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懷疑主義, scepticism(영국식)/skepticism(미국식)
방법론의 한 종류. 회의론이라고도 한다. 크게 철학적
회의주의와 과학적 회의주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오컬트,
음모론과는 상극.
코리아 스켑틱 :
미국의 스켑틱 이라는 잡지를 한국에서 번역 한 계간 잡지
이러한 방법론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을 회의주의자라고 한다. 이하 철학적 회의주의에 대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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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의 근본은 사람의 오감이 완벽하지 않고 속아 넘어가기 일쑤라는 점 등을 통해, "보고 느끼는 세상이 현실 그대로의 세상이
맞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이에 반발하는 르네데카르트는 모든 지식은
인간 내면에 숨겨져 있으며 연역법으로 이들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고[1]
그 연역의 기반이 되는 제1공리를 얻어내려고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I think, therefore I am)"다. 하지만 첫째로 이 제1공리가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또한 과연
연역으로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리고 이 후자에 대한 견해 차이로 합리론과 경험론의 갈래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백년간 이러저러 논리배틀을 벌인 후에 나타난 것이 데이비드흄의 관습원칙이다(Principle
of Custom/Principle of Habit).
흄은 철학 역사상 처음으로 분석/종합지식의 구별을 지은 철학자인데,[2]
흄은 모든 종합지식은 단순 관습으로 획득하는 지식이고 확실성이
없다는 주장을 편다. 철학적 용어가 많기에 약간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미혼인 자는 결혼하지 않았다.'라는 명제는 참이다. 왜냐하면 미혼인
자라는 단어가 결혼을 하지 않은 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의 지식을 흄은 분석 지식[3]
이라 명명하였고, 확실한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분석지식이 아닌 지식, 그러니까 가령 '내일은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것을 흄은 종합지식[4]
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런 구별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흄은 모든 종합지식에게는 타고난 불확실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흄의 주장은 가령 이러하다. "보통의 경우엔
'내일은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지식(상식)이다. 그런데 그 지식의 확실성은 어디에 기반하는가? 내일에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나? '해가 동쪽에서 뜬다.'라는 지식은 결국 반복된 경험에 의한 관습적인 지식이 아닌가?"
결국 이런 의문에 흄은 분석지식은 확실한 지식이지만 너무나 당연한 지식만을 제공하고, 그에 반해 종합지식은 당연한 지식이 아니며 태생적으로 확실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의 결론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것이라 아직까지도 회의주의는 철학계와 비철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테마중 하나이다. 흄
이후로 분석/종합지식에 관해 논의한 철학자에는 이마누엘칸트[5]
,
루돌프 카르나프[6]
, W.V. 콰인[7]
이 있다.
꽤나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에 각종 창작물에서는 이런 회의주의적 관점을 채택한 전개를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회의주의를 매우 잘 표현했으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결국 관객이 진실을 알 수 없는 《토탈리콜》이 이 방면으로 유명해서 철학을 공부할 때 참고할 영화로 추천받기도 하며 그 외에도 매트릭스 시리즈나 《인셉션》 역시 회의론이 숨어있다.
역사 관련 회의주의는 키스 젱킨슨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읽어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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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 환자들 같이 회의주의의 개념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회의주의를 들먹이며 "우리는 모두 속고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은 의심받아야 한다."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회의적 사고와 의심은 근본이 다르다. 사물에 일일히 냉소적으로 반응하거나 덮어놓고 의심부터 하려 드는 것을 회의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회의주의는 어디까지나 모든 지식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 뿐이지, 모든 걸 "아닐 거야"라고 의심부터 하는 사고방식이 아니다. 그리고 회의주의의 결론은 "~일지도 모른다."이지 "~이다."가 아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거짓이고 사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명제를 제시하는 순간, 그 명제 자체도 회의주의적으로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주의를 일상생활에까지 도입하려 드는 겉멋만 든 사람들도 있는데, 결코 장려되는 행동이 아니다. 회의주의적 사고를 가진 철학자들이라고 밥 먹을 때마다 "이 밥은 진짜인가 내가 숟가락을 들었다는 생각만 하는 것일까?"라고 고뇌할 것 같은가? 회의주의는 어떠한 주장이라기보다는 주의하는 자세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
비슷한 예시로 회의주의자라면 자기에게 날아오는 총알이 진짜인지도 의심해야 하니까 그 총알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류의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회의주의는 지식의 확실성을 회의하는 것이지 그 개연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회의주의자는 자기에게 총알이 날라오면, 그 총알이 진짜일 것이라는 확신이 없더라도 진짜일 개연성이 있으므로 일단 피하고 볼 것이다. 총알이 진짠지 아닌진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진짜면 죽으니까.(…) 총알을 피하지 않는 사람은 개연성과 확실성도 구분 못하는 것이거나 그냥 생명에 대한 애착이 없는 사람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인터넷에 무언가 신기한 사진이나 이야기가 올라오면 무조건 "조작이네"부터 외치는 부류를 떠올려 보자. 정말로 조작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니 신기하게도 진짜일 수도 있다. 회의주의는 "진짜임을 지지하는 증거가 분명 있지만 진짜라고 확신하기에는 부족하네. 그래도 조작이란 직접적인 증거가 있지 않은 한 일단은 진짜라고 믿고 넘어가지만 조작이 맞을 가능성은 열어놔야 해" 라는 결론이고, 그냥 "조작이네"는 냉소주의적인 반응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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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믿음은 매우 플라톤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론에서 플라톤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모두 잊어버렸을 뿐이며 진실이 '반영'된 곳인 이 세계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통해 진실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이라는 가설을 펼쳤다. 쉽게 말해서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기억(+진실)을 찾아가는 기억상실자라는 셈.[2]
분석/종합의 단어 자체는 칸트가 처음 사용하였지만 개념 자체는 흄의 창작이다. 여기서의 지식이란 단어의 의미가 애매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문서가 하나 더 필요할 것 같아 일단은 넘어간다.[3]
이야기한 바 있으나 엄밀하게 따지자면 분석이란 단어는 칸트가 처음 사용한 단어이고, 흄은 이를 relation of ideas 라고 불렀다.[4]
흄이 사용한 단어는 matter of fact, 사실(fact)적인 사건(matter).[5]
종합지식/분석지식의 구별에서 더 나아가 종합적 선험(선험=> 경험에 앞서는)/종합적 후험(후험=> 경험에 따르는)/분석적 선험(분석적 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지식의 구별을 하였고, 인간의 지성만으로(선험적) 세계에 대한 지식(종합적)인 종합적 선험지식이 진정으로 가치있는 지식이라고 보았다. 칸트는 흄과 비슷하게 분석적 선험지식이 너무나 당연한 지식만을 제공하고 종합적 후험지식은 태생적인 불확실성이 있다고 보았지만, 종합적 선험지식이란 지식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에는 수학, 그리고 그의 방법론을 따르는 철학까지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6]
몇 가지의 공리와 순수 수학의 개념을 사용하여 (이런 방법은 프뢰게-러셀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수학 비전공자라면 정말 어렵다!) 실재하는 각종 개념 (오감, 공간, 시간에서 시작하여 책상, 의자 등의 실재하는 물체에 대한 개념까지)을 도출하는 언어 시스템을 창조해내고 그 시스템 안에서 일관된 철학만이 정당한 철학이라고 보았다.[7]
분석/종합지식의 구별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모든 지식을 분석/종합의 구별 없이 재통합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카르나프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철학자다.그래서 둘 다 더럽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