답은 알지만 그 과정을 모르겠다고 하자, 폰 노이만이 다시 본다고 하며 또 잠깐 멈춘 후 답은 2π라고 말했다. 학생은 당황하며 얻는 과정을 모르겠다고 말하자 폰 노이만은 “뭘 원하는 거야, 소니. 나는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풀었는데!” 아니 과정을 내놓으라고요

  • 언젠가 “현대 수학은 매우 복잡합니다. 당신은 과연 현대 수학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폰 노이만은 이 질문에는 그답지 않게 한참을 매우 신중하게 생각했다가 **“28퍼센트.”**라고 대답했다.[9] 앞으로 자신이 수학을 28%보다 더 안다고 하는 사람은 굉장히 부끄러워야 할 것이다.

  • 인생의 대부분을 불가지론자 혹은 거짓 기독교도로 살았지만, 죽기 직전 암으로 투병 중에 가톨릭에 귀의하여 가톨릭 신자로서 생을 마감했다.[10] 주변 인물들에 따르면 이러한 개종은 평소 건강할 때의 발언이나 태도와는 사뭇 동떨어진 일이었다고 한다. 그의 병자성사를 주관한 신부에 따르면, 그 자신은 개종으로 그다지 큰 위안을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 그 외의 수많은 성적 농담과 음담패설(…) 유명세에 비해 일화가 많이 안 남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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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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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그가 완전기억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 폰 노이만 본인,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이만은 대수롭지 않은 분야에는 무관심해 수십년간 거주한 집에서 접시가 담긴 찬장이 어딘지도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고 한다.
  • [2] 현재는 이 저작들이 모두 분과학문이다.
  • [3] 당시 유일하게 20대였다.
  • [4] 이런 우스꽝스런 질문이 가능했던 이유는 폰 노이만과 위그너를 전후해서 대략 같은 세대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대단히 많았기 때문이다. 폰 노이만과 위그너 등 친구들 여러 명이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이들은 '화성인들'이라고 불렸다.
  • [5]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닐스 보어의 전기를 썼다.
  • [6]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계획의 총책임자로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명이자 8개 국어로 시와 소설을 쓰고 클래식 작곡도 상당한 수준인 무시무시한 천재다.
  • [7] 쉽게 푸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기차가 서로를 향해 각각 시속 50마일의 속도로 이동하므로 200마일 떨어져 있는 두 기차가 만나는 데에는 2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파리도 경로와 상관없이 2시간을 시속 75마일로 이동했으므로 총 이동 거리는 150마일이 된다.
  • [8] 무한급수로 푸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파리와 같이 출발하는 전차를 A, 반대편 전차는 B라 할 때 파리는 전차보다 1.5배 빠르므로 파리와 B가 만나는 지점은 200마일×(1.5)/(1+1.5)=120마일이며 두 전차간의 거리는 200-80×2=40마일이며 걸린 시간은 120/75=1.6시간이다. 이 때 시간이나 파리의 이동 거리 중에 어느 것을 초항으로 잡느냐에 따라 방법이 조금 달라진다. 남은 거리가 40마일이므로 처음 거리의 1/5의 상태가 되며 이를 통해 공비가 0.2가 됨을 알 수 있다. 무한급수의 공비의 절댓값이 1미만일 때 초항/(1-공비)=무한급수의 합이라는 공식을 이용하면 1.6시간/(1-0.2)=2시간 즉 시속75마일×2시간=150마일 또는 120마일/(1-0.2)=150마일이다. 또한 짝수 번째 항이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고려하면 공비는 -0.2가 되는데 무한급수의 합은 총 이동거리가 아닌 파리의 현재 위치로 계산할 수 있다. 120마일×(1-(-0.2))= 100마일이 되며 정확히 중간 지점이 되므로 위의 과정이 맞음을 증명한다.
  • [9] 여기서 ‘고작 28%?’라고 의문을 품기 전에 잘 생각해 보자. 저렇게 구체적인 비율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은 수학이라는 학문의 100% 윤곽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답이다. 대개 ‘알면 알수록 자기가 모른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것이 학문의 길인데, 폰 노이만은 ‘나는 안다’고 과신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모른다’고 겸손을 떤 것도 아니라 찬찬히 생각한 뒤에 정확한(?) 값을 답한 거니…. 이건 뭐 호러 수준.
  • [10] 근데 가톨릭에 귀의하면서 파스칼의 내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까이고 있다(…)죽기 전에 믿으면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적당한 거 하나 골라서 믿은 거지요. 역시나 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