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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國漢文混用體版
1.1. 說明
1.2. 混用하는 程度
1.3. 極限國漢文混用體
1.4. 其他
1.5. 國漢文混用體 擁護論과 反對論
- 한글전용체판(-專用體板)
2.1. 설명
2.2. 혼용하는 정도
2.3. 극한 국한문혼용체의 예시
2.4. 기타
2.5. 국한문혼용체 옹호론과 반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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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位項目: 文體
簡單히 現在 日本이 使用하고 있는 文體를 떠올리면 된다. 日本을 例로 드는 理由는, 우리가 國漢文混用을 施行할 境遇 現代 日本語 文章과 類似해지기 때문이다.
朝鮮時代에는 이런 文體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 《訓民正音 諺解》에서 보는 바와 같이, 漢字와 한글을 섞어 쓰더라도 漢字 옆에 音을 달거나 아예 音 옆에 漢字를 쓰는 境遇가 많았다. 이는 日本의 요미가나(読み仮名)와 비슷한 用法이다. 現代에도 混用을 해야 할 必要가 있을 境遇 括弧를 使用하는 代身 이 方法을 쓰기도 한다.
原來 한글로 쓴 文書는 '讀者가 漢字를 모르는 사람'일 때 쓰는 거니까 當然한 거다. 例를 들어
漢文과 한글을 모두 아는 선비가 다른 선비에게 글을 보낼 때는 둘 다 漢文을 알고 있으니
當然히 漢文으로 글을 쓸 것이고, 漢文을 모르지만 한글은 아는 아내나 아랫사람에게 글을 쓸때는 相對方이 글을 못 알아먹으면 意味가 없으니까
한글로 쓸 것이다.[1]
이렇게 한글과 漢文의 用途가 完全히 分離되어 있었기 때문에 朝鮮時代에는 數百年 동안 國漢文混用體같은 文體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兪吉濬이 겪었던 일처럼, 제대로 된 漢文이야말로 格調 높은 文章으로 여겨졌던 風潮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舊韓末쯤이 되면 新聞이나 甚至於 朝鮮王朝實錄에도 間間이 보이기 始作한다. 日帝强點期에는 完全히 定着되어 解放 後에도 그대로 쓰이게 되었다.
現在의 十~二十代 위키러들에게는 意外일지 모르지만, 比較的 最近까지 쓰였다. 不過 半世代 以前인 一九九〇年代 初盤만 하더라도 大學生 以上의 識者層은 日常生活에서도 國漢文混用體를 使用하고 理解했으며, 大部分의 國內 主要 新聞들은 세로쓰기, 國漢文混用으로 發行되었다. 新聞이 가로쓰기, 한글專用으로 바뀐 것은 한겨레新聞을 除外하면 一九九〇年代 中盤에 들어서이다. 많은 大學에서 漢字能力試驗을 卒業必修要件으로 함에도 不拘하고 國漢文混用體 可讀率이 急速히 떨어지는 最近과는 엄청난 差異를 보인다(…).
民主化 以後 韓글專用이 急速度로 이뤄졌다는 證據로 볼 수도 있으나, 事實 한글專用政策을 本格的으로 實施한 것은 朴正熙 政權 時代였다. 一九六八年 五月 朴正熙 大統領은 갑자기 內閣에 一九七三年을 目標로 한 "한글專用 五個年 計劃"을 樹立하라고 指示했고, 十月에는 目標年度를 一九七〇年으로 三年 앞당기게 하는 等, 七個項의 强力한 한글專用 指示를 다시 내렸다. 거기에 漢字敎育을 一時的으로 廢止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엄청난 反撥로 因해 中·高等學校에서 漢字敎育을 再開하게 되었다.
그 때 敎育을 받은 世代들이 社會의 重役이 되기까지 大略 二十五年 程度의 伏線이 있는 것. 그리고 決定的으로 九〇年代를 前後하여 社會 全般에 걸쳐 電算化, 情報化가 急速히 進行되면서 國漢文混用體 使用은 더욱 萎縮되었다.
唯獨 法典같은 文書에서 이러한 國漢文混用體를 많이 使用하는데, 그 理由는 同音異意語에 依한 意味 解釋의 混同을 막기 爲해서이다. 하지만 法曹界에서도 一般에서 使用하지 않는 用例의 漢字를 濫發하고, 그 뜻을 一般人이 全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點때문에 二十一世紀 들어서는 固有語가 있으면 固有語로, 어려운 漢字語는 쉬운 漢字語로 바꾸고 한글을 專用하는 作業이 進行되는 趨勢이며, 따라서 最近 制定 또는 改定된 法들은 한글로만 적혀 있다.
中間 過程으로 暫時 '한글(漢字)' 式으로 括弧를 使用해 漢字를 竝記하던 時期가 있었다. 게다가 法令은 原文 그대로 적어야 하는 原則이 있어, 市中에 나온 法典을 보면 漢字만 적힌 法, 漢字를 竝記한 法, 한글만 적힌 法이 全部실려 있다. 參考로 最初로 한글化된 法은 다름아닌 民事訴訟法이다. 日本式 和漢混用文을 그대로 가져와 國漢文混用體로 쓸 境遇에 오히려 이런 混亂이 더 深化되는데, 純日本語에서 뜻만 따와서 漢字로 쓰고 訓讀하는 單語를 韓國式 讀音으로 고쳐 읽는 境遇는 正말 答이 없다.
비슷한 例로 近來에는 한글과 로마字를 섞어 쓰는 國英文混用體도 頻繁하게 使用되었으나, 한글專用이 擴散되면서 國英文混用體의 使用 頻度 亦是 國漢文混用體 못지 않게 줄어들었다. 當場 使用되는 槪念이나 裝置들에 適當한 韓國語 飜譯이 없어서 現在도 國英文混用體가 頻繁하게 使用되는 便이다. 事實 韓國人 敎授가 韓國語로 講義를 해도 英語 敎材 英語 PPT에 하는 말도 助辭를 除外하면 全部 英語인 形局이다.
當場 圖書館에 가서 八〇年代 以前에 出版된 大學敎材들이나 各種 論文들을 보면 國文, 漢字, 英文이 뒤범벅된 幻想的인 文章들을 鑑賞할 수 있을 것이다. 勿論, 이는 讀者가 英文을 읽을 수 있음을 前提로 하기에, 主로 大學生 以上의 高學力層을 對象으로 한 書籍에서 많이 使用되었다.
北韓의 境遇, 解放 後 一九四六年 사이에 刊行된 勞動新聞이 세로쓰기에 國漢文混用體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時期에는 아직 國漢文混用體가 一般的으로 通用되었을 것으로 推定된다. 北韓에서 한글專用이 全面的으로 施行된 것은 勞動新聞이 가로쓰기로 發行되기 始作한 一九四八年頃으로 推定되는데, 南韓 亦是 同年 한글날에 '한글專用에關한法律'을 制定하여 한글專用을 法制化한 바 있다.
그러나 南韓에서 한글專用이 一般的으로 通用되는 데 오랜 歲月이 걸렸고, 只今도 國漢文混用을 主張하는 見解가 存在하는 것에 比해, 北韓에서는 한글專用이 別다른 論亂이나 摩擦 없이 比較的 빠르게 普及되었다. 勿論 이는 黨의 方針에 對한 抵抗이나 異議가 源泉的으로 容納되지 않는 北韓 體制의 性格이 한 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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混用하는 程度는 글에 따라 다르다. 代表的으로 一九八〇~九〇年代 新聞에서 쓰인 固有名詞, 略語만 漢字로 表記하는 水準의 國漢文混用으로부터 甚한 境遇 己未獨立宣言書 原文같이 助詞만 빼놓고 모두 漢字로 범벅해놓기도 한다. 이렇게 쓴 글에서 助詞만 日本語로 바꾸면 얼추 日本語와 비슷해진다. 그러나 이렇게 쓴 글은 名詞 투성이라 別로 좋은 評價를 받지 못한다.
漢字를 音과 訓으로 읽어 漢字를 써도 土박이말을 살리는 日本과 달리, 韓國에서는 漢文 讀法에서 訓讀이 사라져 漢字를 音으로만 읽기 때문에, 己未獨立宣言文같은 深刻한 國漢文混用體는 吐씨 外에는 固有語의 씨가 말라버린다. 開化期 以後의 過渡期 文體에서 얻다를 '得하다', 열다를 '開하다' 따위로 적는 等 名詞뿐 아니라 動詞까지 외字 漢字에 '하다'만 붙여 쓰기 때문에 只今의 觀點으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漢文直譯體이다. 一八九五年에 나온 兪吉濬의 《西遊見聞》이 最初의 近代的 國漢文混用體로 여겨지고 있다. 兪吉濬 自身은 最大限 國文(韓글)을 살려 쓰려 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當時 그가 지은 冊을 본 사람들은 諺文을 섞어 쓴 것은 文章이 아니라며 비웃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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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勞力을窮하였으나萬一誤한處가在하면修正을願한다.
實質的意를有하는諸單語를漢字或漢字語로標記한當히極限的國漢文混用體다。卽助詞乃至語尾와幾種의例外를除한餘는全部漢字로標記한다고說해도無妨하다。如此히文을記할境遇、文章의形은加一層現代日本語文章과似할事다。何故라하니、假名漢字交文을用하는日本語에서는漢字語는勿論實質的意를有하는固有語도亦是大部分他와似한意를有하는漢字와對應시켜標記함으로因해서다。그러나韓國式極限國漢文混用文과假名漢字交文의間에는幾種의決定的差異가在한데、一:現代日本語에서는實質形態素라도普通漢字로記하지않는單語가在한다。「此」、「其」와如한非人稱指示代名詞는一般的으로「これ」、「それ」로記하지「此れ」、「其れ」로 記하지않는다。二:韓國人은漢字를讀할時無條件音으로讀하나、日本人은漢字를讀할時音讀과訓讀이라는二種의讀하는方法이在한다는事다。
上에서說한所와如히、己未獨立宣言書는如此한文體를擇하고있다。但、「것」을「事」로記함은宣言文과異하다。此로因해宣言文을直接聲을出하여讀하면都大體何한意인지知할수없다。 一九二〇年代初盤의東亞日報도此한文體를用했다。
爾等이該當項目의全文을讀解하였다면,何여小小한者라稱하겠는가!
何라하는거야止해狂한漢等呼!
世宗大王님感謝합니다!
止해요眩氣症出하단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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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漢文混用體에서는 띄어쓰기가 簡素化되는 傾向이 있다. 하지만 國漢文混用體는 어디까지나 韓國 語文의 一部이므로, 完全히 古代 漢文 느낌 나게 할 거 아니면 韓國 語文 規程에 맞게 띄어쓰기를 제대로 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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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루入力機는 日本語 入力機처럼 單語 單位로 漢字를 變換하므로, 컴퓨터에서 漢字 入力이 相當히 쉬워진다. 或是 關心 있는 사람은 參考하기 바란다.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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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가 아니더라도 敎育的 側面에서 漢字를 混用해야 한다는 一部 敎育界 人事들의 主張이 있기는 하다. 그런 主張 中에 仔細한 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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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語版 위키百科의 一部 使用者들을 中心으로 國漢文混用體 위키百科를 別途로 新設하려는 試圖가 있었다. 그러나 위키百科의 形態로 開設하는 것은 失敗하였다.
그 代身, 國漢文混用體 위키百科를 推進했던 이들이 國漢文混用體 方式으로 文書를 作成하는 漢字위키라는 사이트를 運營하고 있다. 漢字語를 모두 漢字로 變換한 것을 除外하면 事實上 韓글專用體와 다르지 않으나 어쨌든 國漢文混用體로 읽을 수는 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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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國漢文混用體/論爭을 參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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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例를 들자면 朝鮮時代의 王室에서는 何도 宮이 넓은지라 아침問安을 除하면 王이나 王族들끼리 傳할 것이 있을 時 글로 적어 보냈다. 朝鮮時代에는 公主라고 해도 女子에게 漢文을 가르치지 않았으므로 받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女性이면 한글을 쓰는 式.[2]
한글專用體에는 띄어쓰기가 別途로 適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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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항목 : 문체
간단히 현재 일본이 사용하고 있는 문체를 떠올리면 된다. 일본을 예로 드는 이유는, 우리가 국한문혼용을 시행할 경우 현대 일본어 문장과 유사해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문체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 《훈민정음 언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쓰더라도 한자 옆에 음을 달거나 아예 음 옆에 한자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일본의 요미가나(読み仮名)와 비슷한 용법이다. 현대에도 혼용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괄호를 사용하는 대신 이 방법을 쓰기도 한다.
원래 한글로 쓴 문서는 '독자가 한자를 모르는 사람'일 때 쓰는 거니까 당연한 거다. 예를 들어
한문과 한글을 모두 아는 선비가 다른 선비에게 글을 보낼 때는 둘다 한문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한문으로 글을 쓸 것이고, 한문을 모르지만 한글은 아는 아내나 아랫사람에게 글을 쓸때는 상대방이 글을 못 알아먹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한글로 쓸 것이다.[3]
이렇게 한글과 한문의 용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몇백년 동안 국한문혼용체 같은 문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유길준이 겪었던 일처럼, 제대로 된 한문이야말로 격조 높은 문장으로 여겨졌던 풍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한말쯤이 되면 신문이나 심지어 조선왕조실록에도 간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완전히 정착되어 해방 후에도 그대로 쓰이게 되었다.
현재의 10,20대 위키러들에게는 의외일지 모르지만, 비교적 최근까지 쓰였다. 불과 반 세대 이전인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대학생 이상의 식자층은 일상생활에서도 국한문혼용체를 사용하고 이해했으며, 대부분의 국내 주요 신문들은 세로쓰기, 국한문혼용으로 발행되었다. 신문이 가로쓰기, 한글 전용으로 바뀐 것은 한겨레신문을 제외하면 1990년대 중반 들어서다. 국한문혼용체 가독률이 급속히 떨어지는 최근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민주화 이후 한글전용이 급속도로 이뤄졌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으나, 사실 한글전용 정책을 본격적으로 실시한 것은 박정희 정부 시대였다. 1968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은 갑자기 내각에 1973년을 목표로 한 "한글전용 5개년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고, 10월에는 목표년도를 1970년으로 3년 앞당기게 하는 등, 7개항의 강력한 한글전용 지시를 다시 내렸다. 거기에 한자교육을 일시적으로 폐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엄청난 반발로 인해 중·고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재개하게 되었다. 그 때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사회의 중역이 되기까지 대략 25년 정도의 복선이 있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90년대를 전후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전산화,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한문혼용체 사용은 더욱 위축되었다.
유독 법전 같은 문서에서 이러한 국한문혼용체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동음이의어에 의한 의미 해석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도 일반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례의 한자를 남발하고, 그 뜻을 일반인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21세기 들어서는 고유어가 있으면 고유어로, 어려운 한자어는 쉬운 한자어로 바꾸고 한글을 전용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추세이며, 따라서 최근 제정 또는 개정된 법들은 한글로만 적혀 있다.
중간과정으로 잠시 '한글(漢字)'식으로 괄호를 사용해 한자를 같이 병기하던 시기가 있었다. 게다가 법령은 원문 그대로 적어야 하는 원칙이 있어, 시중에 나온 법전을 보면 한자만 적힌 법, 한자를 병기한 법, 한글만 적힌 법이 전부 실려 있다. 참고로 최초로 한글화된 법은 다름아닌 민사소송법이다. 일본식 화한(和漢)혼용문을 그대로 가져와 국한문혼용체로 쓸 경우에 오히려 이런 혼란이 더 심화되는데, 순 일본어에서 뜻만 따와서 한자로 쓰고 훈독하는 단어를 한국식 독음으로 고쳐 읽는 경우는 정말 답이없다.
비슷한 예로 근래에는 한글과 로마자를 섞어 쓰는 국영문혼용체도 빈번하게 사용되었으나, 한글 전용이 확산되면서 국영문혼용체의 사용 빈도 역시 국한문혼용체 못지않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공계 쪽은 당장 사용되는 개념이나 장치들에 마땅한 한국어 번역이 없어서 현재도 국영문혼용체가 빈번하게 쓰이는 편이다. 사실 한국인 교수가 한국말로 강의를 해도 영어 교재 영어 PPT에 하는 말도 조사만 빼면 전부 영어인 판국이다.
당장 도서관에 가서 80년대 이전에 출판된 대학 교재들이나 각종 논문들을 보면 국문, 한자, 영문이 뒤범벅된 환상적인 문장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독자가 영문을 읽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하기에, 주로 대학생 이상의 고학력층을 대상으로 한 서적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북한의 경우, 해방 후 1946년 사이에 간행된 로동신문이 세로쓰기에 국한문혼용체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시기에는 아직 국한문혼용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 한글 전용이 전면적으로 시행된 것은 로동신문이 가로쓰기로 발행되기 시작한 1948년 경으로 추정되는데, 남한 역시 동년 한글날에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한글 전용을 법제화한 바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 한글 전용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 지금도 국한문혼용을 주장하는 견해가 존재하는 것에 비해, 북한에서는 한글 전용이 별다른 논란이나 마찰 없이 비교적 빠르게 보급되었다. 물론 이는 당의 방침에 대한 저항이나 이의가 원천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북한 체제의 성격이 한몫했다.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A%B5%AD%ED%95%9C%EB%AC%B8%ED%98%B C%EC%9A%A9%EC%B2%B4?action=edit§ion=9)]
섞어 쓰는 정도는 글에 따라 다르다. 대표적으로 1980~90년대 신문에서 쓰인 고유명사, 약어만 한자로 표기하는 정도의 국한문혼용으로부터 심한 경우 기미독립선언서 원문같이 조사만 빼놓고 모두 한자로 범벅해놓기도 한다. 이렇게 쓴 글에서 조사만 일본어로 바꾸면 얼추 일본어와 비슷해진다. 그러나 이렇게 쓴 글은 명사 투성이라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한자를 음과 훈으로 읽어 한자를 써도 토박이말을 살리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한문독법에서 훈독이 사라져 한자를 음으로만 읽기 때문에, 기미독립선언문 같은 심각한 국한문혼용체는 토씨 외에는 고유어의 씨가 말라버린다. 개화기 이후의 과도기 문체에서, 얻다를 '得하다', 열다를 '開하다' 따위로 적는 등 명사뿐 아니라 동사까지 외자 한자에 '하다'만 붙여 쓰기 때문에 지금의 관점으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한문직역체이다. 1895년에 나온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최초의 근대적 국한문혼용체로 여겨지고 있다. 유길준 자신은 최대한 국문(한글)을 살려 쓰려 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당시 그가 지은 책을 본 사람들은 언문을 섞어 쓴 것은 문장이 아니라며 비웃었다고 한다.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A%B5%AD%ED%95%9C%EB%AC%B8%ED%98%B C%EC%9A%A9%EC%B2%B4?action=edit§ion=10)]
- 노력을 궁하였으나 만일 오한 처가 재하면 수정을 원한다.
실질적 의를 유하는 제 단어를 한자 혹 한자어로 표기한 당히 극한적 국한문혼용체다. 즉 조사 내지 어미와 기종의 예외를 제한 여는 전부 한자로 표기한다고 설해도 무방하다. 여차히 문을 기할 경우, 문장의 형은 가일층 현대 일본어 문장과 사할 사다. 하고라 하니, 가명한자교문을 용하는 일본어에서는 한자어는 물론 실질적 의를 유하는 고유어도 역시 대부분 타와 사한 의를 유하는 한자와 대응시켜 표기함으로 인해서다. 그러나 한국식 극한 국한문혼용문과 가명한자교문의 간에는 기종의 결정적 차이가 재한데, 일: 현대일본어에서는 실질형태소라도 보통 한자로 기하지 않는 단어가 재한다. '차', '기'와 여한 비인칭대명사는 일반적으로 'これ', 'それ'로 기하지 '此れ', '其れ'로 기하지 않는다. 이: 한국인은 한자를 독할 시 무조건 음으로 독하나, 일본인은 한자를 독할 시 음독과 훈독이라는 이종의 독하는 방법이 재한다는 사다.
상에서 설한 소와 여히, 기미독립선언서는 여차한 문체를 택하고 있다. 단, '것'을 '사'로 기함은 선언문과 이하다. 차로 인해 선언문을 직접 성을 출하여 독하면 도대체 하한 의인지 지할 수 없다. 1920년대 초반의 동아일보도 차한 문체를 용했다.
이등이 해당 항목의 전문을 독해하였다면, 하여 소소한 자라 칭하겠는가!
하라 하는 거야 지해 광한 한등호!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지해요 현기증 출할 것 동하단 언이에요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A%B5%AD%ED%95%9C%EB%AC%B8%ED%98%B C%EC%9A%A9%EC%B2%B4?action=edit§io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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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한문혼용체에서는 띄어쓰기가 간소화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국한문혼용체는 어디까지나 한국 어문의 일부이므로, 완전히 고대 한문 느낌 나게 할 거 아니면 한국 어문 규정에 맞게 띄어쓰기를 제대로 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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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루 입력기는 일본어 입력기처럼 단어단위로 한자를 변환하므로, 컴퓨터에서 한자입력이 상당히 쉬워진다. 혹시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하기 바란다.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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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가 아니더라도 교육적 측면에서 한자를 혼용해야 한다는 일부 교육계 인사들의 주장이 있기는 하다. 그런 주장 중에 자세한 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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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위키백과의 일부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국한문혼용체 위키백과를 별도로 신설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위키백과의 형태로 개설하는 것은 실패하였다.
그 대신, 국한문혼용체 위키백과를 추진했던 이들이 국한문혼용체 방식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한자위키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한자어를 모두 한자로 변환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한글전용체와 다르지 않으나 어쨌든 국한문혼용체로 읽을 수는 있다. 바로가기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A%B5%AD%ED%95%9C%EB%AC%B8%ED%98%B C%EC%9A%A9%EC%B2%B4?action=edit§ion=12)]
- 국한문혼용체/논쟁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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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를 들자면 조선시대의 왕실에서는 하도 궁이 넓은지라 아침문안을 제하면 왕이나 왕족들끼리 전할 것이 있을 시 글로 적어 보냈다. 조선시대에는 공주라고 해도 여자에게 한문을 가르치지 않았으므로 받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여성이면 한글을 쓰는 식.[4]
한글전용체에는 띄어쓰기가 별도로 적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