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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쿠.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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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2. 골판지 전기 시리즈에 등장하는 LBX
  3.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의 주인공 미도리야 이즈쿠의 별명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B%8D%B0%EC%BF%A0?action=edit&sect ion=1)]

1.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

Deco.jpg

[JPG image (30.71 KB)]

주제 무리뉴의 첫 황태자

이름

안데르송 루이스 드 소자 (Anderson Luís de Souza)

생년월일

1977년 8월 27일

국적

포르투갈

출신지

브라질 상 베르나르두 두 캄푸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174cm

프로 입단

1996년 SC 코린치안스 입단

소속팀

SC코린치안스(19961997)
SL 벤피카(1997
1999)
FC 알베르카(임대)(19971998)
SC 살게이로스(임대)(1998
1999)
FC 포르투(19992004)
FC바르셀로나(2004
2008)
첼시 FC(20082010)
플루미넨시FC(2010
2013)

국가대표

75경기 5골

2004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

수상
데쿠

외가가 일본계라고한다.
브라질 태생의 포르투갈로 **귀화**한 축구 선수로, 일명 덕후데쿠(Deco)라고 한다. 브라질 리그의 플루미넨세 FC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포르투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어지는 전성기 시절, 교본처럼 완벽한 미드필더라는 찬사를 받았다. 패스, 드리블, 테크닉, 슈팅에 모두 능했으며, 수비적으로도 열정적이며 성실하게 뛰어다니면서 좋은 태클을 성공시켰다.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지만, 왼쪽, 오른쪽을 가리지 않는 다재다능함을 지녔으며 이는 전술이해도가 뛰어나다는 얘기로, 스위칭 플레이 역시 공격적으로나 수비적으로나 절묘하게 구사할 수 있어 어디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팀의 모든 미드필더를 데쿠로 구성해도 좋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프리메라리가 시절까지는.

1996년 SC 코린티안스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으며, 1999년 19세의 나이로 포르투갈로 건너와 벤피카에 입단했다. 팀 훈련 당시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출전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해 2부 리그에 소속된 FC 알베르카에 1시즌동안 임대되었다. 임대 기간 동안 좋은 활약을 펼쳐 시즌 종료 이후 벤피카로 복귀한 뒤 1군 엔트리에 합류할 수 있었으나, 팀과의 재계약 문제에서 갈등을 빚어 결국 2부 리그 팀인 SC 살게이로스로 한 시즌 더 임대를 떠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19경기동안 단 두 골을 득점하는 저조한 모습을 보였고, 당시 벤피카의 감독이었던 그레엄수네스의 주목을 받지 못해 그냥 흔한 선수로 전락하는 듯 싶었다.

Deco_Port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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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벤피카의 리그 라이벌 팀인 FC 포르투가 데쿠의 가치를 알아보고 1998/99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영입을 결정했으며, 서서히 주전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를 잡아간 뒤 2002년 팀에 새로 부임한 주제 무리뉴를 만나 포르투의 핵심 선수로 중용되었다. 데쿠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활약을 펼쳤으며, 2002/03 시즌 팀이 포르투갈 리그와 UEFA컵 우승을 거두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2003/04 시즌에서도 이러한 활약이 계속되어 팀의 포르투갈 리그 2연속 제패에 크게 공현했으며, AS모나코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득점에 성공하는 등 팀의 역사상 두 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비록 리그컵 결승에서 벤피카에게 패해 포르투갈 팀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시즌 종료 이후 'UEFA 올해의 선수' 및 'UEFA 올해의 최우수 미드필더', '포르투갈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Deco_Barcelona.jpg](//z.enha.kr/http://rigvedawiki.net/r1/pds/Deco_Barcelona .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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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04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FC의 감독으로 떠난 무리뉴를 따라 첼시로 팀을 옮길 것이라는 이적설이 있엇지만, 데쿠의 선택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FC바르셀로나였다. 이적료 책정 과정에서 포르투와 바르셀로나 간의 의견 불일치가 있었으나, 결국 1500만 유로UCC 스타 히카르두 콰레스마를 얹어주는 방식으로 4년 계약을 성립시켰다.[1] 바르셀로나 이적 후 가진 첫 경기는 공교롭게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친선경기였는데, 당시 상황은 여기 참조. 이적 이후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의 전술에 잘 녹아들었으며, 팀의 핵심이었던 호나우지뉴와의 호흡도 척척 들어맞았다. 이적 이후 좋은 활약으로 그 해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안드리 셰브첸코에 이어 2위에 올랐으며, 2005/06 시즌 당시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 더블을 달성한 이후 '2005/06 시즌 바르셀로나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

2006/07 시즌 초반에도 스페인 슈퍼컵 우승 및 자신의 생애 두 번째 'UEFA 올해의 최우수 미드필더'에 선정되었으며,[2] 12월에 열린 FIFA 클럽월드컵에서는 당시 알렉산드르파투가 활약하던 SC 인테르나시오날에게 막혀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대회 최우수 선수'에 올랐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당시 유럽 정상급 팀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바르셀로나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레이카르트 감독과 함께 팀의 중심에 서 있던 호나우지뉴와 데쿠가 팀 개혁의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3] 당시 바르셀로나를 뒤흔든 검은양의 중심에는 호나우지뉴, 에드밀손 그리고 데쿠가 있었다. 팀에 분란을 일으켰으니 쫒겨나는건 당연지사.

Deco_Chelse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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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08 직후 이적료 1000만 유로에 3년 계약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를 따라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이적설이 돌았던 첼시로의 이적을 완료했으며, 포츠머스 FC와의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려 팀의 4:0 승리에 기여했다. 다음 경기인 위건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도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어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으며, 이러한 활약으로 8월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10월 팀 훈련 도중 허벅지 부상을 당해 3주 정도 결장했으며, 이후 11월 AS로마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는 좋지 못한 경기력에 퇴장까지 당해 팀의 1:3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바르셀로나 시절에 비해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전반기 좋지 않은 팀 성적으로 인해 스콜라리 감독이 경질되자 주전 자리를 잃게 되었다. 스콜라리 경질 이후 "내가 첼시에 온 이유는 스콜라리 때문이었다"며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에게 불만을 표출했으며, 이에 포르투 시절 팀 동료였던 히카르두 카르발류와 함께 인터밀란으로 이적해 자신의 옛 스승인 무리뉴와 합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왓다. 하지만 첼시는 자신들이 데쿠를 영입할 때 지불했던 가격긴 1000만 유로를 고집했으며, 인터 밀란은 나이와 활약도에 비해 이적료가 높다며 영입을 포기했다. 안습.

첼시에서의 선수 생활이 끝이라고 생각되었던 찰나에 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카를로 안첼로티가 왔으며, 안첼로티 특유의 4-4-2 다이아몬드 전술로 인해 출전 빈도가 높아졌다. 헐 시티와의 2009/10 시즌 프리미어 리그 개막전에서 디디에드록바의 골을 어시스트한 뒤 다음 경기인 선더랜드AFC와의 경기에서 오른발 발리슛으로 득점에 성공해 팀의 3:1 승리에 일조했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본인의 100번째 챔피언스리그 출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초반부의 좋은 활약으로 부활하나 했지만, 박싱 데이 기간에 입은 두 차례 부상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비슷한 시절 비슷한 위치였던 미하엘발락바이어 레버쿠젠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기어코 어느 정도는 클래스를 보여준 것에 반해, 데쿠는 끝까지...[4]

2010 FIFA 월드컵 이후 첼시와의 계약이 끝나자, 팀 동료인 줄리아누 벨레티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브라질 리그의 플루미넨세 FC와 2년 계약에 합의했다. 입단 이후 2010년 브라질 리그 우승을 맛보면서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보냈으며 2013년 8월 은퇴를 선언하였다. 계약은 12월 만료지만 부상으로 커리어를 유지할 수 없었다고.

FC 포르투 시절 당시 좋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호나우지뉴, 히바우두,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등에 밀려 2002년 FIFA 월드컵은 물론 어떤 브라질 국가대표팀이 치른 A매치에도 나오지 못했으며, 포르투갈에서 6년 동안 생활한 뒤 2003년 포르투갈 시민권을 취득해 귀화에 성공했다. 귀화한 직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국가대표팀 데뷔전으로 자신의 전 조국이었던 브라질을 상대하게 되었다. 데쿠는 여기서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터뜨려 팀의 2:1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1966년 FIFA 월드컵 이후 무려 37년만에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꺾는 위업을 달성했다. 데뷔전 이후 국가대표팀의 주전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잡았으며, 유로 2004의 포르투갈 결승 진출에 크게 기여하였다.

![Deco_Red_Card.jpg](//z.enha.kr/http://rigvedawiki.net/r1/pds/Deco_Red_Card.j 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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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6 FIFA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이란과의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골을 넣는 등 팀의 토너먼트 진출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네덜란드와의 16강전에서 욘헤이팅아에게 파울을 범해 경고를 받은 뒤[5] 프리킥 상황에서 공 가지고 고의적으로 시간을 끌어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했으며, 양 팀 합쳐서 4명이 퇴장당하는 혈투 끝에 포르투갈이 1:0으로 8강에 진출했지만 데쿠는 징계를 받아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천신만고끝에 팀이 잉글랜드를 승부차기로 꺾고 4강에 진출했으며, 징계가 풀린 데쿠 또한 4강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유로 2008에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으며, 조별 라운드에서 1위 경장 후보로 꼽혔던 체코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해 팀의 3:1 승리를 도와 팀이 1위로 8강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독일크로아티아에 잡혀 2위로 올라오는 바람에 포르투갈은 8강에서 탈락했다. 그 뒤 2010 FIFA 월드컵 무대도 밟았지만, 코트디부아르와의 첫 경기 이후 엉덩이 부상을 당해 이후의 경기에는 나오지 못했다.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으며, 총 75경기에 출전해 5골을 기록했다.

2013년 여름 브라질에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B%8D%B0%EC%BF%A0?action=edit&sect ion=2)]

2. 골판지 전기 시리즈에

등장하는 LBX

골판지 전기 시리즈에 등장하는 LBX. 자세한 사항은 데쿠(골판지 전기) 참조.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B%8D%B0%EC%BF%A0?action=edit&sect ion=3)]

항목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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