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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카제.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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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유래
  3. 상세

3.1. 시작

3.2. 대체 무슨 마약을 했길래 이런 정신나간 발상이 나왔나?

3.3. 반응

3.3.1. 일본인의 반응

3.3.2. 미국인의 반응

3.4. 조종사들의 심리

  1. 카미카제가 안 되는 이유

4.1. 수준미달의 조종사들

4.2. 수준미달의 비행기

4.3. 목표에 대한 인식 제로

4.4. 수준미달의 명중률

4.5. 결론

  1. 의미

5.1. 전술적 의미

5.1.1. 최악의 군사적 교환비

5.1.2. 승리하는 법을 잊어버린 자들의 전술

5.1.3. 구체적인 전술적 성과

5.2. 전략적 의미

5.2.1. 일본

5.2.2. 미국

  1. 이야기거리

6.1. 진짜 카미카제?

6.2. 미화

6.2.1. 일본제국의 전쟁범죄

  1. 카미카제를 거부한 부대

7.1. 343 해군항공대

7.2. 그 외

  1. 또다른 사례들

8.1. 일본 육해군

8.1.1. 인간 어뢰

8.1.2. 달려라 카미카제

8.2. 외국

8.2.1. 독일

8.2.2. 러시아

8.2.3. 영국, 이탈리아

8.2.4. 미국

8.2.5. 알 카에다

  1.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9.1. 실제 카미카제

9.1.1. 게임

9.1.2. 영화

9.1.3. 애니메이션

9.1.4. 기타

9.2. 모티브를 따온 듯한 각종 자폭

9.2.1. 게임

9.2.2. 애니메이션 & 라이트노벨 & 소설

9.2.3. 영화 & 드라마 & 특촬

  1.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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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Kamikaze, カミカゼ, 神風 신바람[1]

인류 역사상 가장 비상식적인, 전면전에서의 대규모 자폭명령 및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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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링 닮았다.
출전하기 전 신사에 참배하는 카미카제 대원들.
신이 참 좋아하시겠다.(...)

#

카미카제 영상

神風. Kamikaze 또는 Divine Wind. 일본어로는 글자 그대로 신풍, 즉 '신의 바람'이라는 뜻이다. 본래 정식 명칭은 신푸톳코타이(神風特攻隊,신풍특공대)[2]였다. 하지만 어떤 미국 기자가 어설픈 일본어 실력으로 카미카제 특공대라고 읽고 그렇게 써버려서 저 이름이 더 유명하게 알려졌고 나중에는 일본 뉴스의 내레이션에서도 '카미카제' 라고 읽게 되어 'kamikaze' 로 정착되었다. 그 뒤로 kamikaze는 자살공격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게 되었다. 대한민국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비꼬는 말로 '신바람 특공대'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선 보통 일본어 표기법을 위시한 가미카제나 뒤의 카제까지 탁음을 붙인 가미가제라는 표기로 더 유명하다. 이 카미카제만을 전술로 삼아 발족한 부대가 바로 저 유명한 카미카제 특공대(神風特攻隊). 요즈음의 일본 창작물에서 특공(特攻)이 곧 자폭 공격(...)을 의미하는 것은 대부분 이것의 영향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구사한 개돌 자폭 전술. 자살폭탄공격의 최종형이자 항공기 자살돌격이 아닌 자살폭탄공격의 시초. 미군에게 충격과공포를 선사하여 일본어 단어임에도 당당하게 영어권 사전에 등재되는 비범함을 자랑했지만 실체는 _정부가 나서서 주도한 강제 인간폭탄, 혹은 행정살인_에 불과하다.

비슷한 전술로는 볼가 박사,[크리퍼](/wi ki/%ED%81%AC%EB%A6%AC%ED%8D%BC%28%EB%A7%88%EC%9D%B8%ED%81%AC%EB%9E%98%ED%94%84 %ED%8A%B8%29), 인페스티드테란, 스커지, 맹독충 반자이어택이 있다.[3] 무엇보다도, 1) 국가가 주도하여 조직한 2) 전체주의 인간폭탄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어떤 사례와도 다른 악랄한 의미를 지닌다. 게다가 다른 전투 행위와는 달리, 충분히 교육받은 엘리트인 조종사들을 단순폭탄으로 소모한다는 점에서, 전쟁의 역사를 통째로 역행하는 막장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심지어 제대로 미친걸로 유명한 그 초막장 일본군부 내부에서조차도 처음 카미카제 특공에 대한 작전 계획을 받아들고는 _"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 말도 안 된다!!"_고 따질 지경이었으니 뭐 말 다했다. (...).[4] 사카이 사부로 같은 사람은 전후 대놓고 대본영을 **"개새끼들."**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을 정도였고 생존한 특공대원들도 국가가 강제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자폭했던 특공대원들이 남긴 유서도 국가에 대한 원망 혹은 조롱조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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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래 ¶

몽골 나라의 쿠빌라이칸이 주도한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wiki/%EC%97%AC%EB%AA%BD%EC%97%B0%ED%95%A9%EA%B5%B0%EC%9D%98%20%EC%9D%BC%EB%B3 %B8%EC%9B%90%EC%A0%95)에서 이들이 바다를 건너오던 중 태풍에 싹 쓸려버린 것을 말 그대로 의 가호라고 생각해서 생겨난 말로 두 번에 걸친 원정 모두 이 태풍 때문에작살났다. 물론 일본 역시 거세게 저항했지만 기후+멍청한 원나라의 병크였다.(...)

원나라의 원정군을 엿먹여주길 원했던 고려의 음모가 숨어있었다는 설도 있다. 굳이 태풍이 있는 늦여름에 대규모 함대를 보낼 가능성이 없으므로(...) 실제로 일본 정벌을 위한 선박 건조 등 온갖 뒤치닥거리를 담당한 것은 고려였으며 이에 대한 원한이 꽤나 깊던 상태. 그나마 고려군은 생존률이 높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 훌륭한(?) 음모론이다. 원나라 쪽의 음모론으로는, 10만이나 되는 남송의 잔당군을 원정에 보낸 것으로 보건대 귀찮아서 처리하기 곤란한 남송 잔당을 태풍을 빌어 고기밥으로 던져준 것이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 이쪽도 막장인데(...) 그러나 이는 말그대로 음모론이며 실제로는 시급한 정벌일정에 맞춰 독촉된 무리한 건조로 인하여 선박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명분도 실리도 없이 억지로 남의 나라 전쟁에 동원된 양산형 공밀레의 최후(...)

일본은 이 사건 이후로 오랫동안 '일본은 신이 지켜주는 나라다!' 라면서 자축하나 정작 그 시발점인 당시 가마쿠라 정권은 침략이 아니라 방어전인 만큼 몽골&고려 연합군과 싸운 무사와 영주들에게 별다른 봉토를 내려줄 수 없어서 무사나 영주들의 불만이 쌓이다 보니 얼마 안 지나서 몰락했다.

징기스칸 4에서는 한반도나 중국 대륙에서 일본으로 쳐들어갈 때 가끔 걸리는 재해로 여기 걸리면 병사는 사실상 모두 전멸하는 끔찍한 재해이다. 일본으로 하면 훌륭한 방어막이나 발동 조건이 우연이라서 일정하지 않고 무엇보다 가끔이라 그렇게 유용하지는 않다. 사실 쳐들어가는 입장에서도 여름만 피해서 일본에 쳐들어가면 되고 여름에 쳐들어가더라도 병사들을 물 위에 띄우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낮은 컴퓨터는 계속 맞는다 뭐 현실에서 그런 짓을 했으니깐

그러나 일본군은 이 이름을 자폭공격작전에 붙임으로서 현대적인(?) 최악의 막장 카미카제가 탄생하게 된다.신풍이 아니라 마풍 악풍 거기에 미풍약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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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세 ¶

카미카제는 전쟁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미사일이었다. 유도장치 역할은 조국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나선 파일럿이 맡았다. 사실 카미카제의 작전 성공률은 지극히 낮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적에게 겁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또한 눈에 보이는 성과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이들이 자아내는 공포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영국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항공모함전' 편.[5]

아직까지도 이들 카미카제 조종사들을 광신적인 국수주의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애국심보다는 그저 의무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출격했다.
- 히스토리 채널, <컬러로 보는 2차대전사> '항공모함과 카미카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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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시작 ¶

병사 개인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죽을거 적하고 같이 죽자식 자포자기 자살공격 사례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평양 전쟁을 예로 들면, 진주만공습 당시 일본 해군 조종사 이이다 후사타 대위가 탑승기가 피탄당하자 미 해군 항공대 기지 격납고를 향해 돌진한 사례가 있다. 결국 실패하고 땅에 처박혔지만, 전사한 이이다 대위는 그의 기체 추락을 목격한 미군들에 의해 용맹한 적으로 인정받아 비교적 정중히 장사지내졌다. 애초부터 죽으려는 미친 놈이 아니라, 어자피 기체 피탄으로 살 가능성이 없던 와중에 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적군인 미군에게도 인정받은 것이며, 이런 식의 최후의 자폭은 어느 문화권에서도 용맹한 죽음으로 칭송된다. 비슷한 예로 산타크루즈해전 당시 일본군의 급강하폭격기가 비행불능 상태에 빠지자 호넷에 돌진해 함교에 화재를 일으킨 사례도 있다.

미군도 마찬가지였는데, 미드웨이해전만 해도 먼저 공격한 미군 뇌격기 부대들은 자신들이 죽을 것 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돌입했다.[6] 뇌격기 지휘관 로프튼 헨더슨(Lofton R. Henderson) 해병소령[7]은 자신의 기체가 피탄당하자 일본군 항모 카가에 돌진했으나 미치지 못하고 바다에 추락했다. 그러나 이러한 뇌격기 편대의 전멸을 각오한 돌입에 일본군 전투기들은 고공을 비워둔 채 저공에 몰려 있었고,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아무런 방해없이 일본 항모를 잡아낼 수 있었다. 후에 뇌격기,급폭기편대의 시간차공격이 의도된것이었냐는 언론의 질문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답하기를 "죽을 것을 알면서 공격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은 없다. 자발적으로 돌입한 그들에게 우린 큰 빚을 졌다"라고 술회했다.[8] 이렇듯 군인이 죽을 확률이 농후한 작전에 투입되는 것이랑, 병사를 죽이기 위한 작전에 투입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즉 윗대가리들이 전투병으로 썼느냐, 인간방패로 썼느냐의 차이

그러나, 미군이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라고 부르는 1944년 6월의 필리핀 해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기동부대가 괴멸당한 이후, 일본군 일선 지휘관들은 알아서 부하들에게 자살공격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1944년 7월 21일, 일본의 군령부는 '대해지 제431호' 에 의거하여 특공작전을 정식으로 채용하였으며, 급기야 1944년 10월 5일 군령부는 **"지시하지는 않겠지만 현장의 자발적 공격은 반대하지 않겠다"**면서 자살공격을 정식으로 허가했다.

10월 20일에는 최초로 신푸 특별공격대가 편성되었다. 지시가 아니라며? 이후에는 아예 카미카제가 주공격이 되고, 기존 전투병기가 호위병력으로 전락한다. 아예 그냥 일단 닥돌해서 죽어야 하는 가이텐, 신요, MXY-7 오카 같은 특공병기를 주력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주로 태평양 전선에서 카미카제가 실시되었으나, 만주 쪽에서도 소련군을 상대로 간간히 실시했다는 말도 있다. 쿠릴 열도에 상륙하는 소련 해군의 상륙정을 대상으로 자폭한 전투기도 있었다고 한다
반달이다! 전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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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민간이건 군이건 광범위하게 **히로뽕**이 피로회복제로 유통된 전시 일본 사회상을 감안하면 이상할 건 없다(…).

어쨌든, 이러한 극단적인 발상을 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 F6F 헬캣, VT신관을 대표로 하는 연합군(특히 미군) 방공능력의 비약적인 향상.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더해 미해군의 방공전술이 무르익어 대공원형진을 내놓게 되면서 더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그 결과 전함 한 척이 수십 대의 일본군 전투기를 가볍게 학살해버리는 참극이 연출되었다.

  • 미드웨이 해전 이후로 조종요원 손실이 계속 늘어난 반면 조종사 양성능력은 당시 다른 참전국들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애초에 일본군은 함대결전사상에 취해서 단기결전만을 염두에 둔 전략 때문에 장기적인 조종사 수급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양성기관 수도 적었던 데다 폐쇄적이었고 거기에다 조종 능력과는 상관없는 사안에도 교육생을 탈락시키는 등의 병크까지 더해졌다.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의 전형. 그런데 이렇게 소수정예로 뽑아놓고서는 정작 일선에서의 발언권은 매우 적었다. 조종사의 손실을 키운 간접적인 원인. 덕분에 숙련된 조종사의 보충이 어려웠다.

  • 항공기 연료의 품질 악화가 발생했다. 이는 제해권 상실과 더불어 미군 잠수함들의 방해 같은 전황의 악화로 인해 동남아에서의 연료수급사정은 점점 악화되었으므로 송진등을 이용한 대체연료를 사용할 실정이므로 정상적인 연료를 쓸 때보다 엔진 출력도 약하고 자주 꺼지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이런 것은 항공기를 만들 재료에도 적용되므로 전쟁 후반기의 일본군 항공기는 세심하게 만들어도 저질 재료로 인해 상당히 위험했다.

  • 설상가상으로 항공기 관련 공업능력이 저하되었다. 여기에는 공장의 숙련공들조차 일선의 총알받이로 보내버린 일본군의 병크도 한 몫 했다. 일선 전투원 못지 않게 숙련공의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던 미국과는 아주 대조적인 상황이다. 이에 따라 따라 전투기의 설계, 제작이 난항을 거듭하여 원하는 성능을 낼 수 없게 된 것이다.

  • 초기에 밀어넣은 숙련된 베테랑 조종사들이 카미카제를 하면서 제대로 미 함대에 한 방 먹였다. 그래서 일본군 수뇌부는 이게 먹히는 작전인 줄 알고 계속 했는데 문제는 이 짓거리로 숙련된 조종사가 계속 죽어나갔으며 나중에는 갓 징집한 신병한테 꼬라박을 시키는 꼴이 되었다.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군이 품고 있는 부조리함의 결정체. 어찌나 말도 안 되는 작전인지, 처음 작전 계획을 들은 해군 장관부터 어이가 없어서 "이딴 걸 작전이라고 내놨냐?" 고 따졌으며, 첫 카미카제 출격 때는 호위를 요청받은 부대의 지휘관이 "그딴 미친 짓에 붙일 호위 따윈 없음" 이라며 대놓고 씹었다. 기어이 카미카제 전술이 정식으로 채택된 회의에서도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꽤 많은 지휘관들이 반대했으나 전황이 너무나 막장이었던지라 결국 통과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게 더 막장인데?!

더 기가 막힌 점은, 이딴 자폭행위는 중세 무사도를 기준으로 보아도 가장 금기시하는 행동이었다. 할복이나 옥쇄는 어디까지나 "명예를 택했다면 최후의 한 사람까지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어라" 였지 "네 목숨을 갖다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메이지 시기를 거치면서, 추신구라 같은 광기를 진짜 무사도로 착각한 '아가리 무사'(...)들이 생겨나고, 근대시기에 무사도의 의미가 순수한 인명경시에 대한 경외로 변질되었으며, 자신들의 체통과 보신주의에 목말랐던 군부는 자폭행위를 미화하면서 매우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부하들한테 이딴 명령을 내리고 뒤에 숨다니 무사도 다 팔아먹은 지휘관들이다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B9%B4%EB%AF%B8%EC%B9%B4%EC%A0%9 C?action=edit&section=6)]

3.3. 반응 ¶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B9%B4%EB%AF%B8%EC%B9%B4%EC%A0%9 C?action=edit&section=7)]

3.3.1. 일본인의 반응 ¶

전술했시피 처음에는 천하의 그 일본군부조차도 **"이딴 미친 짓을 작전이라고 내놓은거냐!?"**고 따질 정도였으니 당연히 이러한 정신 나간 공격방법을 모두 찬성한 건 아니라서 일본의 에이스 사카이사부로, 이와모토테츠조 같은 이들은 카미카제에 대해서 크게 비난했고 아예 아래의 세키 유키오나 전후의 사카이 사부로처럼 대놓고 "일본이 드디어 망하려고 작정했구나" 라던가 **"대본영은 미친놈들이었다"**라고 욕을 퍼붓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들은 그들 자신부터 카미카제를 미친 짓이라고 봤기 때문에 본인들이 지휘하는 부대에서 부하 개개인이 자의로 하겠다면야 몰라도 절대로 본인들이 나서서 부하들에게 카미카제를 하라고 지시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또 후술하겠지만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 못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자살 임무에 투입하게 된 조종사들도 많았다.

"카미카제는 일본 고래의 기습작전에 따른 것인데 한 번은 성공하더라도 10개월 동안 몇 번씩 시도하면 어떤 바보가 당하겠습니까? 덴노가 그걸 깨닫고 멈추도록 지시했어야 했습니다."
-사카이 사부로가 카미카제에 대해 한 말.

"죽으면 끝이야. 전투기에 오르는 건 '계속 날아올라서' 적기를 격추하기 위해서라고."
-이와모토 테츠조가 카미카제에 대해서 한 말.

"아직까지도 눈을 감으면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눈에 선한데 수많은 제자들이 카미카제 특공대로 끌려갔다. 어째서 일본군 사령부는 그런 어리석은 작전을 10개월이나 지속했는가. 모든 이들이 카미카제에 지원했다지만 죽으라고 보낸 겐다미노루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살아있다. 모두 거짓말쟁이들이다."

"나 같은 우수한 파일럿을 죽이다니. 일본은 끝장이야.[9] 난 굳이 몸으로 들이받지 않아도 놈들의 갑판에 폭탄을 명중시킬 수 있다고. 난 덴노라든가 일본 제국을 위해서 가는 게 아냐. 사랑하는 내 마누라를 지키기 위해서 가는 거지. 전쟁에서 지면 미국 놈들에게 내 마누라가 강간당할 거 아닌가? 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으러 간다. 어때, 멋지지 않나?"[10]
-첫 특공대원 세키 유키오가 기자에게 남긴 말.

"대일본 제국 카미카제 특공대의 일원으로 선발된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없다. 하지만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이고 제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작전이다. 자살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과연 전제주의 국가다운 발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 일로 반짝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패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카미카제 특공대원 우메하라 유지가 남긴 유서. 22세의 나이에 전사.

"그럼 병력을 소모하는 것뿐이 아닌가?"
-아키히토 덴노가 전쟁 중 피난처에서 카미카제에 대한 장교의 설명을 듣고 한 말이다. 당시 아키히토는 황태자 신분이었고, 초등학생이었다.

보면 알겠지만, 전쟁 이후 아예 대놓고 대본영을 미친놈들이라고 신랄하게 깠던 사카이 사부로뿐만 아니라 특공대원 당사자들조차도 대부분 미친짓이나 병력만 낭비하는 무의미하기 짝이없는 바보짓으로 생각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어린아이**도 아는 상식이었으니 말 다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멋지게 미군 대공포화를 피하고 무사히 미 해군 항공모함에 착함해서 항복했다고 한다.[11] 또한 폭탄이나 어뢰를 싣고 가서 평범하게 뇌격이나 급강하 폭격을 한 뒤에 그냥 돌아온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에 정신 나간 대본영과 일선 지휘관들은 "야 이 미친놈아. 가서 죽으라고 보냈더니 살아 돌아와? 네가 그러고도 황군이냐!" 하면서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답답하면 니들이 하던가 심지어 계속 돌아오는 파일럿들을 총살시키기도 했다. 덕분에 광기에서 벗어나서 전쟁에 회의를 느낀 파일럿도 있었을 정도. 카미카제의 창시자(?) 중 한명인 우가키마토메는 확실하게 명중할 자신이 있으면 그냥 폭격하고 귀환해도 되냐고 부하가 질문하자 "허가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고. 물론 일부 지휘관들은 카미카제가 상식을 초월한 미친 짓임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래, 잘했다." 면서 차마 카미카제를 실패하고 돌아온 이들을 질책할 수는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내일 또 가면 되지

그러나 어디에도 예외는 있는 법(...)

물론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은 공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 방법밖에 없었어요. 확실하게 적 함선을 공격하기 위하여 특공으로써 돌입한다, 그것이 베스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 NGC 다큐멘터리, '일본의 비밀무기 잠수항모 I-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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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미국인의 반응 ¶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자기 목숨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지 말이예요.

**조종사라는 고급인력을 무의미하게 소비하다니. 나였으면 그런 명령을 내린 놈을 그자리에서 쏴 죽였을 것이다. ** - 전후의 맥아더[12]

쪽발이들도 끝이군 - 윌리엄홀시

대체 어떻게 했길래 사람을 그렇게 간단히 죽게 만들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미합중국해군 장병들도 이러한 비상식적인 전술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일본군 군부가 바랐듯이 겁을 먹기는 커녕, 카미카제에 대한 경계감과 전투의지만 더욱 상승했다. 큰 위협요소를 발견하면 어떻게든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안 그래도 개전 직후부터 일본인들을 "Japs" 혹은 "Yellow Monkey"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경멸하던 차에 이러한 상식외의 행동까지 일삼자 일선 장병들은 일본군을 더이상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 때문인진 몰라도 미국의 대일전 포스터는 일본인을 뻐드렁니 튀어나온 노란 짐승, 혹은 '가죽을 벗길만한 사냥감' 등으로 묘사하는 등 매우 자극적으로 만들어졌다.뭐 적을 ㅄ만드는거야 선전 포스터가 다 그렇긴한데 #[#](http: //i.imgur.com/8ge1q.jpg)[#](http://www.ccis.edu/courses/HIST102mtmcinneshin1/w eek15/AntiJapanesePropagandaTakeDayOff.gif)[#](http://3.bp.blogspot.com/_QFBV7 bl6Zeg/S-RsVDMsouI/AAAAAAAAAkA/s1t8G6Tsfmg/s320/anti-japanese-propaganda- wwi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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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조종사들의 심리 ¶

이들은 일반인들에게는 보통 "절망적인 상황에서 천황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하던 광신도들" 쯤으로 인식되고 일부 일본 극우세력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 쯤으로 선동하기도 하는데 물론 진심으로 일본제국천황을 위해 죽으려 하는 광신도도 있긴 있었지만 대부분은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끌려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즉, 정말 자원으로 지원한다기보다는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태가 더 많았다는 것. 이를테면 행진식에서 가미카제에 지원하지 않을 조종사들을 보고 앞으로 나오라고 하는 등. 안 그래도 소집받기 전부터 황국신민 사상으로 온갖 세뇌를 당했을 사람들인데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앞으로 나갈까?

거기에 일본군 특유의 가혹행위와 겹치고 갈굼받다가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불명예나 해코지가 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다가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리고 결국에는 나라를 위해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나서게 된 것이다. 아래에도 나와있듯이 당시 특공대원들의 어록이나 일기를 읽어보면 당시 조종사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을 이런 상황에 몰아놓은 조국을 원망하면서 가는 조종사들도 꽤 많았다.

이들 중에는 외국어를 능숙히 구사하고 독일과 프랑스 철학을 전공하는 등 상당히 교육받은 대학생들도 있었다.[13] 맨발의겐에서도 이런 식으로 반강제적으로 끌려나온 가미카제 조종사들이 잠깐 나온다.[14] 결국 희망 없는 미친 짓으로 아까운 젊은이들을 날려버린 셈.

일본은 당시 청소년들에게 비행기와 파일럿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파일럿이 비행기를 타고 학교에 방문한다거나 소년잡지의 삽화, 소학교(현재의 초등학교) 부터 교과서 등지에 비행기 그림이 나오고 현재의 고무동력기마냥 만드는 법도 가르쳤다. 한마디로 파일럿=엘리트 라는 관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의 많은 조선의 소년들도 비행학교에 입학하여 훈련을 받다가 특공대로 끌려갔다. 몇몇은 전쟁이 끝나서 운이 좋게 살아돌아왔지만(...) 죽은 이들은 일제의 A급 전범들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

일본 극우들은 조종사들이 자랑스럽게 자폭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애국심이 넘치는 조종사들이 없잖아 있었겠어도,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연히 조종사들 상당수는 군중심리와 압박, 연좌제의 공포에 마지못해 임무에 참여하여 돌아버릴 판이었고, 심한 케이스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오줌까지 질질 싸면서 울부짖는 조종사들을 억지로 콕피트에밀어넣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정말 지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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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카미카제가 안 되는 이유 ¶

전투기로 충돌 테스트도 한다.[15]

처음부터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이지만, 일본군은 그런 짓을 했고 아까운 목숨만 내다버렸다. 그 이유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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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수준미달의 조종사들 ¶

카미카제를 하는 조종사는 대다수 긴급양성된 나는 법만 배운 초보 조종사였다. 실제로 카미카제 대원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수가 훈련 중 착륙 등 비행과정에서 사망했을 정도(...)무슨 스탈린그라드 전투소련군도 아니고 근데 더 막장이다 흠좀무기본적인 이착륙도 제대로 안 되는 병아리 조종사들이 바다에서 방향을 잡고 항로유지하는 고난이도의 교육을 제대로 받았을 리가 만무하다.

어차피 가서 죽을 건데, 항로유지나 돌아오는 방법은 몰라도 되지 않냐? 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목표까지 가는 길을 못 찾으면, 당연히 끝없는 태평양 수면에 카미카제 하는 결말이 된다. 그리고 귀환하는 법도 알고 있어야 했다. GPS 같은 건 당연히 없던 시절이었고 만약 있다고 해도 그 비싼 GPS 기기를 달아줄 지도 의문. 거기가 다 거기로 보이는 태평양의 망망대해 위에서 나침반의 방향과 몇 가지 측량법만 의지해서 목표물을 찾는다는 건 상당한 숙련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일제 말기에는 카미카제용 양성 조종사도 대단히 귀한 존재였다. 캐노피를 용접했다던가 돌아올 수 없게 편도 연료를 넣었다던가 하는 사례는 흔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런 짓을 안 해도 성공시 100% 사망하는 막장전략이니까. 실패해도 죽고

결국 선도기로 숙련된 조종사의 선도가 미군의 촘촘한 초계망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필수였다. 즉, 카미카제를 시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칠면조들을 선도해서 적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까지 선도해야 했는데... 비숙련자들을 이끌면서 자폭하러 가는 비행이 쉬운 일인지 어려운 일인지는 상상에 맡긴다. 자원 봉사라도 한 번 나갔던 경험이 있다면 알 것이다

심지어 숙련된 조종사도 고속기동하는 군함을 명중시키기 어려운데, 신참 조종사들이 폭격에 성공하는 것은 사실상 기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닥돌하게 만들면 비슷한 수준의 조종사가 폭격하는 것보다는 명중률이 더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명중률이 고작 10% 정도. 베트남전미사일 만능주의 쇼크를 가져온 AIM-7이 그보다 높은 11% 명중률을 보여준다 게다가 쇼미더머니를 치면서 물자를 쏟아내고 압도적인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던 미국과 정상적인 대결을 펼쳐서는 이렇게 해도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냥 미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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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수준미달의 비행기 ¶

말기에는 본토 결전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쓸 수 있는 기체를 온존하기 위하여 남아있는 복엽 연습기(이른바 '빨간 잠자리')를 특공작전에 투입하였으며 석유 부족 상황에서 가솔린이 아닌 알콜 연료로도 가동시킬 수 있다는 점도 이 기체를 쓰기 좋았던 것 같다. 덧붙여서 이 연습기를 이용한 자폭으로 구축함 1척을 격침시켰는데 이러한 구식 복엽기의 경우에는 VT신관이 작동하지 않거나 기관포탄이 명중해도 관통할 뿐이고 워낙 속도가 느려서 돌입이 용이해 의외로 전과를 올리기 쉬웠지만 반면 워낙 저속기인 데다가 무거운 폭탄을 억지로 탑재했기 때문에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

사실 카미카제 작전은 기본적으로 작전이라고 이름 붙이기 곤란한 데다가 기술 및 장비면에서도 원래 자살공격용이 아닌 병기를 임시로 땜빵질한 것에 불과하여 목적 달성을 더 힘들게 한 점이 있었다. 이는 일본군 수뇌부도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장 일본군답게 이들이 손을 댄 것은 카미카제 전용으로 만들어진 자폭병기를 정식편제 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병기가 바로 MXY-7오카다.

오카의 경우에는 자폭 공격에만 중점을 맞추고 기존의 카미카제가 폭탄 적재까지 해서 안 그래도 느린 비행기가 더 느려진다는 단점을 개선했다고 만든 유인유도식 미사일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조종하기 엿같으며 사정거리도 짧았고, 무엇보다 이걸 싣는 비행기가 허구한날 격추당하는저질기였다! 결국 오카는 발사까지 안전하게 자신을 호송해줄 수단조차 확보하지 못해서 이걸 싣고 날아오른 폭격기 모기와 함께 격추당하는 결말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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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목표에 대한 인식 제로 ¶

카미카제 특공대의 임무는 미 해군 항공모함에 자살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초음속으로 날아드는 대구경 함포탄에 얻어맞아도 작전이 가능하게끔 설계된 전함을 상대로 카미카제용 비행기의 폭약과 속력 따위로 충돌하면 아스팔트 위에 내던져진 달걀 신세가 된다(...)

문제는 조종사들이 날아가다가 **아무 배나 보이면 그냥 헤딩**했다는 것. 나는 법만 간신히 배운 신참 조종사들에게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조그만 점이 어떤 배인지 알아보는 적 함선 식별 등, 고급 행동이 가능했을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전방에서 레이더 피켓(picket) 임무라고 해서 레이더를 장착한 구축함들이 항모의 외곽을 둘러싸고 대공경계를 맡았는데[16] 해당 임무를 하던 구축함들이 더 큰 피해를 본 편이다.[17] 심지어 이 함선들은 나 항모 아님 이라고 써붙여 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안습. 게다가 미군의 대공화력은 압도적이었다. 카미카제가 공격하려고 해도 그 전에 전투기와 대공포로 이뤄진 철벽을 뚫어야 했다.

그나마 카미카제 특공대의 성과를 키운 것은 바로 미 해군 항공모함의 비행갑판이 목재였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실제 같은 시기 작전에 참여한 영국 항공모함도 카미카제 공격을 받았지만 피해는 미 해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이유는 영국 항공모함은 비행갑판에 장갑판이 깔려있었고 그 덕분에 카미카제 전투기가 들이받아도 그냥 납작한 팬케이크가 되고 말았으니(...) 팬케이크 된 잔해를 치워버리고 갑판 살짝 보수하고 물청소 한 번 하면 바로 작전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프라이팬에 뛰어드는 달걀' 이라는 비유도 있다.

대신 미군 항모는 현지에서의 응급수리가 가능했지만 영국 항모는 제대로 된 항공폭탄이 명중하는 등 일단 한 번 크게 손상되면 귀항해야 수리를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영국 항모들은 그 충격이 용골까지 그대로 전해지던 탓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뼈대가 뒤틀어지기 시작해서 결국 얼마 안 가 전부 폐기처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래도 사람 안 죽는 게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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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수준미달의 명중률 ¶

카미카제는 80~90도 사이의 고각에서 내려꽂힐 때 가장 높은 효율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사실상 급강하 폭격이나 다름없는데 이게 가능하면 이미 베테랑 파일럿이다. 숙련된 조종사는 충돌하기 직전에 폭탄을 분리해서 피해면적을 늘리는 (폭탄으로 인한 피해면적+항공기로 인한 피해면적) 신묘한 재주를 부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조종사는 다른 항모도 아니고 바로 '그' **엔터프라이즈**에 큰 데미지를 주기라도 했지(...) 물론,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군대라면 이런 재주를 부릴 조종사에게, 평범하게 공격하고 어떻게든 생환해서 다시 싸울 명령을 내려야 한다(...) 더욱 제정신이라면, 이런 고참들은 후방으로 돌려서 신병들 교육시키는 게 정상이다. 연합군은 사기 저하도 막을 겸, 어느 정도의 전공을 올린 베테랑들을 '강제로' 후방에 보내서 신참들을 교육했다.

이에 차선책으로 45도로 내려꽂는 방법이 나왔다. 가미카제 조종사들의 안습한 숙련도를 생각하면 이 정도가 그나마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그 각도로 가면 **대공포에 영락없이 요격당한다**는 점. 동료들의 희생 속에 간신히 연합군 전투기의 요격을 뚫고 들어갔다 치더라도 대부분의 햇병아리 조종사들은 본능적으로 이 각도를 잡고 달려들다가 대공포의 식사로 전락할 수 밖에없었다.

최종적으로는 수면에 최대한 붙어서 대공포의 사각으로 들어가 그 낮은 각도에서 그대로 격돌하는 방식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참조. 이는 햇병아리 조종사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공격 방식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 수면에 붙어 비행한다면 바닷물이 창에 튀기게 되고, 이 때문에 오랜 시간 비행을 하면 바닷물의 염분 때문에 전방 시야가 막혀버린다. 게다가 이 공격 방식은 장갑이 두터운 함선의 옆면, 즉 **때려달라는 곳을 때리는꼴**이기 때문에, 설령 제대로 박는다 하더라도 의미있는 피해를 주긴 어려웠다. 애초에 당시 항공기에 의한 폭격은 고공에서의 낙하 에너지를 이용해서, 함선의 장갑을 뚫고서 피해를 늘리는 방식이었는데, 전투기 자체의 질량 에너지와 별 거 없는 자폭용 폭탄 한두발 따위로는 수백kg급 전투함의 포탄이 초속 수 km로 직격해오는 충격을 견뎌내기 위해 설계된 함선의측면장갑에는 흠집 밖에 낼 수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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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결론 ¶

일본이 너무 급한 상황이라서 신형기 양산도 물 건너간 상황이었겠지만 저런 미친 짓을 할 인력과 자원으로 시덴카이 같은 신형기를 양산[18]하고 조종사 육성에 신경을 썼다면 좀 더 나은 결과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에게 좋아봤자 우리에게 좋을건 없었지만아니, 좋지 않은가) 적어도 히로시마나가사키원자폭탄 투하하러 오는 폭격기를 손가락만 빨면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만들라는 신형기는 만들지 않고 후방에서 신형 자폭기 제작시설이나 만들고 있었다.

사실 위에 언급한 시덴카이를 비롯한 신형기들은 오히려 최우선적으로 밀어주고 있던 기체들이었는데, 대부분 개발 이후에도 제대로 된 물건을 생산할 기술자체가 안 되었거나 만들고 있있는데 종전 하는 식으로 빛을 보지 못한다. 간혹 카미카제 전용기와 신형기 개발을 나치 독일의 전차 생산라인들이 서로 달라서 38(t)를 안 만든다고 4호전차를 더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과 동일 선상으로 보는 경우 있는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38(t)는 이미 생산라인까지 갖춰져 있는 것을 활용하는 선에 그쳤지만, 일본의 신형 자폭기는 그걸 만들기 위해서 생산라인을 따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식의 다품종의 생산으로 인해 단일설계당 생산량이 감소하는 것은 생각보다 생산성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즉 쓸데없는 자폭기 개발만 그만뒀더라면 신형기를 좀더 많이 생산할수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이런 물건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결국 카미카제 대원의 유서에 나온 대로 카미카제는 언 발에 오줌누기였을 뿐 절대로 현명한 타개책이아니었다. 시행 초기에는 일본군이 기대한 대로 큰 성과를 거둘 수는 있었지만 그나마 초기의 전과는 충격 요법과 함께 자살 돌격을 감행한 자들이 베테랑 조종사들이었기에 가능했지 신참들은 그야말로 불나방 신세. 제로센같은 구식기를 몰면서도 살아남았던 정예 조종사들을 이따위 자살 공격에 소모시킨 일본 대본영은 뭐 하는 놈들일까?뭐긴 뭐야 ㅄ이지 제로센으로 미군의 대공포화와 전투기를 피하면서 그 화망을 뚫으면서한대도 맞지 말라고 시키는데?] 전함에 충돌할 수 있을 정도의실력 있는 조종사라면 자살돌격 따위가 아닌 정상적인 공격으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자살공격이라는 특성상 베테랑 조종사를 잘 해봐야 1회의 공격 성공으로소모한다!!! 따라서 숙련된 조종사를 인간 미사일로 써버리고 훈련이 별로 안 된 신참 조종사만 양산하는 전략은 국가규모로 따지자면 우리 공군 좀 빨리 소멸시켜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하는 자해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합군의 응전 태세도 더욱 경각심을 주어서, 결국 일본은 하늘에서부터의 재앙두번이나 겪는다. 정권 유지를 위하여, 국민들의 목숨을 패전의 제물로 바치는 인간방패 전략으로 연명한 것이다. 그리고 망했어요.

뿐만 아니라 일본은 미국에 비해 훨씬 적은 인적, 물적자원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병력을 낭비해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짓에 엄청난 자원과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반면에 오히려 인적, 물적 자원이 훨씬 풍부한 미군은 전투 중에 추락한 조종사나 침몰한 배의 장병을 구하기 위해 주변 해역을 샅샅이 뒤져 구조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19] 결과적으로 이러한 인명에 대한 인식이 전쟁의 승패로 나타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유능한 인재가 전후까지 살아남았더라면 이후 재건될 때에도 그들의 노하우를 그대로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그야말로 국가를 운용하는 데 있어 필요한 최소한의 인식조차도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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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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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전술적 의미 ¶

![http://imageshack.com/a/img855/6945/2bjf.jpg](http://imageshack.com/a/img855 /6945/2bjf.jpg)

[JPG external image]

카미카제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CV-17 USS 벙커힐(에식스급 항공모함). 카미카제의 정말 몇 안 되는 성공 사례이다. 하지만 후술하는 것처럼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으며 그나마 효율성 자체도 더욱 떨어지는 결과였다.

카미카제 이야기가 나올 때는, 보통 형언할 수 없는 비인간성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카미카제도 일본군이 전술로 사용한 만큼 전술로서의 의미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 해군의 공간전사에서도 일단 엄연한 전술로서 인정하고 그 가치를 다짜고짜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참조하자. 물론 그들이 겪은 정신적 충격이 가시고 나서 느낀 인간적인 경멸을 빼놓지는 않는다.

1942년 과달카날전투 이전까지의 일본군 조종사의 숙련도는 대단히 높았다. 미 해군 함재기들의 공격을 뚫고 미칠 듯이 솟구쳐 올라오는 대공포의 사격과 미 해군 함정들의 현란한 회피기동 속에서도 30~40% 명중률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 물론 미군 함재기의 조종사들도 만만찮은 솜씨를 보였으니 대등한 전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1942~1943년을 거쳐 솔로몬 제도 상공에서의 처절한 소모전과 1944년 6월의 필리핀해전을 거치며 숙련된 일본 조종사들은 말 그대로 죽어나갔다. 반면 미군은 300,000명(...) 3만명도 아니고!? 의 조종사들을 본토에서 양성하고 있었다. 이 숫자는 14,000명 수준의 사단 20개 이상을 구성할 수 있는 수다.

더 무서운 건 1944년도부터 연합군은 이미 보유한 조종사만으로도 몇 년 간은 문제 없다 는 판단으로 비행학교 수를 줄이고 훈련시간을 늘려서 베테랑 조종사 양성을 도모하고 있었으며, 수십 회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베테랑들은 무조건 일선에서 물러나 후배들에게 자신의 생생한 노하우를 하루종일 훈련시키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중간탈락율은 비슷했고, 따라서 44년부터 미 해군의 신규 조종사들은 선배들보다 더욱 치열한 경쟁을 뚫고 조종사가 되었으며 최종기량도 더욱 훌륭했다. 물론 신형 전투기의 개발/생산에도 적극적이었고 마리아나의칠면조 사냥과 같은 일방적인 학살은 **일본군부의 카미카제 전략에 대비되는 당연한결과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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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최악의 군사적 교환비 ¶

반면 카미카제의 명중률은 숙련 조종사가 소규모로 동원되었던 1944년 말 필리핀 전역(戰域)에서는 40~50%, 카미카제로 쓸 숙련 조종사마저 고갈되어 꼬꼬마 조종사들을 대규모로 투입했던 1945년 오키나와전투에서는 14%의 명중률을 기록한다. 350기의 함재기가 출격하여 220기가 격추되고 명중탄은 단 1발밖에 기록하지 못한 1944년 6월의 필리핀해 해전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나아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오키나와 전투에서 총 1,900대의 특공기가 돌입해 33척의 적함을 격침시켰다고 한다. 일단 자료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침몰한 미군함도 21척 내지 26척에 불과하다는 자료도 있다. 그 밖에 280척 내지 360척에 피해를 주었다. 다만 이 피해도 대부분은 작은 상륙정이다. 그러나 이 자료를 순수하게 믿더라도 이오지마전투오키나와전투는 당연하게도 특공기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특공기만으로 이루어진 편대를 조직했다면 당연히 돌입하기도 전에 모조리 격추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폭격기를 호위하는 전투기 편대처럼 특공기를 호위하기 위한 편대도 출격했고 자폭이 아닌 폭격만을 위한 항공기도 출격했다.

문제는 여기서 1,900대라는 것은 순수한 특공기만을 의미하는 것이고 호위 전투기 편대와 폭격을 하기위해 출격한 항공기는 제외한 수치라는 점이다. 애초에 공습의 성과란 투입한 항공기와 손실된 전체 항공기와 적의 피해를 비교해서 따지는 것이지 순수 특공기만의 손실만 계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http://www.b-29s-over- korea.com/Japanese_Kamikaze/Japanese_Kamikaze12.html)

그럼 특공기와 호위기를 합친 전체 일본군의 손실은 얼마일까? 놀랍게도 오키나와에서만 모두 7,830대 이상의 항공기를 손실했다. 약 8,000대의 항공기를 소모품으로 말아먹고 겨우 33척을 격침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단순 비교로도 항공기 280대와 겨우 1척을 맞바꾼 셈이다.

더 중요한 건 격침시킨 33척 대부분이 군함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상륙정들이고, 나머지도 전략적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구축함이라는 것. 정말 위협적인 항공모함은 제대로 격침시키지 못했다. 그나마 경항모보다도 못한 호위 항모 2척에 큰 손실을 준 건 사실이고 이 2척의 호위 항모는 종전 뒤 폐기처분되긴 했다.

이것은 경제적으로도 전혀 남는 장사가 아니다. 항공모함만 100척이 넘어가던 당시 미해군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감안하면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자료도 역시 자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미 공군 홈페이지에 의하면 2,800기의 특공기(오키나와만이 아니라 일본의 모든 특공기 공격을 포함한 수치)의 공격에 의해 34척의 배가 침몰했다고 되어있다. 반면 일본학 연구자인 Bill Gordon에 의하면 47척이라고 한다. 이런 차이는 수리 중 침몰한 군함도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한다. 그래봐야 오십보 백보. 일본군이 뻘짓을 했다는 진실을 뒤엎는 정도는 절대로 아니다.

오키나와 전투 기간 전사한 미군은 12,281명인데 이 중 4,907명이 카미카제에 의해 전사한 해군 함정 승조원, 항공 요원들이다. 이것이 대단한 수치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금쪽같이 귀중한 자원인 항공기 1기+항공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욱 중요한 자원인 _조종사 1명_을 _고작 함정 승조원 3명_과 맞바꾼 셈이다. 고작이란 말이 거슬릴 수도 있겠으나 "인명의 소중함"의 문제 이전에 "전쟁의 냉정한 전략적/경제적/객관적 측면"에서 이미 이것은 삽질 of 삽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참고로 나치 독일군 최대의 삽질이라고 평가받는 보덴플라테작전에서 독일군은 연합군기 340기를 격파하고 독일군기 304기를 잃었다. 그럼에도 실패라고 평가받는데 이것과 비교하면 8,000기나 손실했다는 건 무엇을 말하겠는가?[20]

시기상 전력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므로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과달카날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군은 통상공격만으로 99대의 비행기를 손실하고 정규 항공모함인 호넷을 격침시키고 엔터프라이즈를 중파시켰다. 이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안습한 수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밖의 다른 요소는 별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카미카제를 대비하기 위해 함재기들이 함대방공에 힘써 오키나와의 공중지원이 힘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이건 카미카제가 아니라 통상공격이라도 마찬가지이다. 8,000기가 통상공습을 해왔다고 생각해보자. 카미카제가 아니라도 지상지원을 할 수 있을까? 이건 카미카제의 전술적 효과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공습의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펄펄 뛰는 커티스르메이를 여러 장군들이 간신히 제지하고 B-29를 도시폭격을 잠시 돌려 비행장 폭격으로 돌린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카미카제가 특별히 대단해서가 아니라 공습의 규모 자체가 워낙 커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해군력 서열 2위인 영국해군과의 비교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을 지닌 미군이 아니라면 이만한 규모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겠지만(...) 이 또한 통상공격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약간 더 효과적이었다고 해도 그 성과라는 것이 고작 상륙정 몇 척, 구축함 몇 척에 불과했을 뿐이니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었던 짓인지는 알아서 판단하자. 이런 초라한 결과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압도적이기 그지없는 미군의 전력, 비숙련자 집단&쓰다 버린 비행기들을 닥닥 긁어 모인 기체의 성능 등 카미카제 자체의 한계를 감안하면 뻔한 결과였다.

굳이 더 의미를 찾자면, 미 해군 장병들 중 후송되는 전투피로증 환자를 조금 늘렸다는 정도. 가뜩이나 오랜 전쟁으로 지친 미 해군 장병들이었기에 몇 달 간 지속된 카미카제 공습 상황으로 피로증 환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촘촘하기 그지없는 함재기들의 전투초계비행(CAP)과 스크램블(긴급요격)을 감안하면 카미카제의 명중률 10여%는 승조원들 눈에 보이는 카미카제 2기 중 1기는 자신의 배로 날아든다는 의미였으니 승조원들에게는 확실히 무서운 존재였다. 당연히 미 해군의 전체적인 운용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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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승리하는 법을 잊어버린 자들의 전술 ¶

무엇보다도 카미카제가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딴 전술에 의지함으로서 일본군 스스로 더 효과적인 방법을 망각해버렸다는 점에 있다. 카미카제를 작전으로서 사용한다는 건 조종사의 기량 향상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으며 항공기 발전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애초에 적의 군함에 들이받을 항공기를 뭐하러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까?

확실히 처음 베테랑 조종사들에 의한 카미카제 작전은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급한 일을 막기 위해 미래의 가능성을 팔아버린 일종의 돌려막기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일본군은 "여차하면 카미카제를 쓰면 되니까(...)" 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항공기 발전과 조종사의 기량 향상에 힘을 쓰지 않았다.[21] 카미카제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건 1944년 10월부터지만 작전상으로서의 검토는 1942년 미드웨이 해전부터였고 특공병기가 처음 만들어진 건 1944년 3월이다. 일본의 함상전투기는 끝까지 제로센 뿐이었는데 이처럼 기술 발전이 뒤처진 데는 이런 안일한 생각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 카드깡[22]

애초에 카미카제 같은 전술에 의지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항공기 기술을 발달시키고 조종사 기량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미군을 막아낼 수 있었을 테지만 일본군은 카미카제에 의지함으로서 이런 가능성을 스스로 부정해 버렸다.

나라를 위해 죽지 말고, 적들이 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어라.
- 조지 S. 패튼, 미 육군 제 6사단을 상대로 한 연설 中

반면 연합군에서는 전쟁광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호전적이었던 인물이었던 조지 S. 패튼조차 전술행동에서 적군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는 것 못지않게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아군의 피해는 줄이고 적의 피해는 늘리는 것이 전투, 나아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적에게 확실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면서 아군의 피해는 무조건 발생하는 카미카제는 극히 비효율적인, 아니 절대로 국가라는 인간의 집단이 정식 시스템으로 편재해서는 안 되는 전술이다.

요약하자면 __[인명과 장비를 경시하는 군대는 결코 승리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