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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고대 국가
1.1. 韓
1.1.1. 역대군주
1.1.1.1. 삼진 분립 전 (진나라 신하)
1.1.1.2. 삼진 분립 이후
1.1.1.3. 부록: 초한쟁패기
1.2. 漢
1.3. 관련 항목
- 대한민국의 정당인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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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 국가들. '한국'이라고도 표기하나 보통 이 두 나라를 한나라라고 부르지
한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한국은 대한민국 한나라가
여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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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존재했던 전국칠웅 국가. 수도는 평양(지금의 산시 성 린펑 시) · 의양(지금의 허난 성 뤄양 시 이양 현) · 양책(지금의 허난 성 위저우 시) · 신정(新鄭: 지금의 허난 성 정저우 시 신정 시)이다.
본디 진의 일부였으나
진영공 때 사마인 한궐의 후손인 한씨가 조씨, 위씨 등과 더불어 주 왕실로부터 공인받으면서 진(晉)의 영토를 분할하여 세운다. 한씨 왕실은
일반적으로 진 무공의 동생으로 알려진 한만을 시조로 하며, 한궐은 한만의 증손이다. 사실 진나라 공실이 만들어 낸 수많은 분가들 중에서 한씨
집안은 원래 가세가 막강한 집안은 아니었으나, 호씨 · 극씨 · 난씨 등 원래는 한씨보다 강한 집안이나 양설씨 · 기씨 등 한씨보다는 약한집안이나 죄다 거의 다 귀족간의 권력 투쟁에서 몰락하는 와중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마침내 본가를 몰아내기까지 이른것이다. 기원전 375년 정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정나라의
서울 신정으로 옮긴다. 기원전 355년 신불해를 기용하여 부국강병책을
취하는 등 강대국으로 부상했으나,
진(秦), 초(楚)의
압박으로 급격히 세력이 미약해진다. 진나라의 침략 위기에 진나라의 국력 소모를 유도하기
위한 피친계(疲秦计, 진나라를 피로하게 하는 계책)까지 구사했지만[1]
도중에 들통나서[2]
어그로를 끌어들였음은 물론이요 진나라가
생각처럼 헥헥거리지도 않았고 건설한 수거는 정국의 예언대로 유용하게 쓰여졌서 진나라의 국력증가에 보탬이 되었다. 이에 대한 해석으로 한나라는
관개가 중요하지 않은 조가 주요작물이라서 수거가 건설되어도 진나라에 도움이 별로 없을것이라고 판단했으나 진나라의 주요작물인 밀은 관개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예상 못했던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기원전 230년 수도 신정이 함락되어
전국칠웅 중 첫빠따로 진에게 멸망당한다.
전국칠웅중 최약체라서 안습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G7 "전국칠웅중에서". 실제 한나라도 20만 규모의 대군을 보유했고
무기장비만은 최고수준이었다고 한다. 템빨
"천하의 강력한 궁과 노, 보검은 모두 한나라에서 나왔다 " - 사기
하지만 인간의 체력과 전략전술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냉병기 전쟁의 특성상[3]
무기장비만으로는 국력의 부족, 유능한 장수의 부재 등
치명적인 약점을 커버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최약체로 별 활약도 없이 멸망했던 것이다.
초한지에 나오는 유방의
모사 장량과 한왕한신이 한나라
사람이다.한: 잠깐 50년 뒤에 싸우면 안될까? 한왕 한신과 회음후한신을 혼동한 나머지 회음후 한신이 한 출신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회음후 한신은
이쪽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회음후 한신이 통일 직후 처음 받은 작위가 초왕이었음을 떠올리면 간단히 알 수 있다.
유사역사학에 낚인 사람들은 韓나라의 한자가 과거 삼한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에 이르는 한의 표기 한자로 쓰인다고 **사실 삼한은 대륙에 있었던 것이다!!!**라는 헛소리를 일삼곤 한다. 아니다 원래 순 우리말에 넓다, 크다, 하나의, 좋은 뜻을 많이 담고 있던 한이라는 발음이 나는 개념이 있었고 이를 표기할 한자를 찾기 위해 유사한 발음을 가진 중국의 韓이라는 한자를 가져다 쓴 것이다.
이때문에 한국기원설을 위장한 낚시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순자(荀子)는 한국인이다. 순자는 한나라 사람이지만 중국어에서는 나라, 국을 모두 國로 표시하기 때문에 한나라도 한국으로 씌여진다.
다른 전국칠웅의 이름이 전국시대 후에도 계속 국명이나 지역명으로 남은 것과 달리, 이 한(韓)은 초한쟁패기에 부활했다 한왕 신이 흉노로 망명해 멸망한 이후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안습. 사실 이 한을 차용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다행인게 혼동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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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신하) ¶
- 무자(武子) 만(萬) - 곡옥 환숙(曲沃 桓叔)의 아들
- 구백(賕伯) - 무자의 아들
- 정백(定伯) 간(簡) - 구백의 아들
- 천(穿) - 정백의 아들
- 헌자(獻子) 궐(厥)
- 선자(宣子) 기(起) - 헌자의 아들
- 정자(貞子) 수(須) - 선자의 아들
- 간자(簡子) 불신(不信), 불녕(不佞) - 정자의 아들
- 장자(莊子) 경(庚) - 간자의 아들
- 강자(康子) 호(虎) ? ~ 기원전 425년 - 장자의 아들
- 무자(武子) 계장(啓章) 기원전 424년 ~ 기원전 409년 - 강자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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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후(景侯) 건(虔) 기원전 408년 ~ 기원전 400년
- 열후(烈侯) 취(取) 기원전 399년 ~ 기원전 387년
- 문후(文侯) 유(猷) 기원전 386년 ~ 기원전 377년
- 애후(哀侯) 둔몽(屯蒙) 기원전 376년 ~ 기원전 374년
- 의후(懿侯) 약산(若山) 기원전 374년 ~ 기원전 363년
- 소후(昭侯) 무(武) 기원전 362년 ~ 기원전 333년
- 선혜왕(宣惠王) 강(康) 기원전 332년 ~ 기원전 312년 - 기원전 323년, 왕호를 쓰기 시작.
- 양왕(襄王) 창(倉) 기원전 311년 ~ 기원전 296년
- 희왕(釐王) 구(咎) 기원전 295년 ~ 기원전 273년
- 환혜왕(桓惠王) 연(然) 기원전 272년 ~ 기원전 239년
- 안(安) 기원전 238년 ~ 기원전 230년 - 진(秦)나라에 의해 멸국. 기원전 226년 신정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진나라에 의해 처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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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成) 기원전 206년 - 한나라 왕족의 후예로 서초패왕에게 살해당함.
- 신(信) 기원전 206년 ~ 기원전 201년 - 양왕의 서손. 흉노에게 투항하면서 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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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의 가장 큰 뿌리가 된 왕조
기본적으로는 중국에서 초한대전(楚漢大戰)이 마무리된 기원전 2세기부터 삼국시대(三國時代)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3세기 초까지 존재했던 왕조.
초한지로 시작해서
삼국지로 끝난 나라. 통일 진나라의 뒤를 이어 통일된 중국의
기반을 자리잡게 한 왕조이다.[4]
초대인 한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진승 오광의 난으로 시작된 진나라(秦) 말기에 초패왕(楚覇王) 항우와의 결전 중인 기원전 206년 한중(漢中)땅에서 창업했다. 한(漢)이란 국명은 바로 이 한중에서 유래한 것. 이후 24대 헌제(獻帝) 유협(劉協)에 이르러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에게 선양한 서기 220년 까지 약 400년간 지속되었다. 통일국가로서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통치기간을 지닌 왕조이다. 중간에 왕망이 건국한 **신**이라는 듣보잡 왕조가 잠깐 들어섰다가 망해서, 그때를 경계로 **전한**과 **후한**으로 나뉜다.
400년이라는 긴 통치기간을 지닌 왕조로서 중국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과 월남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문화권 전반의 기틀을 이룩한 왕조로 평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토착 민족은 한족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의 전통적 글자를 한자라고 부른다. 한자가 진나라 시대의 동글동글한 전서(篆書)의 형태를 벗어나 지금의 형태를 정립한 것이 한나라 시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문화권의 핵심인 인의(仁義)를 바탕에 둔 통치 이념인 유교와 그 시행 법령인 율령이 정비된 시점이 바로 한나라 시대. 그 밖에도 한나라의 대표 상품으로 채륜이 발명하였다고 하여 채후지(蔡侯紙)로도 불리는 종이를 들 수 있겠다.
전한과 후한은 수도의 위치 때문에 장안(長安)에 도읍했던 서한(西漢)과 낙양(落陽)에 도읍했던 동한(東漢)이라고도 한다. 이는 오대 십국 때 유지원이 세운 한나라를 후한(後漢)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후한(後漢)이라는 국명은 서진(西晉) 멸망 이후 중원지역에 우후죽순 생겨났던 오호 십육국 시대 흉노족 유연이 세운 나라를 칭하기도 한다. 해당 나라는 나중에 유요에 의해 전조라는 이름으로 바뀐 나라를 뜻한다.
삼국지의 국가들인 위, 촉, 오 중의 촉(蜀)은 본래의 국명이 아니라 당대에 촉한은 '한(漢)'을 일컬었으며 역사적으로는 촉한(蜀漢), 혹은 마지막 한이라는 뜻의 계한(季漢)이라 한다. 즉 한나라의 정통성을 자신들이 이었다는 뜻.
더 자세한 각 왕조의 역사는 해당 왕조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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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한민국의 정당인 한나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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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나라가 대규모 수거(水渠)공사를 진행하도록 꼬드겼다.[2]
정작 간첩으로 진나라에 들어가서 공사를 책임졌던 정국은 "니들 엿먹일라고 시작한건 맞지만 이게 제대로 되면 니들도 득 볼거임"라고 해서 목숨을 건졌고 공사도 중지되지 않았다.[3]
고대에서 장비 업그레이드는 고작 칼이 더 날카로와지거나 활의 사정거리가 더 멀어지는 수준이지만 근현대에서 장비의 업그레이드는 소총에서 기관총, 대포로의 질적변화라는것을 생각해보자[4]
100년 후라는 책에서 제시하는 중국의 인구밀도지도를 보면 인구밀집지역의 모양이 삼국지 게임에서 흔히 보는 한나라의 영토와 비슷하게 칠해져 있는 걸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