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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U-16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최진철 (崔眞喆 / Choi Jin-Cheul)
생년월일
1971년 3월 26일
국적
출생
신장
187cm
포지션
수비수
프로입단
1996년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팀
전북 현대 모터스(1996~2007), 241경기 18골[1]
국가대표 경력
1997~2006, 65경기 4골
2002년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2004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6년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지도자 커리어
강원 FC 코치 (20092011)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16 감독 (2014
**200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김대의
FW
유상철
MF
신태용
MF
이천수
MF
안드레
MF
서정원
DF
김현수
DF
김태영
DF
최진철
DF
홍명보
GK
이운재
**200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김도훈
FW
마그노
MF
신태용
MF
이성남
MF
이관우
MF
김남일
DF
최진철
DF
김태영
DF
김현수
DF
산토스
GK
서동명
**200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우성용
FW
김은중
MF
김두현
MF
백지훈
MF
이관우
MF
뽀뽀
DF
장학영
DF
마토
DF
최진철
DF
김영철
GK
박호진
- 소개
- 선수 시절
- 은퇴 후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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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선수이자 축구 지도자. 2014년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16 팀 감독이다. 큰 키를 통한 제공권
장악을 최대의 장점으로 이용하는 헤더형 수비수. 헤딩을 통한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득점력도 상당히 좋다. 클럽 출장 횟수 241회
18골[2]
, K리그 해트트릭 1회(!), 국가대표 65경기 출장 4골을 보유하고 있다. 98,99 두 시즌 동안에는 팀에 공격수가
부족해 공격수로 뛰었는데 두 시즌 동안 62경기 17골 8도움을 올리는 괜찮은 활약을 했을 정도. 전북 현대 모터스의 레전드이며 별명은
'전북의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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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시절
25세라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프로데뷔를 했는데 그 이유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먼저 상무에 입대했기 때문이었다.
수비수지만, 2002 월드컵 전에는 소속팀에서 공격수로 뛴적도 있었다. 당시 전북에 공격수가 변변찮았기 때문이었는데, 187cm의 장신을
이용해서 헤딩 플레이를 잘했고 골도 제법 넣었다. 문제는 이 시절에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 박건하, 노상래 등 기라성 같은 중견
공격수들에 이동국, 안정환, 박성배 등의 신예들이 바글바글 했기에 공격수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3]
2000년 초에 다시 수비수로 컴백했고, 괜찮은 수비수를 찾던 히딩크 감독의 매의 눈에 들어 늦은 나이에 대표 선수가 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홍명보, 김태영과 함께 스리백을 형성, 대한민국 사상 최고의 수비진을 선보이며 한국의 4강을 이끌었다. 커맨더형의 홍명보, 거침없는 파이터형의 김태영, 그리고 제공권 장악을 통한 헤더형인 최진철. 국내 수비수들 중에서는 그야말로 각 분야 최고의 수비수들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앞으로도 쉽게 보기 힘들 정도로 최고의 수비 조합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 36세의 노장이었던 그는 토고전에서 엠마누엘 아데바요르를 경기장에서
지워버렸고[4]
스위스 전에서 당시 스위스의 수비수인 필리페 센데로스와 충돌하여 안면에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5]
붕대를
동여매고 계속 뛰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 경기에서 2:0으로 패배,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그리고 헬게이트가
열렸다.
1996년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 2007년 은퇴할 때까지 햇수로 12년 동안 한 클럽을 위해 몸을 바쳤다. 전북의 2006년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에도 기여하며 다음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강원 FC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2011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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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은퇴 후 전북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거라 예상했지만 신생팀인 강원으로 갔다. 사실 은퇴할 때 그렇게 좋게 은퇴를 한 것은
아니었다. 최진철 선수 본인은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어했지만
최강희 감독과
구단이 은퇴를 종용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최진철 선수는 은퇴 이후에도 각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운한 감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더구나 최진철보다
1년 늦게 은퇴한 후배 김현수의 경우 선수 생활 은퇴 후 바로 구단 코치로 선임되며 최진철과 비교가 되었다. [6]
[7]
201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16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축구팬들에게 유명한 유망주 이승우와 장결희가 이 대표팀에 있는데, 현재
U-16대표팀은 이승우와 장결희의 기량에 있어 수준 차이가 나서 둘을 제대로 뒷바침 하지 못하는 상태.[8]
감독인 최진철도 이점에서
많이 답답했는지, 아시아 대회 중에 인상을 불편하게 찡그리고 있기도.
전통적으로 나이 조작을 하는 아시아팀들 때문에국제대회 성적이 빈약한 이 세대를 지도하느라 한층 늙어가시는
중.안습
그래도 조예선에서 3연승을 거두고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8강 상대인 일본만 꺾으면 세계대회에 진출하고 국민들도 기쁘게 하겠지만, 까딱 잘못해서 일본에게 지게 되면 월드컵때 획득한 까방권을 날릴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거기다 이승우가 이천수스럽게(...) 일본은 간단히 이긴다는 도발을 해버리는 바람에 지면 더 큰일나게 생겼다.
8강 경기는 일본이 상당히 전술적이고 조직적인 압박을 펼쳤지만, 한국선수들이 초반에 고전하다 개인기량으로 돌파를 하면서 전세를 전환시키기
시작했다. 선제골은 김정민과 이승우의 합작품. 후반에 이승우는 놀라운 60미터 드리볼 이후 추가골을 선보이며 승리에 대한 선포는 단순히
설레발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2골을 넣은 후에 일본은 총공세로 나왔고 한국선수들은 진영에 박혀서 설렁설렁 거리기만 했는데, 무더운 태국에서 성인도 아닌 유소년 선수들이
일주일에 3경기씩 치른 점을 생각하면 이해해 줘야 할 일이다.
아무튼 이 경기에서 최진철 감독은 전술적인 면에서 일본 감독에게 뒤진다며 비난을 샀다. 골을 만들어 승리를 따낸 것은 거의 이승우와 선수들의
개인 기량적인 면이 크다는 것. 하지만 이렇게 최진철 감독을 비난하는 이들이 막상 이승우를 두고서는 '감독이 이것저것 지시하는 한국 풍토에선
나올 수 없는 창의성'이랍시고 극찬을 하는 게 개그. 뭐 어쩌라고
사실 U-16 단계에서부터 압박이니 조직력을 강요하다간 오히려 선수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죽일 수가 있다. 일본이 패한 건 결국 선수 개인
기량이 전술을 뒷받침 하지 못했기 때문.
최진철 감독 개인이 밝히기로 일본전은 일부러 수비지향 전술로 운영했다고. 거기다 후반에는 이승우를 최전방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리면서
패스가 연계되고, 2선침투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일각에서 말하듯이 아무것도 안 하고 이승우의 공격력에 기대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것.
시리아전 7:1의 대승을 거둔 후에는 "7골 넣은거 크게 이상한 일 아니다."...라는 담담한 발언을 하셨다. 연습할 때도 애들이 전반보다 후반에 골을 더 많이 넣었기 때문이라는데, 대회 기간 중에 처음으로 최진철 감독이 벤치에 편하게 앉아서 실실 웃으며 바라본 걸 생각하면 말은 그렇게 해도 속으론 무척 흐뭇했던 듯 하다.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B5%9C%EC%A7%84%EC%B2%A0?action= edit§ion=4)]
2010년 KT에서 나온 CF 황선홍밴드 멤버로 발탁(?) 되는데 비하인드로 나온 장면에서 심각할 정도로 노래를 잘 못불렀다.(...) 그래서 나온 별명이 발창력 최진철.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나왔는데, 전국 노래자랑 버전, 미녀는 괴로워 버전 등이 있다.
김남일, 박지성과 더불어 히딩크 감독의 파격적인 선수 등용의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선수. 2002 한일 월드컵이 끝난 후에는 현대자동차 베르나 광고모델로 기용되어 전파를 타기도 했다.사실 최진철의 경우는, 히딩크 감독이 "왜 저런 선수를 여태 뽑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정도로 기량이 있었던만큼, '파격'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좀 그렇다. 천리마가 뒤늦게 백락을 만나 활짝 꽃을 피운 사례가 아닐까?
프로데뷔 후 은퇴할 때까지 전북에서만 뛰었기 때문에 전북 출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은 출생은 전남 진도이고 성장은 제주도에서 했다.
\----
[1]
정규리그만 집계[2]
정규리그+컵대회+FA컵+ACL을 합하면 333+@경기 30+@골. +@ 인 이유는 2004 ACL 출장기록과 2000년 이전 FA컵 출장기록이 집계가 안된다.[3]
당시 K리그 씹어드시던 울산 가물치 김현석도 대표팀에 명단 못 올릴 정도였으니 '공격수 최진철'의 자리는 더욱 없을 수 밖에.[4]
경기가 끝나고 아데바요르는 실제로 겨뤄보니 별로더라고 평하며, 골을 넣었던 단신의 선수가 훨씬 위협적이었다며 인터뷰를 했었다.[5]
센데로스 역시 경합과정에서 출혈이 보일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공격수와 수비수 모두 피를 흘렸지만 공격수는 환호하고 수비수는 고개를 떨구고 만다.[6]
최진철이 전북에서 12년 있었다면 김현수는 전북에서 6년 있었다. 전북에서 데뷔를 한 것도 아니고.[7]
상당수의 팬들이 팀 레전드에 대한 예우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은퇴식은 상당히 성대하게 치뤄주었고, 팀 운영은 어디까지나 감독과 구단의 재량이다. 강원의 수비력이 별로 뛰어나지 않은 걸 볼 때 최감독이 선견지명이 있었던 듯.그리고 얼마 안 가 이민성으로 코치가 교체...[8]
이승우가 바르샤 축구와는 다른 축구를 배우는 중이다 어쩌고 하는 서술이 있었는데 농담인 거야 명확하지만 애초에 이승우는 인천 팜에서 난 대형 유망주였는데 바르샤가 채간 것이다.그리고 뻥축이 나쁘냐 바르샤도 사비가 괴물인 거지 뻥축에 털리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