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프로그램의 총책임자
1.1. 리그베다위키에 개별 항목으로 있는 PD일람
- 민중민주주의(정파)
- 경찰국
[edit]
Program Director
방송국 혹은 외주 제작사에서 방송프로그램의 기획, 제작 등을 책임지는 총책임자. 자신이 맡은 방송프로그램 제작에서 출연자 선정에서 부터 편집 등등에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촬영현장에서도 그의 말 한마디에 모든 스태프와 출연자들이 버로우를 탄다. 영화에서의 영화 감독과 비슷한 위치이지만 역학관계에서 영화감독보다도 더 힘이 강한 듯.
하지만 이러한 지위를 악용해서 가끔씩 출연자 선정 등을 둘러싸고 뇌물수수, 성상납 등의 병크를 터뜨리는 무개념들도 존재.
현재 방송계에서 PD는 감독과 프로듀서의 역할을 모두 맡는다. 이에 KBS 이흥우 PD는 PD스쿨이란 책에서 Program Designer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영어권에서 PD는 production designer의 줄임말로 미술감독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프로덕션의 비주얼을 총괄하는 책임자의 의미로 쓰인다. 방송계에서는 PD 아니면 프로듀서라고 불리는 듯하며 출연자에게는 '감독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게 일반적이다.
사족이지만 모 간판급 야생 버라이어티에선 이 정의에 **가끔 땅을 파기도한다**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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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의 나초딩
최근에는 용어가 좀 더 널리 퍼져서 IT 업계에서 소프트웨어 기획,제작을 총책임지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도 종종 사용된다. 주로 대규모 소프트웨어 제작 프로젝트(예를 들면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데, 방송에서 취급하는 프로그램과 소프트웨어에서 취급하는 프로그램의 용어가 똑같기 때문에 사용되는 듯하다.
PD에 관심이 있다면 '피디란 무엇인가(한국PD연합회 엮음, 이정식 외 41명 공저, 김영사)'를 읽어보자.
[edit]
- 김영희 - MBC소속
- 김유곤 - MBC소속
- 김태호 - MBC소속
- 나영석 - CJ E&M 소속
- 유호진 - KBS소속
- 이명한 - CJ E&M 소속/현 tvN 본부장
- 최재형 - KBS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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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s Democracy
NL과 더불어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운동권을 양분하던 두 조류 중의 하나. 빠른 이해를 위해 좀 과장하자면 "너는 민족이 중요하니 계급이 중요하니?"라고 물어봤을 때 **"계급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들.
물론 운동권은 지금도 존재하고 "계급이요"라고 대답할 사람들도 아직 존재하지만 PD란 말은 거의 사라졌다. 그 이유는 PD, 혹은 민중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소련의 레닌주의 이론가들이 정립한 혁명의 방법론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아시다시피 소련은 망했어요. 따라서 이전에 PD라 불리던 이들도 기존의 방법론을 버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해왔고, 그 역사가 벌써 15년 이상 되었다.
따라서 PD란 표현을 현재 살아있는 운동권들에게 쓰는 것은 그다지 타당하지 않은 표현. 그러나 구분의 편의를 위해 아직도 "PD 계열"과 같은 식으로 흔히 쓰이고는 있다.
NL과 PD의 구분이 흔히 쓰이고는 있지만, 등장 배경을 놓고 엄밀히 보면 다른 이야기. NL은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NLPDR)의
줄임말이고, PD는 원래는 범(凡)PD의 줄임말로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이라는 뜻이며, 민족해방(및 혁명에서 북한의 역할)과 특유의 수직적
구조를 가지고 있던 NL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세력이다. 그러니 NL과 PD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말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1]
국내에서는 조직이나 이론의 형성이 NL보다 늦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운동권의 원형이 해방 이전부터 형성된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는데다가, 일제시대의 토착 공산주의자들은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죄다 월북하거나 전향을 택한 바람에 이어갈 만한 계통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70년대까지는 사회주의 운동의 기반이 될 도시노동자층의 형성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현재의 운동권 구도는 NL과 PD를 막론하고 "80년 광주"라는 충격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 무렵부터 우리나라를 어떻게 변혁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게 대두되는데 우리나라의 근본 모순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사회구성체 이론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게 된다. 여기서 NL계열은 우리나라를 '식민지 반봉건주의' 체제로 보았으며 PD계열은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았다. 여기서부터 운동노선이 크게 갈라지게 된다. 흔히들 말하는
무림/학림논쟁,
삼민투 투쟁, 민민투/자민투 투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계급적 투쟁 특성에 주목하게
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민족민주주의, 다시 말해 ND를 형성했고, 이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제헌의회
소집[2]
이라는 모토 하에 CA라고 불리는 "제헌의회파"를 만들게 된다. 이들은 후에 PD로 이어진다...는
아니고, 노동운동에 투신한 70년대 중후반 학번들이 이미 노동운동 PD-대표적인 것이 노회찬과 송영길이 소속된 인천민주노동자연맹과 심상정과
김문수의 서울노동운동연합-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80년대 일부 학생운동세력들이 기존의 낭만적인 민주주의 추구에서 벗어나 급진화되면서 맑스-
레닌주의를 받아들이면서 학생운동 PD를 형성했다.
80년 광주의 충격 가운데에서도 가장 강한 것이 미국의 역할에 대한 재인식이었으니 애시당초
80년대는 NL의 것일 수 밖에. 더구나 '민족'이라는 말로 감성부터 자극하고 보는 NL에 비하자면 뭔가 이론부터 꺼내들고 나오는 PD는
어딘지 대중적 호소력이 약한 것이 사실. 거기에 어쨋거나 지침 비스무레한 게 내려올이웃집이라도 있는 NL이 NL계열은 수직적 구도를 선호하여 나름대로 단결을 과시한 데
반해[3]
PD는 자기들끼리 수평적인 체계를 권장하여 단체 내부에서의, 그리고 단체 간의 이념적 논쟁을 상당히 중요시한다. 대동단결보다는
무엇을 위한 대동단결인가라는 합의점을 찾는데 좀 더 방점을 찍는 셈.
그래도 똑똑한 이들이 공부도 열심히 했는지라, 그저 목소리만 큰 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진보적인 소장파 학자들의 경우는 PD운동과 관련을 맺고 있었던 경우도 있다. 이런 학자들의 연구결과물은 현재 대한민국 시민사회론의 근간이 되었다.
과거 NL과 PD, 그리고 PD끼리 치고받고 싸웠던 것은 대개 한국 사회의 갈등구조와 그 원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관점이 달랐기
때문. NL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정부든 대기업이든 기본적으로 미국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하수인에 불과하므로, 미국을 몰아내고 자주적 통일을 이뤄야만(NL) 근본적인 변혁(PDR)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4]
그렇다고 해서
PD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안 외쳤던 것은 아니다. 다만 21세기의 주한미군 주둔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5]
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압박 카드로 사용된다는 점에 좀 더 주목하고 있다.
PD도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의 존재 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미 자체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어,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원조[6]
없이도 독자적인 생존/재생산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미 한국에서 국가와 자본의 지배가 어느 정도 견고하게
자리잡았으므로, 사회 내부의 계급모순을 해소하는 것이 더 주요한 과제라고 본 것.[7]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듯 이들의 주장이 모든 면에서 서로 갈리기만 하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국가보안법 폐지 같은,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의제에 있어 비슷한 의견을 보이기도 한다. NL이 노동 이슈에 대해 함구하는 것도 아니며, PD가 북한과 미국 헤게모니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8]
멀리 갈 것도 없이
경기동부연합이 NL진영에서
노동문제를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세력이다.
운동권 계열 학생을 만났을때 NL인지 PD인지 물어보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른다. 사실상 NL과 PD와 같은 명칭보단 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를 통해 서로를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NL계, PD계의 학생운동계파는 있어도 그 내에서의 이론 차이 또한 명백하기에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한다. 특히 소련 붕괴 이후 PD 계열의 지향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비판 및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고[9]
,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중심은 미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사실상 NL계와 PD계가 암묵적인 연대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NL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관한 인식이 철저하지 못한 데다 대중운동 방식에도 이견을 좁히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현실은시궁창. 그리고
자신들은 NL이니 PD니 구분지어지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상대방 계파를 깔 때는 그 개념을 쓰기도 한다(...).[10]
그리고 같은
NL이나 PD라 하더라도 워낙 분파가 심해서 싸잡아 묶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 물어보고 싶다면 어느 단체 소속인지 묻도록 해라.
1990년대 초부터 중반을 기점으로 PD계열은 활동에 모순을 느끼고 다각적인 접근으로 분화하기 시작한다. 이때가 분기점이 된 이유는 소련의
붕괴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11]
크게 나누자면
트로츠키주의,
레닌주의류의 자칭 '혁명적 사회주의자'세력,
알튀세르나
네그리 등의 네오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네오 마르크스주의
세력[12]
, 그리고 수정주의를 받아들인 분파로 나누어진다. 이 안에서도 수 많은 분파가 나누어지므로 함부로 너 ~~주의자지 하는건
자제하는게 좋을 듯.
이후 시민운동에 뛰어든 사람들을 PD내 수정주의 분파로 보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분석이다. 한국에서 '시민운동'을 주창한 초기세력들은
시민사회라는 영역의 존재를 적극 긍정하며 기존의 노동자 운동을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행위라 칭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PD가
다양하다지만, 노동자 운동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시민사회 영역만을 순수한 영역으로 인정하는 PD는 없다. 이들은 PD가 아닌 일반적으로
CD라는 분파로 구분되는 세력이다.[13]
강경 PD 계열이라고 해도 닥치고 혁명하자는 건 아니다. 실제적인 부분에서는 같은 이슈에 함께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다만 투쟁 방법론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당연하게도 강경할수록 강경한 방법론을 선호한다.
암튼 저 위의 분파들을 단체로 나누어 보자면 현재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을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 준비위원회(사노위)가 있다. 신마르크스주의 계열 중에서는 사회당이나 사회진보연대가 이쪽 계열이다. 학생운동 계열에서는 현재로선 전국학생행진이 대표적. 마지막으로 수정주의를 채택한 대표적인 곳이 진보신당이다. 학생운동도 거의 이 라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촛불 때 여러가지 논란을 일으킨 다함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다. 발생학적으로 볼때 PD와는 완전 무관하다. 이들은 1990년대 까지 IS(International Socialist=국제사회주의자)로 통칭되었으며 NL이나 ND-CA-PD 그 어느쪽과도 무관한 학생운동권내의 하나의 섬이었다.
그러나 2012년 심상정, 노회찬의 진보신당 탈당과 진보신당-사회당의 합당, 총선 참패 후 진보신당의 해산과 재창당, 그리고 통합진보당 경선 사태의 결과 진보정의당의 분당 등의 각종 사건의 결과, PD계열 자체가 정치적인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분화가 더 심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명망가나 지식인층에서 지지자들이 있지만 그런 인재들을 하나로 모아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계파분열이 심화되어 버린 상황이라 보면 좋을 것이다.
[edit]
Police Department
경찰서와는 다르다. 절대적으로 다르다.
지역 경찰국의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흔히 아는 LAPD,NYPD,SFPD,CPD등의 PD가 바로 이 뜻. 미국은 주마다 경찰이 다르고, 또 주 안의 각 시와 카운티마다 경찰이 다르기때문에 이런식으로 약자를 붙여 구별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시경에 PD가 붙는 편인데, 주경찰은 State Police라고 불리우고, 도시 외곽이나 일부 카운티,시골지역은 보안관이 책임지거나 소규모 지역 (County, 자체적 의미는 다르지만 굳이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리~군)경찰이란 뜻의 County Police가 사용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시지역의 각 앞머리 철자가 붙고 뒷부분에 PD를 붙인다.
\----
[1]
이렇게 설명해봐야 (적어도 대학에서는) 이론은 오간데없이 이익 관계나 권력 문제로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정체성을 확립해간 부분도 있기 때문에 제3자가 보기에는 당사자의 후일담 정도로 보인다.[2]
현재 한국은 자본가의 패악으로 인해 부르조아 민주주의를 하고 있으므로 진정한 민중 민주주의를 위해 민중이 주체가 되어 혁명을 일으키고 새로 국회를 소집하자는 것이다.[3]
다만 그만큼 내부에서의 이념적 문제 제기는 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4]
이러한 관점의 배경에는 미국(주한미군)의 지원 없이는 한국의 정부 체계나 경제 구조가 금방 붕괴할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NL 항목의 '식민지 반봉건사회론' 참조. 그래서 지금도 NL의 핵심적인 주장 중 하나가 주한미군 철수인 것이다.[5]
미국 국가채권의 반 정도를 사들이면서 경제적으로는 재정적자를 누적하고 있는 미국과 큰 연결을 갖는 반면에, 독자적인 군사력을 유지, 강화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헤게모니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6]
협력이 아니다. 퍼준다는 의미의 원조[7]
피디론의 주요 골자가 되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 자체가 남한은 이미 고도의 자본주의 국가라는 의미였다. 이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대한 문화적 충격도 한 몫했다.[8]
단 그렇다고 '민족' 통일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건 잘못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PD는 민족주의가 내포하는 보수성을 비판하기 때문이다.[9]
다만 PD 계열 단체 전체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같다고 보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현재의 자본주의 질서에서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고, 그리고 현실에서 어떤떤 운동을 통해 이를 반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대상이다.[10]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래를 부를 때 팔을 어떤 각도로 휘두르느냐, 몸짓에서 특정 동작을 할 때 무릎을 꿇느냐 그렇지 않느냐 가지고 NL계와 PD계가 싸웠다고 하나, 2010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NL과 PD 세력이 한꺼번에 같이 모여 집회를 하는 일 자체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이젠 팔뚝을 움직이는 각도 같은 거 같은 단체 내에서도 신경 안 쓴다.중요한 건 마음이야다만 현실 인식과 그를 뒷받침하는 이념, 그리고 운동 방식이 너무나도 차이가 많이 나 서로 간의 비판은 여전히 많다.[11]
이걸 가지고 PD들을 스탈린 주의자 추종하던 덜떨어진 아이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건 과도한 몰아세우기다. 정부의 통제가 워낙 강해 스탈린 비판이 남한에 들어온건 87년 이후로 소련 붕괴 불과 3~4년 전이었다. 유럽에서 이미 60년대부터 스탈린 비판이 이루어졌던것을 고려한다면, 과도한 정보 통제속에서 별 수 없었다고 보는게 맞다.[12]
물론 이들이 마르크스와 레닌을 등한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13]
이러한 대립구도를 한국사회만의 독특한 구도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또 그런 것만도 아니다. 유럽에서도 운동세력간 이러한 대립구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