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사를 찾으셨다면 항목으로.
- 법률 용어
- 2013년 영화
2.1. 개요
2.2. 시놉시스
2.3. 등장인물
2.4. 결말
2.5. 흥행
2.6. 미디어 믹스
2.7. 홈 미디어
2.8. 이모저모
2.9. 관련 항목
2.10. 외부 링크
2.10.1. 관련 인터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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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에서 피고인(피의자)의 방어력을 보충하는 임무를 맡는 피고인(피의자)의 보조자. 검사와 대등한 지위에서 소송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보장되고, 따라서 국선변호인 제도가 있다.
형사 피고인의 변호인은 원칙적으로 변호사의 자격을 가진 자 중에서 선임해야 하나 대법원 이외의 법원은 변호사 아닌 자를 변호인으로 선임하는 것을 허가할 수 있다(특별변호인, 형사소송법 제31조). 피고인·피의자 및 그 법정대리인·배우자 등이 선임하는 사선변호인과 변호인이 없을 시 법원이 직권으로 선정하는 국선변호인(형사소송법 제33조, 제282조)으로 나뉜다.
‘변호인’은 소송상 지위이고 ‘변호사’는 직함이라서 변호사가 변호인을 맡는 경우 ‘변호인 변호사 홍길동’ 식으로 적는다. ‘변호인’과 ‘변호사’가 엄밀히 다르다는 증거. 애초에 ‘변호인’은 오로지 형사소송에서만 쓰이는 용어이나, ‘변호사’는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에서도 대리인으로 나설 수 있으므로 더더욱 구별된다.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에서는 ‘변호인’이라는 용어를 써서는 안 된다.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에서 변호사가 소송대리를 하는 경우 ‘소송대리인 변호사 홍길동’ 식으로 적는다.
- 관련 항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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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드라마
러닝 타임 127분
개봉일시 2013.12.18
감독
양우석[1]
출연 송강호, 곽도원, 오달수, 김영애, 임시완, 이항나
국내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해외등급 PG-13 이상 관람가
트레일러. 배경이 80년대인 영화인데 PC방 간판이 보인다. 잠시만 은행 간판도 이게 아닐
텐데? (0:24초 참고)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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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8일 개봉한 영화. 촬영 기간은 2013년 4월 9일부터 2013년 7월 12일까지. 1980년대
부산에서 활동하던 인권변호사 얘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2]
그가 변호했던
부림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알려져 여러 면으로 화제가 됐다. 이런 정치적 판단이
부담스러운지 제작자 측에선 모티브만 따왔을 뿐이지 내용은 1980년대를 살았던 세대 전반의 반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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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에서 인용한다.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다섯 번의 공판이 시작된다!
1980년대 초 부산. 빽도 없고, 돈도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남들이 뭐라든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승승장구하며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10대 건설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 데뷔를 코 앞에 둔 송변.
하지만 우연히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만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 송변.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충격을 받은 송변은
모두가 회피하기 바빴던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하는데...
"제가 하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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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우석
[3]
(송강호) : 대전에서 판사직을 거친 고졸 출신의독고다이세무 변호사이다. 영화의 모델이 된 부림사건에서 해당되는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 및 그 당시의 여러 인권변호사.[4]
송우석은 우연히 부산 학림사건 변호를 통해 인권 변호사로 각성하고 그 후 각종 시국, 공안사건 및 노동쟁의 변호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처음에는 소시민적이면서도 약간 속물적인 모습을 보이며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데모하는 거라며 학생 운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으나[5]
한 달이 넘도록 행방불명이었던 순애의 아들인 진우가 부독련 사건에 얽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모습에 충격을 받고 진우가 읽은 책들을 밤새 읽은 후 자신에게 사건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던 김상필을 찾아가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라고 말하며 진우를 비롯한 학생 9명의 변호인이 된다. -
박동호(오달수) : 송변의 사무실의 사무장. 개업초기 혼자 사무실을 운영했던 송변은 점점 일감이 많아지게 되자 선배 변호사를 통해 사무장을 수소문하게 되고 소개로 찾아온 박동호를 채용하게 된다.
[6]
국밥 좀 그만 먹자고 해도 송우석에게 붙들려서 질리도록 국밥을 먹는 불쌍한 사람(...)[7]``[8]
사무장으로서의 능력은 꽤 있는 듯 변호사들이 너도나도 부동산 등기업무에 뛰어들어 매출이 줄어들자 세무 관련으로 전문 분야를 돌리자고 제안하며 자신의 인맥으로 많은 여러 건수를 물어온다. 송변의 부하직원이라기보다는 거의 동업자의 모습. 초기엔 진우 변호건에 대해 말리고[9]
해동건설 건에 대해 계약하자고 주장하며 한때의 우석처럼 소시민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변해가는 우석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닿은 게 있었는지 탈세혐의로 공안이 뒤져놓아 엉망진창이 된 사무실을 보고 우석이 내가 다 치울 테니까 비서랑 잠시 출근하지 말고 쉬고 있으란 소리에도 "이걸 어떻게 혼자서 다 치워" 라면서 울고 있는 비서에게도 "너도 울지 말고 같이 정리나 하자" 라고 말하며 치우는 간지를 보인다[10]
. 에필로그에서도 방청석에 앉아있는 모습이 나온다. 여담으로 송변의 모델이 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오달수를 닮았다. 박동호의 모티브가 된 장원덕 씨 인터뷰. -
최순애(김영애) :
장조모님이 어머니가 되셨다송변의 단골 식당 주인. 작중으로부터 7년 전, 송우석이 막노동 일을 하며 힘겹게 가족을 부양했을 때 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도망갔다가 진우에게 들킨 적이 있었다. 이후 현재 시점에서 빚을 갚게 되는데 "묵은 빚은 돈 몇 푼으로 빚 갚는 거 아니다, 마음과 발로 갚는 거다. 자주 오란 말이다!" 라고 송우석의 사례를 거절했다. 한때는 모종의 사건 때문에 송우석에게 소금을 뿌리며 쫓아내기도 했지만[11]
진우가 국보법에 걸려 잡혀 들어가자 전에 소금 뿌린 거 미안하다며 제발 좀 도와달라며 송우석에게 눈물로 호소하게 된다. 이후 우석이 부른 증인이 경찰의 계략으로 끌려가고 재판에서 패해 침울한 우석에게 "너는 할 만큼 했다" 며 위로한다.[12]
6년 후에는 우석의 재판에 방청객으로 참여한다. -
차동영(곽도원) : 공안 책임자.계급은 경감. 진 최종 보스. 일제시대 특별고등경찰
[13]
이었던 아버지를 6.25 때 학살로 잃었다. 서울에서 **공적**을 인정 받아 부산으로 내려왔다. 윗선으로부터 사건을 조작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며 이에 따라 철저히 사건을 조작하게 된다. 그의 말을 보면 국가가 있어야 국민을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희생이 있어도 국가권력은 공고히 유지되어야 하며 자신은 경찰이라는 입장에서 필요악적 존재로 더러운 일을 맡아 한다는 식이다.[14]
초반부에는 약간 고민하는 듯 했지만 자기 밑으로 배치받은 윤중위를 갈구면서 악역 확정. 진우 일행을 고문하여 거짓 자백을 받아내더니 법정에서 송우석의 증인 신청에 당당히 응한다. 송우석이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변호사란 사람이 국가가 뭔지 몰라?!" 라며 호통치며 송우석을 깔보다가 송우석의 "잘 알지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국보법이 헌법보다 더 위에 있다는 말입니까!" 라는 일갈에 눈물이 맺힌 눈으로 "닥쳐, 이 빨갱이 새끼야!" 라고 대응한다.--[15]
마지막에 증인으로 등장한 자신의 부하인 윤중위의 증언을 계략으로 무효화시키곤[16]
이후 행적은 불명.[17]
곽도원의 인터뷰에 의하면 연기 모델은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이라고 한다. 그에 관련된 수기나 기사, 그리고 사진까지도 꼼꼼히 보면서 캐릭터를 연구했다고.그랬구나... 그래서 그토록 혐오감이 들었구나. 이제야 알겠다[18]
-
박진우(임시완) : 최순애의 아들.
손녀사위가 아들이 됐다부산대 공과대학 재학생이다.[19]
1학년이다. 송우석이 학생 운동에 대해 고등학교 동창인 이윤택과 한바탕 싸운 뒤 "엄마가 저렇게 고생해서 너 공부 시키는데 너도 데모하면 천벌받는다" 고 말하자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20]
" 이라고 받아친다. 여성들을 모아놓고 야학을 운영하던 중[21]
차동영 일당에 의해 공안에게 납치되듯이 잡혀가 온갖 고문들을 당한다. 영화에서는 구타, 물고문은 기본이고 얼굴에 수건을 덮고 라면 국물을 코와 입에 부어버리는 속칭 코렁탕 고문, 손발을 철봉에 묶어 온몸을 패는 '통닭구이' 고문까지 재현했다. 그 수위는 <남영동1985>과 맞먹을 정도.[22]
그 시대의 청년들이 마주해야 했던 폭력성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실제는 저것보다 더 심했을 테니까. 박진우의 모티브가 된 송병곤씨의 글. 6년 후엔 우석의 시위대 앞에서 박종철군의 영정을 들고 있었고 영화판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소설판에서는 방청석에 앉아있었다. -
김상필(정원중) : 송우석 변호사의 선배격의 인물로 인권변호사로 추정
[23]``[24]
된다. 다행히 초반에 송우석에게 돈을 빌려줄 만큼의 자금은 있었던 듯하다. 중반부에는 나라에서 찍혔는지 변호사 자격 중지 상태가 되서 사건을 맡아줄 변호사를 찾아다닌다[25]
. 송우석에게 여러 충고를 했을 때 현실에 좌절하는 인물로 보이기도 했지만 극후반부에는 송우석의 제1변호사이자 변호사 99명의 대표가 된다. -
이윤택(이성민) : 송우석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신문 기자. 작중에서는 '부산신보' 라는 신문사 소속으로 나온다. 아지매 국밥집에서 송우석과 싸운다. 정직한 기자들은 죄다 신문사에서 쫓겨난다고 울분을 토하면서도 본인은 생계 때문에 정부의 언론 통제/조작에 그닥 입 닫고 직장에 앉아있던 자기혐오가 그 당시 파워 속물근성 및 아무것도 모르고 술 취해서 망언하던 송우석을 보고 폭발한 듯하다. 학생 운동을 두고 송우석과 갈등을 겪은 후 법원에서 학생들의 변호인으로 온 송우석에게 "니 돈 좀 버니까 심심했는가베?", "니 정치할려 그러나?" 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송우석의 진심 어린 변호를 본 후에는 4차 공판 직전 계란 테러로 옷이 더러워진 송우석과 옷을 바꿔 입어주고 이후 우석이 증인을 확보하자 우석의 부탁대로 외국 기자들을 끌어와서 언론의 힘을 보여주게 된다.
국가 제 4부의 역할 : 입법/사법/행정 견제 -
윤성두(심희섭) : 계급은 중위. 작중 대사에 따르면 제69보병사단 소속 군의관인 듯
[26]
. 차동영 경감의 밑에 배치받고 고문실에서는 '윤과장' 으로 불리며 고문취조를 당하는 학생들의 진료를 맡게 된다. 진심으로 괴로워했는지 심하게 구타 당한 진우를 응급치료할 때 '기절한 척하고 있어' 라고 말하고 링거 맞고 있을 동안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도 한다. 결국 마지막 공판 당시 휴가를 나와서 짜장면 배달부를 매개로 송우석과 접촉, 증인으로 나서서 증거 조작 및 고문사실을 폭로하지만 차동영의 계략에 의해 탈영병으로 전락하여 군법에 회부당한다.[27]
1987년의 추모식 때 잠깐 모습이 비춰졌다. 참고로 윤성두 중위라는 인물과 그 역할은 실제 부림사건에는 등장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과 설정이다. 아마도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하다. -
판사(송영창) : 작중 부독련사건(부림사건)을 담당한 판사. 페이크 최종보스. 송우석이나 피고들의 말을 딱딱 잘라먹고 편파 판정을 하는 흔한 악당 판사의 면모를 보여주며 재판 직전에 검사와 변호사들을 모두 불러모아 대충 정리하자고 말한다
[28]
. 나중에 윤택이 외국 기자들을 모아준 덕분에 결국 윤중위를 증인으로 채택하지만 차동영의 계략에 의해 송우석과 증인을 퇴정시킨다. 그래도 완전히 악인은 아닌 듯 비록 3년형을 선고하긴 했어도 검사측에 2년 뒤 가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고 한다. 사실 국보법을 들먹이며 고자세로 일관하긴 했지만 시종 검사측이 송우석에게 논리로 발린 데다가 외신까지 들이닥친 상황이라 이 정도에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듯.[29]
-
강병철(조민기) : 작중 부독련사건을 담당한 검사. 차동영과 결탁하여 부독련사건을 빨갱이 모임으로 조작하며 송우석을 압박한다. 차동영에 비해 분량으로나 카리스마로나 많이 밀리는 캐릭터로 비록 검사지만 차동영에 비해 활약
이라 쓰고선 만행이나 마찬가지인 짓이라 읽는 짓은 적은 데다가 법정에서는 송우석에게 계속 발리는 모습을 보인다. 당시에는 경찰이 검찰보다 우위에 있던 시기인데 적당히 자료 모아서 그럴 듯하게 포장하면 쉽게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 모른다애초에 제대로 조작하려고 했으면 숱한 더 많은 불온서적을 쑤셔넣었겠지[30]
-
이창준(류수영. 특별출연) : 해동건설의 부회장. 회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회사의 증여세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송우석을 찾아갔다 그에게 정식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한다. 하지만 후에 송우석이 부독련사건의 변호인이 되어서 정부의 조작에 훼방을 놓자 송우석을 짜르라는 압박이 들어오자 송우석과 독대를 한다. 국세청에 줄 뇌물 액수와 변호사 수임료가 비슷함에도 굳이 변호사를 고용하려는 이유로 송우석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발언한다. 설정만 보면 그야말로 드라마 등에 나오는 악덕 재벌 2세 같아보이지만 송우석과의 독대에선 미국 유학 시절 겪어봤던 미국식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부러워하고 그게 한국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차지한 윗대가리들은 말을 들어처먹을 리 만무하고 그렇기에 힘으로서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국민 소득이 지금의 3배 이상 올라야 한다면서 지금은 물러나라고 송우석을 설득하지만 끝내 송우석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돈과 권력밖에 모르는 졸부와는 확실히 다르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인 입장인 사람이다.
[31]
-
박병호(차광수) : 부독련사건의 변호인 중 한 명. 공안 검사 출신으로 법조계의 현실을 잘 알아서 '국보법 사건은 어차피 유죄로 끝날 테니 형량이나 줄이면 다행이다' 란 소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송우석과 사사건건 충돌하는 편. 하지만 송우석의 활동과 끝내 진실을 밝혀내는 걸 보고는 송우석이 옳았고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한다. 이후 변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후 송우석의 99명 변호인에도 제2변호사로 참석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모티브가 된 당시의 실제 인물들에 관해 정리한 글.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B%B3%80%ED%98%B8%EC%9D%B8?action= edit§ion=6)]
송우석은 사건을 조작한 진범인 차동영까지 증인으로 불러내 심문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친구이자 기자인 이윤택의 진실한 기사에도 불구하고
언론으로부터 '법정에서 난동을 부린 변호인' 으로 몰리며[32]``[33]
다른 변호사들로부터 '빨갱이 변호사 물러나라' 라는 비난과
계란 세례를 받게 된다. 게다가 공안의 감시까지 붙은 상황.
이에 송우석은 짜장면 배달부와 옷을 바꿔 입고 사무실을 탈출하게 되며 고문실을 직접 목격했던 윤중위를 성당에서 만나 증인이 되어달라
설득한다. 짜장면 배달부가 우석이 시키지도 않은 짜장면을 메모와 함께 사무실로 갖다주라고 했다는 걸 보면 정황상 휴가를 나온 윤중위가
송우석에게 짜장면 주문을 매개로 접촉한 것[34]
. 또한 선배 변호사인 김상필과 이윤택에게 부탁하여 외국 기자들을 모아달라고 한다. 이후
송우석은 마지막 공판일 아침에 판사를 찾아가 윤 중위를 증인으로 신청하며 '증인 신청 기각하면 기자들 불러놓고 양심 선언으로 기자회견 열
거구요. 거기 외신들도 온다고 하던데... 아 그리고 저는 옆에서 증인 신청을 기각했다는 게 이 재판이 완전히 조작된 것이라고 말할 겁니다'
식으로 엄포를 놓아서 증인 신청을 받아낸다.
마지막 공판. 외국 기자들도 와서 함부로 재판을 끝낼 수 없는 상황에 윤중위가 증인으로 등장해 모든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송우석의 열변이
이어지면서 모두들 승소할 거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차동영이 나타나 검사에게 뭔가를 건네주고 검사는 윤중위에게 군인인데 여기 어떻게 나왔냐고
물으면서 윤중위는 사실 무단 군무이탈 그러니까 탈영병이라면서 이 증언은 그냥 탈영병이 자신의 죄를 없애기 위한 거짓말이라면서 증언이 무효라고
말한다. 윤중위는 자신이 정식으로 휴가를 신청해서 나왔다고 항의했지만 이미 차동영의 술수로 헌병들이 법원까지 온 뒤였고 판사는 증언
삭제+변호사 측의 증인 보호 요청 거부+이 법정은 일단 윤중위 군사재판에 쓴 뒤 2시간 뒤에 다시 시작 콤보로 다 된 판을 뒤엎는다.
송우석은 재판장석까지 달려가 판사의 팔을 잡고 법봉을 못 치게 하지만[35]
결국 경찰과 군인들이 들어와 송우석과 윤중위 둘 다
끌려나간다. 송우석은 최순애의 국밥집에 찾아가 미안하다고 하지만 최순애는 변호사님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냐며 괜찮다고 하며 박동호의 안내를
받아 들어온 김상필 일행이 2년 후에 석방하기로 했다[36]
고 전해준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송우석은 그 소식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손을 움직여 묵묵히 국밥을 먹는다.
시간이 흘러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자 송우석과 김상필 등은 시민들과 함께 추모행진을
벌이게 되고[37]
결국 시민들을 선동한 혐의로 구속된다.[38]
이후 재판을 받게 되는데 송우석의 제1변호사를 자청한 김상필이
"변호인 인원이 많은 관계로 방청석에 앉게 되었으니 참석 변호인단을 호명해 달라" 라고 말하며 명단을 판사(송영창이 아닌 다른 판사)에게
제출한다. 판사는 "이게 다...?" 라며 놀라더니 이름을 쭉 읽어나가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변호사란 직함을 생략하고 이름만 불러야
될 상황이 된다.[39]
판사의 호명에 따라 각 변호사가 일어나서 대답하는 동안[40]
아내는 송우석을 바라보고 송우석 역시 뒤를
슬쩍 돌아보다가 판사석(과 관객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다 웃으면서 화면이 어두워진다. 그리고 '
이 사건을 위해 부산의 변호사
142명 중 99명이 출석했다'
란 자막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참고로 99명 출석은 실화다.
출처.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B%B3%80%ED%98%B8%EC%9D%B8?action= edit§ion=7)]
12월 19일 하루 개봉으로 23만명을 동원하여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는 물론 한국 영화 광해나 7번방의선물 등의 동일기간 기록도 뛰어넘는
기록을 세웠다. [#](http://news.maxmovie.com/movie_info/sha_news_view.asp?newsType=&p
age=&contain=&keyword=&mi_id=MI0099951262) 12월 25일, 개봉 7일만에 300만 관객을 넘어섰다. 화려한
특수효과가 쓰인 것도 아니고 비교적 가까운 시대를 다루고 있는 사극이라서 제작비가 75억원에 불과(...)하기[41]
때문에 이미 12월
25일까지의 흥행으로 손익분기를 넘었다고 한다.
12월 22일, 개봉 5일만에 관객 수 175만을 돌파하면서 송강호는
설국열차,
관상이 각각 900만을 모은 것과 합쳐서 한
해 동안 2천만의 관객을 모은 전인미답의 흥행기록을 달성했다.[42]
조금 더 나아가 보자면
설국열차가 7월
31일, 관상이 9월 11일 개봉이므로 기간으로
따지면 1년도 아니고 단 6개월 만에 3천만 관객을 동원한 셈이 된다.
12월 23일에 200만 관객, 12월 25일에 300만 관객, 12월 28일에 400만 관객, 12월 30일에 500만 관객, 2014년
1월 1일에 600만 관객, 1월 4일에 700만 관객, 1월 6일에 800만 관객, 그리고 1월 12일 개봉 25일만에 90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2013년 송강호가 주연으로 나온
3개의
영화가 모두 900만을 돌파했다. 이는
7번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 아바타보다 빠른 속도이다. 1월
13일, 937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앞서 송강호 주연의
두
작품의 기록을 깨뜨리고 여기에 송강호 주연
최다관객 영화 2위에 등극했다. 최종보스화 되는
과정?
마침내 1월 18일, 아바타보다 일주일 빠르게 [천만 관객을](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
LSD&mid=shm&sid1=106&oid=108&aid=0002275804)
동원했다. 한국
영화로선 아홉 번째, 외화까지 포함하면 열 번째 천만 클럽 달성. 양 감독으로서는 데뷔작이 천만을 때렸으니 느낌이 남다르지
않았을까
영화의 흥행으로 송강호는 한 해에 약 3천만 관객을 모은 최초의 기록과 더불어 배급사인 N.E.W는 2013년 한해에만 투자와 배급, 제작에 나선 7번방의선물(1281만), 감시자들(550만), 몽타주(209만), 신세계(468만), [숨바꼭질] (/wiki/%EC%88%A8%EB%B0%94%EA%BC%AD%EC%A7%88%28%EC%98%81%ED%99%94%29)(560만)과 이 영화 흥행(2013년에 거둔 것만 합친 568만까지)을 합쳐서 한국 영화 6편만으로 무려 3500만 관객이 넘는 대박을 벌어들여 다른 경쟁사인 CJ,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를 제쳤다. 또한 이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기면서 N.E.W에서 배급한 2013년 개봉 한국 영화 6편으로만 4000만 관객 기록까지 세우게 되었다.
2월 1일에는 1100만 관객을 넘어섰고 2일에는 1111만 관객을 넘기면서 실미도를 제치고 역대영화 흥행 9위(한국영화 8위)에 올랐다. 3월 들어 IPTV로 유료 상영을 시작하면서 최종적으로 1136만 4천여 명을 기록했다.
미주지역에도 2월 7일 개봉했다. [출처](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
=106&oid=018&aid=0002910311). 다만 현지인에게 크게 통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흑역사
디워를 제외하면 미주 지역에서 개봉되는 대부분의 한국 영화는 **리미티드** 방식으로배급되게 된다. 사실 비단 한국 영화
뿐만 아니라 미국에선 어지간한 해외 영화는 리미티드 개봉이다. 심지어
영국 영화나 옆나라
캐나다 영화조차도 어지간한 대작이 아니라면 리미티드로 걸리기 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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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미디어 믹스 ¶
3월 12일에는 OST가 발매되었다.
2014년 4월 18일 소설판이 발매되었다. 전자책으로도 구입 가능하며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몇몇 장면이 나오며 몇몇은 영화와는 살짝 다르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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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6일 다운로드 서비스와 VOD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2014년 7월 30일 초회 한정판 DVD가 발매 되었으며 2014년 8월 20일 일반판 DVD가 발매 되었다.
2014년 9월 24일 한정판 블루레이와 일반판 블루레이가 동시 출시되었다. 한정판 블루레이는 출시 이전부터 예약을 받았으며 출시 이후부터 유통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DVD 판과는 달리 삭제 장면 등 없던 스페셜 피처가 추가된 것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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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부산의 학림사건이라 불리는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다. 1981년 발생한 공안 사건인데 사회과학 독서모임 회원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하여 고문한 뒤 기소한 사건이다. 당시의 공안 책임자는 뒤에 국회의원 3선을 지낸 최병국
[43]
이었고 무료 변론을 맡았던 측이 노무현과 김광일, 이흥록, 장두경, 박재봉, 정차두[44]
였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후엔 정치적으로는 용공사건이란 얘기가 나왔으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남아있다가 2009년에서야 무죄가 선고됐다. 다만 국보법에 대해서는 법원이 파기하지 않아 판단하지 못했고 집시법과 계엄법 등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관련 기사. 모티브가 된 부림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대해서는 다음 항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관련 항목. 2014년 2월 12일, 부산지법은 부림사건의 재심에서 국보법 위반을 포함한 모든 혐의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 -
당시 공안 검사였던 천하의 개쌍놈 고영주는 부림사건이 조작이라는 것을 부인하면서 영화의 내용 중 일부가 과장이거나 거짓이라고 하며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가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고 국가를 부정하려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사 링크. 여기에 대한 반론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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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1987년 '대우조선 이석규 사망 사건' 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전국적으로 노동운동이 시작된 시기였다. 그러던 중 8월 거제군에서 대우조선소 노동자 이석규가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노무현 변호사는 진상조사 요청을 받고 거제로 파견되었다. 노동자와 유족들을 도와 사태 수습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온 노 변호사는 '장례식 방해' 와 '3자개입' 혐의로 구속되고 부산구치소에 수감되어 23일간의 옥살이를 하게 되는데 부산변호사회는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고 공동변호인단을 꾸린다. 그 후 변호인단은 노 변호사에 대한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하게 되는데 당시 노 변호사의 변호인으로 참여한 변호사의 수는 무려 99명에 달했고 그 중 부산 지역 변호사만 91명이었다. 이는 당시로는 사상 최대의 변호인단 규모였다. 영화에서는 6월 항쟁을 즈음하여 열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추모식에서 체포된 것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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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마지막 법정의 모습엔 수형번호 33번이 찍힌 죄수복을 입고 피고인 자리에 선 송우석이 그려지는데 이 역시 실제 법정에 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 그대로이다.
![E13898798127WUyymmIx3CDevrhyrFs.jpg](//rv.wkcdn.net/http://rigvedawiki.net/r 1/pds/_eb_b3_80_ed_98_b8_ec_9d_b8/E13898798127WUyymmIx3CDevrhyrF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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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부림사건보다 시기상으로 앞서 일어났던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이었던 학림 사건이 재심 결과 무죄로 결론 나면서 판사를 맡았던 사람들이 2012년에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다들 알 만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2심의 배석 판사를 맡았었기 때문에 2012년 대법원 재심판결 이후 민주당에서 사과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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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양우석(이번이 첫 장편영화 연출이다)에 따르면 초안은 웹툰으로 기획됐다고 한다. 양우석은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연재됐던 웹툰 《스틸 레인》의 스토리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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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강호와 배역의 모티브가 된 노무현 대통령은 경남 김해시 출신이라 고향이 같다. 때문에 송강호는 《밀양》 이후 간만에 경상도 사투리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속 모자(母子)로 등장하는 김영애와 임시완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부산 출신이다. 학교도 둘 다 부산에서 나왔다. 김영애는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임시완은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 중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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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9일 첫 언론 시사회를 가졌고, 2013년 11월 30일 제주특별자치도를 시작으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전주시, 천안시, 대전광역시, 춘천시를 거쳐 서울특별시, 수원시, 김포시까지 진행되는 국토 대장정 시사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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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후 박찬욱 감독이 울다가 부은 얼굴로 영화를 추천하는 인터뷰를 했다. 영상 보기. 영상에 김지운, 봉준호 감독의 추천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 제작자는 아래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라고 뜨는 엔딩 크레딧 끝부분에서는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감독은 물론이고 이창동 감독과 배우 김옥빈의 이름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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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 씨네21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20자평과 평점을 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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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기자의 깨알 같은 표현(...) 평점 짜게 주기로 유명한
박평식 평론가가 7점이라는 엄청난 점수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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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 상황으로 봐선 영화적 완성도와 상관 없는 이유로 영화의 가치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정식 개봉하기도 전에 누리꾼들 사이에서 진영논리가 팽배하게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런 진영논리의 싸움은 개봉 후에도 이어졌다. 다만 시사회와 개봉 후의 관객 반응과 영화 평론가의 비평에서는 진영논리를 제외하고도 대체로 호평이었다. 물론 모티브가 모티브인 만큼 감정적 서술이 자주 보이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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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보니 송강호가 처음에 거절했다고 알려졌는데 송강호 본인은 "그런 영화 외적인 부담감보다는 순전히 내가 그 분의 삶을 잘 묘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김영애는 정치적 외압을 우려해 출연을 망설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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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이유로 투자가의 유치에도 어려움이 있었으나 송강호의 출연이 결정된 이후 투자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한편 송우석의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설정되어 몇몇 30대 배우에게 시나리오가 전달되었으나 대부분 난색을 표했고 송강호도 장고끝에 수락을 결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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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인터넷판인 조선닷컴에서 송강호가 《설국열차》, 《관상》을 찍고 또 《변호인》을 찍는다며 "급전 필요한가" 라는 어처구니없는 제목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것도 지면에는 실리지 않는 인터넷 전용 기사에다가 기자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무기명 기사
찌라시로 올라왔다.
시사회 당시 이에 대한 질문에 송강호는 "급전은 항상 필요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또한 조선일보는 곽도원의 무대인사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변호인 시사회 '곽도원 객석난입'... "노무현 연상케 하는 돌발 매너!" 라는 제목을 붙여 낚시질을 하기도 했다. 제목 보면 곽도원이 마치 큰 무례를 저지른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 기사 내용은 곽도원이 무대인사를 열정적으로 했다는 내용이니... 무대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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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개봉일은 2013년 12월 19일이었으나 2013년 12월 18일 전야 개봉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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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영화인 만큼 논란이나 화제의 영화에 대해서 언급될 때마다 들끓는 이동진 평론가의 블로그 댓글란이 또 난리가 났다. # 이에 대해서 이번에는 이동진 평론가가 평소의 부드러운 문체에 비해서 날이 선 답글을 다시 올렸다. # 이동진이 영화에 대한 장점과 아쉬운 점들을 들어 정치성과 거리를 두고 평을 적었음에도 정치성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용기 없다는 뉘앙스의 댓글을 단 누리꾼들 탓. 사실 모티브가 된 인물이 인물이다보니 리뷰 중에서도 그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소견을 밝힌 리뷰가 많긴 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영화 리뷰인데 그런 점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공격하는 게 옳은 것은 결코 아니다. 몰지각한 이들이 몰려와 댓글 테러를 가하는 바람에 이례적으로 답글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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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인 주한 영국 대사관에서 역사학자 'E.H. 카' 에 관한 소개
[45]``[46]
와 그의 저작인 '역사란 무엇인가' 에 관한 추천을 담은 문서를 발급 받은 일, 변론에서 '서울대 추천 도서가 이적 표현물이면 서울대도 빨갱이인가' 라고 말한 것이나 조지 포먼과 무하마드 알리의 권투 경기 비유[47]
를 통해 원고측 주장을 논박한 일 등은 당시 부산 학림사건 공판에서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다가 옥살이 한 당시 대학생(경희대학교)이었던 50대 남성이 32년만에 무죄를 받았다. 2014년 11월 25일, 서울북부지법 형사5 단독 변민선 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던 김모씨에대한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내렸다. 당시 1982년에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던 김모씨(53)는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러시아 혁명사', '사회사상사' 등을 읽었다는 이유로 고문당하였으며 "북한에 동조하는 이적활동을 했다"고 강압에 의한 자백을 하였다. 판사는 판결과 동시에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사법부가 가혹행위를 눈감고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피고에게 사죄하였다.
[48]
-
영화에 나오는 요트 에피소드 또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노 변호사는 영화에 나온 것 처럼 1988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요트를 타면서 부산요트클럽 회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냥 나가볼까 하는 레벨이 아닌 진짜 올림픽을 목표로 일본까지 가서 강습을 받기도 했었다. 공교롭게도 이 요트가 훗날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노 변호사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1991년, 조선일보의 '노무현 의원은 호화요트를 소유한 상당한 재산가' 라는 내용의 보도 때문이었다. 노 의원은 이에 대해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조선일보는 자매지인 주간조선을 통해 계속해서 악성 루머를 인용한 기사를 썼다. 이에 노 의원은 조선일보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사죄광고 청구에 관한 민사소송을 걸었고 1심에서 '명예훼손이 명백하다' 며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노 변호사가 소유했던 요트는 80년대 당시 가격으로 120만 원 정도 하던 소형 요트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대 포니2 자동차의 출시 당시 가격이 약 350만 원 하던 시기였다. 1심 판결 이후 조선일보 사장과 해당 보도를 한 담당 기자가 사과를 했고 소송은 취하되었지만 이후 조선일보의 공식 정정보도나 사과보도는 없었다. 이것을 반영한 듯 영화 속에서도 송우석을 찾아온 김상필이 요트를 보면서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는 호화요트 장만했다고 소문이 났다' 는 식으로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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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변호사가 사법시험 합격 전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 막노동을 하던 도중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도망갔던 일과 나중에 성공한 후 식당에 돈을 돌려주러 간 일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물론 메뉴가 돼지국밥이었다거나 그 집 아들이 코렁탕 먹으러 끌려가거나 한 일은 없었지만 영화에 도입된 설정은 엄연히 실화에서 차용한 에피소드이다. 노무현 회고록 등을 보면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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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석 감독은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해서도 균형을 맞추었다. 학생들이 고문 당하고 마지막으로 말을 맞추는 장면에서 임진우 앞에 친구가 "우리가 서울에서 김씨를 만나고 내려오는 길에 벚꽃을 보면서 예쁘다고 했잖아" 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으며 임진우는 멍한 표정을 짓는데 거짓말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기가 차서일 수도 있고 어떻게 저렇게 사실처럼 술술 말할 수 있는가라면서 놀라서일 수도 있다. '서울 사는 김씨' 는 당시 주사파의 지도자격이었던 김현장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김씨를 만나고 내려오는 길' 이라는 그들이 지어낸 거짓말에 '벚꽃을 보고 예쁘다고 했다' 는 학생들 사이의 진실이 교묘하게 섞이면서 거짓을 지어내고 그것을 실제와 연결시키는 것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장면을 연출한 의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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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변호사 99명이 재판에 참석한 놀라운 장면도 실화이다. 의도는 영화에서 보여준 것과 조금 다르다. 당시 사법고시와 변호사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는데 정부 비판보다는 일종의 귀족인 우리를 시위 참여 정도의 일로 감히 재판장에 세웠다는 것에 항의하려는 의도가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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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화의 표를 대량구매했다가 막판에 대거 환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것도 관객수가 많은 주말을 노려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주말 객점율이 평일 객점률보다 낮은 말도 안되는 상황이 일어났다고. # 이것이 사실이라면 평점 테러와 엮여서 고의적인 영업방해일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배급사 측은 전 극장을 확인했는데도 확인된 바가 없다며 이를 부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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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관객을 넘자 공짜표가 남발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몇몇 기업에서는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할 목적으로 배급사와의 협의를 통해 《괴물》 등의 한국 영화나 외국 영화들을 보여줌으로써 자사를 홍보하는 방식을 홍보수단의 일종으로써 행하고 있다.
[49]
따라서 이는 각 기업들의 홍보 수단으로 해당 영화를 상영했을 뿐이며 배급사와 협의를 통하여 관람객 수를 통보하여 업체에서 돈을 주기 때문에 공짜표를 뿌린다는 주장은 엉터리 주장이다. 변호인의 배급사인 NEW는 이러한 공짜표에 대해 배급사와 관계 없는 행위라는 발표를 하였다. -
문재인은 198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여 그 이후에 노무현과 합류하였으므로 부림사건과 연관이 없다. 다만 마지막에 99인의 변호인이 호명되는 장면에서 문재인과 닮은 엑스트라가 등장한다. 실제로 99인의 변호인 중 문재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반영한 듯하다. 더하자면 그래도 평생의 파트너인 문재인을 아예 없애기는 아쉬웠던지 영화 중 사무실 여비서의 성이 문씨이다. 문재인이 노무현의 비서실장이었음을 감안한 설정인 듯하다. 그리고 99인 변호사 중 호명된 박상순의 모티브는 박원순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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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핵심인물인 박진우는 당시 실제 부림사건 피해자들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훗날 당시 부림사건 피고인들에게 고인이 결혼식 주례를 서주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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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가 배경이기 때문에 당시를 보낸 현 4, 50대 이상의 부산 시민들에게는 익숙한 장소가 많이 나온다.
사실 부산의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어서, 젊은 층에게도 익숙한 장소들이다. -
부산이 배경이긴하지만 상당부분이 대전에서 촬영되었다. 송변호사가 계란을 맞는 법원 외부장면과 법원 안에서 기자친구와 만나는 장면은 대전 중구에 있는 옛 충남도청건물에서 촬영되었다. 그리고 김변호사집 앞에서를 사건을 맡겠다고 하는 장면등은 대전 동구 정동일대에서 촬영되었다. 이들 지역은 대전에선 구도심이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개발에서 소외되어 옛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 http://daejeonstory.com/5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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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들일 필요가 없는 영화이긴 했지만 송우석이 변호사일 때의 재판정과 송우석이 피고인인 재판정을 동일한 장소에서 촬영한 것에 대해선 지나치게 무성의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하다못해 내부 인테리어만이라도 약간 변화를 주는 것이 좋았을 텐데 마이크 위치까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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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1980년대이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전두환이 묘사된다. 땡전뉴스라든가, 관공서 사무실에 부착된 사진이라든가, 송 변호사가 "불법적인 일은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라고 따지자 함께 변호를 하던 박병호 변호사가 "법대로 하자면 대통령부터 반란 수괴죄로 잡혀가야 된다" 라고 답하는 내용이 나오는 등 여러 부분에서 언급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동영이 경감으로 임명되는 장면에서 직접적으로 전두환의 이름이 언급된다. 그리고 차동영이 경감으로 임명되어 보안사와 술을 먹을 때 "부산에서 광주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 는 보안사 대령의 언급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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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소재 중 하나로 돼지국밥이 등장하는데 정작 송우석 역을 맡은 송강호는 체질상 고기가 신체에 맞질 않는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생선이나 채소류를 즐긴다고 한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은 돼지국밥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삼계탕을 좋아했다고 한다. 영화 내에서도 송우석이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돼지국밥 자체를 먹는 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송강호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
[50]
-
미국, 캐나다
[51]
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다. 한때 개봉이 불투명해졌단 소식이 들려왔지만 배급사인 NEW 측이 공식 트위터를 통해 2월 7일 개봉으로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웰고 홈페이지에 영화정보 및 개봉 극장 목록이 올라왔다. 캐나다 지역에서는 벤쿠버와 토론토 지역에서 개봉될 예정으로 보인다. -
흥행 대진운이 매우 좋은 편인데 변호인에 1주 앞서 개봉해 흥행을 위협할 수 있던 대작이던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가 부율 문제로 서울 소재의 CGV와 롯데시네마에서 상영하지 않게 되었고 《변호인》보다 1주일 후에 개봉했던 《용의자》는 평타 정도의 작품이었다. 흥행 페이스가 결정되는 초반에 이렇다 할 대작을 만나지 않은 것은 정말로 운이 좋은 일이었다. 그 이후 작품은 2014년 1월 16일에 개봉하는 《겨울왕국》 정도였다. 결국 《겨울왕국》에게 1위를 내주었지만 그럼에도 좋은 성적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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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 돌파를 기념하여 본편 공개 4분 영상이 공개되었다. 출연 배우들의 감사인사 뒤에 본편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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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지역에서는 와이드 릴리스가 아니라 한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한 리미티드 개봉이지만 미국의 양대 권위지라고 할 수 있는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 모두 이례적으로 리뷰기사를 게재하였다. 뉴욕 타임즈평, 워싱턴 포스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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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기자 현대사 실존 정치인을 다룬 영화들이 여럿 기획되고 있으나 그 중에선 반대 정치이념적인 망상으로 홍보되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육영수 여사를 그려낼 퍼스트 레이디-그녀에게 # 같은 경우엔 박근혜 대통령 취임과 같이 투자설명회가 있었으나 각본이나 여러 모로 비아냥을 듣으며 투자가 뚝 끊겼다. 그러다가 이 영화 대박으로 해당업체에서 다시 영화를 기획하고 있으나 역시나 평이 무척 안 좋아서 별다른 제작투자 소식이 없다. 더불어 서세원은 '노무현 대통령 영화도 대박을 거둬들였으니 이제 내가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직접 감독하여 전국 3000만 관객이 당연히 와야 한다' 느니, '하나님 뜻으로 만들어야 한다' 느니 온갖 종교적, 정치, 이념 편향적 헛소리를 지껄여 비웃음을 들었고 보수 언론들에게도 좋은 반응이 없다. 서세원 항목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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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다룬 다는 점에서 존 포드 감독, 헨리 폰다 주연의 젊은 날의 링컨과 비교되기도 했다. 듀나의 젊은 날의 링컨 언급, 허문영 평론가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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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개봉되지 않았지만 인터넷으로 본 네티즌들이 민주화를 억압하는 자국의 상황과 대비하여 영화를 극찬한 모양이다. 장쯔이도 웨이보에서 이 영화를 극찬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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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홍콩 우산 혁명에 참여한 인원들은 한국이 거친 민주화를 위한 희생을 배웠다면서 이 영화를 예로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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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웹툰 스토리 작가로 스틸 레인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변호인은 이 감독의 영화 데뷔작.[2]
고졸출신, 대전에서 판사를 했으며, 아들이름이 건호. 이것만 봐도 대충은 짐작이 간다.[3]
이름은 보다시피 배우와 감독의 이름에서 각각 따온 것이다(송강호+양우석).[4]
실제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고졸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대전지법에서 판사로 6개월간 재직 후 귀향하여 부동산 등기 전문 변호사와 세무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노무현 변호사가 상고를 나온 것은 세무업무에 꽤 도움이 되었다고 자서전에 쓴 바 있다. 기초적인 회계학, 즉 부기의 지식이 없다면 아무리 법조문에 정통해도 세법관련 업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당시 변호사들 중에 이런 역량을 갖춘 사람은 드물었다. 다만 부산상고(현재의 개성고등학교)는 당시 1, 2등 아니면 써주지도 않을 정도로 지역 탑클래스 고등학교였기에 설명만큼 빽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와 함께 일했던 장원덕 씨(본 작에 나오는 박동호의 모티브가 된 인물)의 인터뷰에 의하면 상고 선후배들이 사건을 줬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는 부산지역의 세무사였고 사건을 물어다 주면서 상부상조도 했다고... 그리고 위 인터뷰에 의하면 등기를 은행에서 떼는데 당시 부산상고는 은행을 가거나 아니면 대학을 갔다. 즉 은행 가면 죄다 노무현 대통령 선후배들이라는 것. 실제로 이제는 끝물이기는 하지만 지역 은행에서는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