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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1.1. 나폴레옹 전쟁의 전개 과정
1.2. 주요인물
1.3.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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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혼란기부터 진행된 나폴레옹의 정복전쟁.
독일에서는 대(對)프랑스 동맹전쟁, 독일 해방전쟁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당시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 가장 진보적인 체제와 만민평등의 사상을 기초로 한 자유, 평등, 우애[1]
등의 시대 정신이 있었지만, 그에 비해 독일은 아직도
융커라 불리는 지방 귀족들에 의한 농노
체제와 여러가지 불합리한 독일판 앙시앵레짐이 있었기 때문에 독일 해방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실례로 당시 라인 강 유역의 선제후들은 같은 독일 민족인
프로이센이나
오스트리아 보다 프랑스 편에 서서 싸우는
것이 더 자랑스럽다고 믿었다.
사실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은 얽혀있기 때문에 이견이 있기는 하나, 대체적으로 나폴레옹이 주도하기 시작한 1796년의 이탈리아 원정부터 나폴레옹 전쟁으로 보는게 일반적이긴 하다.
나폴레옹은 교묘하게 프랑스 혁명의 열기와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을 가진 병사들을 자신의 군사력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물론 나폴레옹의 뛰어난 전술적 역량 역시 뒷받침되었다.
이 당시 프랑스는 주로 모병제[2]
를 택하던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국민병제도(징병제)가 프랑스 혁명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확립되어
있었다. 전성기에는 100만에 달하는 병력이 프랑스에 있었다고 여겨진다. 물론 나폴레옹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더욱이 프랑스는 유럽에선 최초로 군제에 상설 사단 편제를 도입[3]
해서 거대한 규모의
병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데도 앞서있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나폴레옹 개인의 흥망성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나폴레옹 한 사람과 유럽 전체가 싸운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4]
흥미로운건 이 전쟁이 끝난지 정확히 100년만에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 동안 유럽은 보오전쟁,
보불전쟁 정도를 제외하면 [5]
큰 전쟁이 없었고,
식민지 확장에만 몰두하는
제국주의시대가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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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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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쟁 (1796 ~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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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원정 (1798 ~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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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이탈리아 전쟁 (1799 ~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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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전쟁(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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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폴란드 원정 (1806 ~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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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 전쟁 (1808 ~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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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오스트리아 전쟁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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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원정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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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몰락 (1813 ~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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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천하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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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군의 26 원수(계급)들
그리고 몇명 한정으로 원쑤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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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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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그라티엥 베르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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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드 뒤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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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 푸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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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빌뇌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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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 게프하르트 폰 블뤼허
- 그나이제나우
- 클라우제비츠
- 브라운슈바이크
- 샤른호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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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히 알려진 박애는 우애의 오역이다.[2]
대표적으로 대영제국. 철저한 모병제 국가다. 그래도 강력한건...[3]
타국에도 사단 편제는 존재했지만 이는 전시에 여러 연대들을 묶는 임시 편제였다.[4]
이것을 인식한 것인지, 나폴레옹 토탈워에서 비슷한 문구가 나온다. 마냥 농담은 아닌 듯 하다.[5]
외곽의 이탈리아 통일전쟁이라든가, 크림 전쟁이라든가.[6]
하지만 나폴레옹 자신이 직접 회고한 바에 따르면 "자신은 배신 당했다기 보다는 버림 받은 것이다."라고 서술돼있다.[7]
명실상부한 전쟁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 항목 참조.[8]
아일라우 전투에서 대육군과 비등비등하게 싸운 장수다(실제로도 진 게 아니라 시계 확보도 안되는 눈덮힌 폴란드 벌판에서 대포끼리 쏴제끼다가 양측 모두 후퇴한 전투다.). 이 전투에서 제정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승리의 가능성을 짐작했으며, 나폴레옹은 전장을 둘러보고는 이것은 영광스러운 전장이라 할만한게 못된다는 투의 발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