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logy
- 개요
- 사회학적 상상력
- 사회학의 출현 배경
3.1. 계몽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립
3.2. 근대적 의미로서의 사회
- 역사와 개념
4.1. 초기 사회학(18세기 말~19세기 초)
4.1.1. 오귀스트 콩트(August Comte, 1798~1857)
4.1.2. H. 스펜서(H. Spencer)
4.1.3. 초기 사회학의 공통적 특징
4.2. 고전 사회학(19세기 말~20세기 초)
4.2.1. 칼 마르크스
4.2.2. 에밀 뒤르케임(Emile Durkheim, 1858~1917)
4.2.3.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
4.3. 근대 사회학
4.3.1.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 와 구조기능주의
4.3.2. 조지 허버트 미드(G.H.Mead) 와 상호작용분석
4.4. 현대 사회학 (2차 세계대전 이후)
4.4.1.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아비투스와 장場
4.4.2. 미셸 푸코
4.4.3. 니클라스루만
4.4.4. 장보드리야르
- 사회학과
- 사회학의 분과
- 사회학자
7.1. 한국
7.2. 외국
-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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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은 사회 전반의 현상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학문이다. 사회발생, 사회구조, 사회구성,
계급, 계층, 가족, 사회문제, 일탈행위, 의사결정 등 인간 사이의 관계를 소재로 하기 때문에 다루는 범위가 넓다.[1]
이에 대한
이견들이 있지만 보통 일반적으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는 전제 하에 거시적인 시점에 의해 사회학이 연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초기 사회학 이론이 제창되던 시점부터 사회학 이론의 주류로서 자리잡아왔으며, 이와 반대되는 성격을 지닌 개인의 상호작용 및
현상학적 사회학이론은 20세기 초중반부터 조명받기 시작하여 현대 사회학에서는 이러한 거시적 이론과 미시적 이론을 통합하려는 시도[2]
가
계속되고 있다.
보통 사회과학 분야에서 경제학, 정치학과 함께 사회과학의 토대로 받아들여진다.
사회학자들은 일반적인 사회 통념에 반기를 드는 일을 좋아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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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과목이든 전공이든 사회학 과목을 듣게 되면 처음부터 보게 되는 사회학의 기본 대전제나 다름 없는 항목이다. 전세계 모든 대학생이 보는 글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 사회학적 상상력을 통해 현대 사회를 보다 심도있게 관찰할 수 있게 된다.
C. Wright Mills[4]
의 저서 **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1959)**에선, 개인이 자신의
인생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즉, 사회학적 상상력은 인간과 사회, 개인
일생과 사회 역사, 자아(내면)과 세계(외면)의 상관 관계를 한계를 두지 않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를 통하여 인간은 삶에서
겪는 문제를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만으로 한정짓는 대신,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장하여 사회에 속한 개인의 위치가 어디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내외적인 안정을 꾀할 수 있다.
서문에도 나오지만, 이미 1950년대의 미국에선 너무나 비대해진 사회체계 안에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에 부닥쳤을
경우(대공황 등),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도 못하여
절망하게 돼버리며, 자신이 사회안에서 어떤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지조차 몰라 불안해하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었다.[5]
현대 사회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방면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 개인이 모든 사회를 낱낱이 이해하고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옛날의 농부는 자기가
소유한 밭에서 일어나는 일만 알고 관리만 잘 모시면 살아가는데 별 문제 없었지만 현대인은 일생을 다 소모해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경험할 수 없을 뿐더러, 전례없이 유동적인 사회 관계를 개인적인 판단만 밀고 나가면 사회 생활을 영유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학적 상상력을 통해, 자신이 경험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회 구조를 통찰(상상)함으로써,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해결을 하는데 필요한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자신과는 관련 없다고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사회 문제를 무관심으로
대응하지 말고, 사회 문제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 같은 상황을 분석하여 스스로 문제 해결에 참여하자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명제로 탈정치화depoliticization 이론도 존재하는데, 사회 계층간 불평등 같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사회 갈등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정치적 원인을 배제하는 일을 말한다. 즉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 현상 분석에서 정부와 국가의 권력이라는 요인을 제거하여 필연적으로 이를 개인의 태도와 행실의 문제만으로 도출하는 것이다. 저 여자는 원래 노는 여자였으니 저런 심한 일 당해도 싸다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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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의 역사는 의외로 짧은 편으로, 본격적인 출발은 18세기 후반 유럽에 두고 있다. 영국에서는 산업 혁명이, 프랑스에서는 프랑스혁명이 발발하여 그 여파가 유럽을 비롯해 전세계를 휩쓸었고, 그 위력은 가히 수천 년을 이어 오던 전통적인 사회를 통째로 뒤엎을 정도의 것이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소요와 불안정, 정치 및 경제와 생활 기반 변화를 새롭게 이해할 학문의 등장이 절실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변혁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15세기부터 시작된 과학 발전을 비롯한 통칭
르네상스에서 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패권을 쥐고
있던 유럽의 실질적인 캡짱이었던 기독교[6]
의 세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동시에 갈릴레오와 뉴턴 등의 과학자들의 작업이 대두되는 시기였다. 그 이전까지
자연과학=신학으로서 이루어지던 연구가(신본주의) 스폰서인 교회의 경영 부진으로 어려움에
처하기 시작했다.
자연과학이 본격적으로 신학과 떨어져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인간관도 바뀌게 되는데, 인간은 이성이라는 게 있는 생물이니까, 본능에 충실한 다른 자연 존재와는 다르다능! 인식이었다. 체계적 지식의 정리를 목적으로 하던 계몽주의와 융합하게 되고 이성을 중심으로 모든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인본주의가 발생하였다. 계몽주의는 기존의 가치규범과 정치를 비롯한 세계관을 모두 부정하면서 민중의 지지를 얻었고, 이는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졌다.
사회학(Sociology)이란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된건, 프랑스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가 자기의 책 실증 철학강의를 쓰면서 부터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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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는 인간의 진보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부르짖었으나, 계몽주의가 휩쓸고 간 18, 19세기 유럽의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했다. 기존 정치와 경제 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발생한 갈등과 빈곤과 위험 요소는 오히려 사회의 무질서를 불러왔다. 어찌나 상황이 개판으로 돌아갔냐 하면, 가히 현실 도피에 가까운 낭만주의가 등장했을 정도다.
낭만주의가 아니어도, 이럴 바에는 그냥 과거 왕정 시대로 돌아가는 게 낫지 하는 주장도 생겨났는데 이게 보수주의이다. 계몽주의는 기존 사회를 구성하던 제도인 종교(정치)와 가족의 축소를 주장했는데, 이는 개인주의를 의미한다. 그러나 통제 불능의 극단적 개인주의(자유주의)는 무정부주의로도 이어지는데, 보수주의자들은 이를 경계하였다.
보수주의자들은 또한 비합리성이 사회 안정에 미치는 긍정적 역할을 성토하였는데 이는 계몽주의자들의 합리주의, 즉 종교와 전통과 같은 비합리적 요소를 배척하자는 주장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회는 구성원들간의 위계질서와 의무와 집합을 위한 이익을 강조하였다. 한마디로 계몽주의가 개인들끼리 알아서 잘 사세요였다면 보수주의는 **사회가 잘 돼야 개인이 잘 되지!**라는 논리였으며, 이는 사회≠개인과 개인의 총합이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더불어, 이러한 전체로서의 사회라는 개념은 보수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으로, 이를 거쳐 사회주의라는 용어도 발생하였으며, 계몽주의를 비롯한 진보측에서도 그러한 개념의 사회(해석이 저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같은 의미는 아니다.)라는 용어를 차용해 쓰기 시작했다. 사회학은 바로 이 사회라는 개념을 확실히 하기 위한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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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Society 즉 근대 사회는 사람들의 집합체로서의 기존의 사회와는 차별성을 가지는데, 이는 앞서 설명한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7]
과거에는 국가(정치 및 종교=지배자)와
국민(가족과 개인=피지배자)의 위계적 이원론적 구분으로 사회를 정의했으나, 근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지배자로서의 국가 및 종교의 권력이 약화되고 부르주아지라는 새로운 계급이 출현하여, **얘들은 어디로 넣어야 되지?**라는 의문점이
생기고 만 것이다. 결국 국가도 아니고 국민이라 하기도 뭐한 제 3의 집합체=사회가 발생하면서 근대 사회의 의미는 과거의 것과 차별화 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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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은 서양에서 근대화가 나타나게 되면서 태동한 학문이다. 이 용어를 처음 제시한 게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오귀스트 콩트를 사회학의 아버지로 삼는 것이 학계의 대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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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학자들로서는 생 시몽(Saint Simon), 오귀스트 콩트(August Comte), H. 스펜서(H. Spencer)를 꼽는다. 이들은 모두 프랑스 혁명 당시와 직후에 활동했던 인물들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닌 프랑스 혁명의 참상을 실제로 목격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들은 혁명 이전의 세계에 대해서도, 혁명이 가져온 변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 했다. 이제 정부와 정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인간사회에 의해 수동적으로 규정당하고 변하는 입장에 놓였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정치, 즉 국가를 움직이는 사회는 어떤 원리에 따르는가를 정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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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폭풍 속에서 성장한 콩트는 혁명의 정당성이나 불가피성을 논하기 앞서, 그로 인한 사회와 정치의 혼란에 맞서야 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최초로 사회학이란 말을 사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 사회란 현대적 의미의 개인이 출현할 수 있는 토양으로 규정했는데, 즉 사회가 어떠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속성이 결정된다는 논리이다.
- 사회의 무질서는 사회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지(知)적 무능력의 결과로 인식하여,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최초로 주장했다. 따라서 사회학 연구는 관찰, 실험, 비교라는 객관적 연구를 통해야 한다. (실증주의 사회학)
- 실증주의 사회학을 통해 자연의 물리 법칙과 마찬가지로 사회 또한 모종의 물리 법칙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인류의 발전 과정을 설명함과 동시에 미래의 진행 과정을 예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사회물리학이라고 명명하였고, 이 용어가 후에 사회학으로 변하였다.
- 그는 인간 사회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3단계 진화법칙을 제시했다. 중세 이전의 신학적 단계 → 중세의 형이상학적 단계 → 19세기 이후의 실증적 단계로 단계를 나누었으며, 이는 지극히 인간의 정신적인 면에 근거하는 이론이다.
- 결국 사회학도 과학의 한 학문이며, 기본적으로 생물학에 의존한다고 보았다. 사회란 이를 이루는 요소들이 각각 생물처럼 유기적인 특성을 가지며 결합하여 전체를 이룬다고 주장했다.(사회 정학 social statics = 보수(질서) 추구)
- 그러나 또한 사회가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를 돌이켜보며 변화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생물과는 구분되는 점이 있다고도 주장했다.(사회 동학 social dynamics = 진보 추구)
- 보수와 진보 양 쪽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으나, 유기체로서의 사회를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진보적인 성향과 대치되는 보수주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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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펜서 또한 콩트와 마찬가지로 사회를 유기체로 보았다. 그는 사회의 진화 과정은 작고 단순하고 모호함에서 크고
아름다운밀집되고 다양하고 분명함으로 나아간다고 정의했다. - 그러나 그의 진화 법칙은 콩트와는 약간 달라서, 군사형 사회 → 산업형 사회라는 물리적 영역으로 정의한다. 여담으로 그의 이론은 과학적 근거없이 내성적이고 깐깐했던 그의 성격 탓에 골방에서 자기 혼자 생각해서 만들어진 이론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 경험적 연구 중시하는 학자들에게 까인다.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2%AC%ED%9A%8C%ED%95%99?action= edit§ion=10)]
- 사회의 진화를 정치 변화의 전제로 삼고 있으므로 산업 사회의 정치와 사회 질서를 정당화하고 시대착오적 보수주의
[8]
를 비난했다. 유기체로서의 사회의 중요성을 내세웠기 때문에 보수주의에 가깝다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다. - 보수주의는 진보주의(=개인주의, 자본주의)의 반명제로서 사회성을 강조한 사회주의로 발전되었다. 사회성을 강조하는 초기 사회학 또한 사회주의로 인식될 수 있으나, 초기 사회학자들은 자본주의의 맹점에 대한 비판 선에서 멈추었고 계급 투쟁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는 일단 구성된 사회를 뒤엎으려는 폭력적 시도에 대한 우려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그래서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무진장 씹힌다.
- 초기 사회학자들의 작업은 거시적인 선, 즉 가이드 라인 제시 정도에 그치고 아직 미시적인 분석에는 이르지 못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초기 사회학은 고전 사회학으로 이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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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부터 영국식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지지하던 초기 사회학과는 다른 고전 사회학이 등장하였다. 초기 사회학은 전술한 바대로 사회의 역사적 법칙 규명에 주력한 반면, 고전 사회학은 (어떤 문제가 있든지간에)사회의 근본이 된 자본주의의 생산관계, 즉 노동력과 관련된 제도 및 이데올로기의 총체로서의 사회를 깊게 파고드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이 단계에서 과거에는 뭉뚱그려 다뤄졌던 사회와 경제가 더욱 명확하게 구분된다.
이 시기의 사회학자는 가히 **삼대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에밀 뒤르케임, 막스 베버, 칼 마르크스. 이 셋 중 누구를 우위에 두느냐에 따라 현대까지의 모든 사회학적 논의가 이어진다.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2%AC%ED%9A%8C%ED%95%99?action= edit§ion=12)]
4.2.1. 칼 마르크스 ¶
해당 항목 참조.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2%AC%ED%9A%8C%ED%95%99?action= edit§ion=13)]
뒤르케임이라고 표기했지만, 사실 이 사람의 성의 음역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로렌 출신이고, 그래서 성이 독일식인데 프랑스의 사회학자이기 때문(...). 언급되는 이름만 뒤르껭, 뒤르껨, 뒤르켐, 뒤르케임, 뒤르카임, 뒤르크하임(......). 뒤르껭 류는 프랑스어 발음을 따른 것이고, 뒤르카임 류는 독일식 발음. 뒤르켐은 양자를 절충해서(...) 영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학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뒤르켐이 비중이 높다.
약간 과장하면 이 사람의 이름 논쟁이 한국 현대사회학 이론사라고 칭할 정도이며(...). 뒤르케임을 뒤르켐이냐 뒤르껭이냐의 문제만 가지고 사회학회에서 대판 싸웠다는 도시전설이 존재할 정도다. 일단 한국사회이론학회에서는 이 사람의 이름을 독일식으로 절충한 '뒤르케임'으로 확정했고 이 항목은 그에 따르지만, 아직까지도 학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함을 밝힌다. 여담이지만 뒤르케임이 생존할 당시에 알자스는 독일령으로 넘어가버렸고, 뒤르케임은 프랑스 국적을 선택함에 따라 졸지에 실향민이 되었다.
-
사회학이라는 용어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은 심리학적/철학적 범주의 하위 카테고리로 분류되곤 했는데, 뒤르케임은 이를 완전히 분리시키고자 하였다.
-
사회적 사실이라는 개념은 이를 위해 등장한 것이다. 사회 구성원은 분명 자아와 개인 의식 및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외부적인 압박으로 인해 의식과 자유에 제한이나 구속을 받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외부적 압박을 사회적 사실로 규정한다.
- 사회적 사실은 철학과 같은 사색에 의한 연구가 아닌 경험과 사실에 의한 연구여야 한다는 점에서 철학과는 구분된다
- 사회적 사실은 인간 내면의 양심이나 가치관이 아닌, 어디까지나 다분히 인간 외적인 요소를 말하는 것이므로 심리학과는 구분된다
- 물질적인 사회적 사실 - 사회를 구성하는 물리적이고 구조적/형식적인 요소를 말한다. 종교, 국가, 법률, 인구분포, 의사소통경로 등이 이에 포함되며, 넓은 의미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 비물질적인 사회적 사실 - 도덕 규범, 유행 등 추상적인 개념으로, 넓고 쉬운 의미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질적, 비물질적 사회적 사실은 사실상 우기게 되면 구분이 모호해지는만큼 그다지 널리 사용되는 개념적 범주구분 유형은 아니다.
-
사회분업론 - 뒤르케임은 초기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근대 사회는 구성원들의 유기적인 유대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근대 사회가 과거 전통 사회보다 산업적인 면에서 전문적 분야에 특화된 인간들이 많아져, 상호 의존하는 케이스가 늘었기 때문이다.
[9]
이것은 매우 개인주의적(진보적)이면서도 사회 질서적(보수적)이기 때문에 결국 사회분업론을 통해 이 양자가 양립할 수 있게 된다고 믿었다. -
아노미 현상 - 사회분업론에 의한 의존 관계는 바람직한 것이나, 그 와중에 전문성을 가진 개인의 욕구와 행위가 제한 없이 폭주한다거나, 사회 규범을 흔드는 사건이나 풍조가 만연해 발생하는 동요나 소요 상태를 말한다. 즉 통제와 규제가 먹히질 않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사실상 무정부상태에 가깝게 된다.
-
자살론 - 뒤르케임은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현상이고 원인 또한 사회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정의한다. 통계 조사 결과 그는 자살의 원인이 신경쇠약이나 우울증 등의 정신병과는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유전이나 체질 등 개인 신상의 문제, 기후와 계절 등의 물질적 문제와도 관련이 없다고 한다. 그의 이론으로 자살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 이기적 자살 - 정신병이나 왕따 등 각종 이유로 일상 현실과 사회에 적응을 못해 자살하는 경우이다
[10]
즉 . 사회 통합이 너무 약해져 개인주의가 심화되었을 때 발생한다. - 이타적 자살 - 개인이 사회에 지나치게 밀착해 있어 사회를 위해 자살하는 상황을 말한다. 사회 통합이 너무 강해져 개인이 집단에 매몰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카미카제
[11]
- 아노미적 자살 - 앞서 설명한 아노미 상태, 즉 사회 규범이 통째로 흔들리면서 그 여파로 개인의 가치관이나 기반이 무너질 때 자주 발생한다. 전쟁이나 비정상적 정권 교체 등으로 사회가 규율을 통제하지 못할 때, 예를 들어 대공황 등의 사건이 중심이 된다.
- 숙명적 자살 - 아노미적 자살과는 반대로 사회의 규율이 필요 이상으로 심할 때 발생할 수 있다. 군바리가 죽고싶다고 하는 입버릇도 이에 속한다. 자살론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는 것을 볼 경우 2X2도표를 채우기 위한 방책인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뒤르케임은 자살유형은 2X2도표로 그릴수가 없다!
- 이기적 자살 - 정신병이나 왕따 등 각종 이유로 일상 현실과 사회에 적응을 못해 자살하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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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 ¶
-
콩트와 뒤르케임은 '사회'라는 개념을 추상적 개념이 아닌 물리적 유기체로서 우리 눈 앞에 떡 하니 놓여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유기체(사회)의 움직임과 상태로 인해 구성원의 사상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다시 말해 사회의 현상이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로 함축할 수 있다.
-
막스 베버는 반대로 사회를 실재가 아닌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개념으로 보았다. 그가 중시한 것은 사회(집단)의 현상이 아닌 구성원(개인)의 **행위**이다.
- 행위는 행동과 구분되는 용어로 쓰인다. 즉 개인의 행동이 주관적이고 특정한 의도와 의미를 가지게 될 때 그것은 행동이 아닌 행위라는 뜻이다.
- 결국 사회학적 분석이라는 것은, 바로 그 주관적 의미를 지닌 행위를 설명함으로써 성립된다고 믿었다.
-
당사자(사회 구성원)의 행위가 합리적(당시의 기준을 근거로)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고, 그것을 다시 '이념형(ideal type)'이라는 것으로 구분해 총 4가지의 행위 유형을 만들었다.
- 목적합리적 행위 : 개인은 행위 자체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평가한다. 내가 시험을 잘 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공부를 평소 열심히 하는 것도 있고, 벼락치기를 하는 것도 있고, 커닝을 하는 것도 있다. 개인은 이러한 여러 수단으로서의 행위 중에서 어떤 게 더 나은지 저울질을 하게 된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 가치합리적 행위 : 물리적이고 세속적인 목적 보다는, 자신의 가치관과 이념을 중시한다. "기독교인은 올바르게 행하고, 결과는 하나님 뜻에 맡긴다"라는 말은 비합리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독실한 기독교인은 이 가치관을 바탕으로 일관적인 행동을 취해 목적합리적 행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마레기가 되기 전의 토모에 마미나 루프 이후 우주의 인과를 난장판을 만들고 있던 아케미 호무라가 이에 해당한다. - 정서적 행위 : 행위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닌, 행위 자체를 위한 행위로서 동작한다. 이것은 가치합리적 행위와 유사하나, 이 경우 그 행동을 지배하는 명확한 근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무런 생산성 없는 놀이나 오락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 전통적 행위 : 아무 생각 없이 평소 하는 짓 그대로 하는 걸 말한다.
- 목적합리적 행위 : 개인은 행위 자체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평가한다. 내가 시험을 잘 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공부를 평소 열심히 하는 것도 있고, 벼락치기를 하는 것도 있고, 커닝을 하는 것도 있다. 개인은 이러한 여러 수단으로서의 행위 중에서 어떤 게 더 나은지 저울질을 하게 된다.
-
위의 이념형을 기반으로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저술하였다. 그에 의하면 당시 자본가들의 자본주의 행위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목적 합리적 행위이나, 그 근간에는 가치합리적 행위를 두고 있다
[12]
. 즉 그들의 자본주의 행위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있는 동시에, 프로테스탄트(청교도)적 윤리관[13]
하에서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낭비하거나 향락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상관관계를 설명한다(이를 근대 자본주의 정신ethos이라 함).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속적인 가치관에 종교적인 윤리관이 매우 깊게 박혀 있는 현상으로, 프로테스탄트 종교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특이할 만하다.
베버는 현대사회에서 목적합리적 행위가 갈수록 더 중요시되어, 끝내 가치합리적 행위없이 목적합리적 행위만으로 합리성이 '굴러가는' 것을 경계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사람이 이윤추구(목적합리적 행위)를 하는 목적은 인간이 '잘 살기'위해서(가치합리적 행위)인데, 이윤추구만 내세우다 보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등의 질문들이 정작 파괴되기 때문이다. 가치합리적 행위없이 목적합리적 행위만으로 합리성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통 Iron Cage, '쇠우리'라고 번역한다(파슨스의 번역). 이 번역을 통한 해석으로 베버가 현대사회를 암울하게 봤다는 것이 존재하나, 다른 한편으로 베버가 현대사회를 암울하게 보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강철외피', '강철 껍데기'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합리성이 '굴러가는'데에 있어서 강철구의 겉은 목적합리적 행위지만, 가치합리적 행위인 그 강철구의 내용물이 비어있다는 것이다. 즉 파슨스의 번역에서 현대인은 '쇠우리'에 갖혀 절망에 빠진다는 뉘앙스를 갖지만, '강철외피', '강철 껍데기'라는 번역에서는 그 시대의 현대인들이 그 강철구의 가치합리적 행위의 내용물을 새롭게 채워나갈 수 있다는 뉘앙스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베버가 현대사회를 그렇게 암울하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실제로도 베버는 미국 방문 당시, 발전하던 미국을 합리성의 첨단이라고 여기고 들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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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학의 역사적 기준을 잡는 데에는 모호한 점이 많은데, 대개 탈콧 파슨스의 사회 체계(Social System) 이론과 AGIL 도식 이론 등장을 전후해서 분류한다. 2차 대전을 전후하여 거시적 - 사회 혹은 사회 체계가 개인(또는 개인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연구 - 사회분석과 미시적 - 개인의 행동체계가 사회를 어떻게 구성하는 지에 대한 연구 - 사회분석으로 나뉘게 된다.
사회학과 학부 단계에서는 파슨스와 미드까지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고, 여기서 더 나가면 네오 마르크시스트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 짐멜에서 비롯된 공리주의 논의, 후설에서 비롯된 현상학적 논의까지 언급한다. 그 외에는 비교적 현대로 넘어와서 위르겐 하버마스, 앤서니 기든스, 울리히 벡, 니클라스 루만, 포스트모더니즘 사회학 논의로 넘어가는데, 사실 이 정도까지만 하면 그 이상은 웬만하면 학부에서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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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슨스는 모든 체계들을 위해 필요한(그 체계들을 특징짓는) 네 가지 기능적인 요건들(기능적 필수요건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곧 적응(체계는
외부 상황의 절박한 요구들에 대처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환경에 적응해야하고 그 환경을 체계의 요구에 적응시켜야 함), 목표달성(체계의 주된
목표들을 정의하고 성취해야 함), 통합(체계의 구성요소 간의 관계에 대한 통제와 다른 세가지 기능적 요건들 간의 관계에 대한 관리),
잠재성(개인들의 동기와 그 동기를 유발하고 지속시키는 문화 유형을 제공·유지·갱신)을 의미한다.
파슨스는 위의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행위 체계를 네 가지로 구분했다. 즉 외부세계에 적응하고 그것을 변형시킴으로써 적응 기능을 수행하는
행위체계인 “행동유기체”와 체계의 목표를 정의하고 그것의 성취를 위한 자원동원을 통해 목적-달성 기능을 수행하는 “인성체계”, 각 구성
요소들의 통제함으로써 통합의 기능을 담당하는 “사회체계”, 행위자들에게 행위를 동기화하는 가치·규범을 제공함으로써 잠재성 기능을 수행하는
“문화체계”가 바로 그것이다.
파슨스는 사회적 분석의 수준들 자체와 그 수준들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해 위계적 배열을 설정하고 낮은 수준들은 높은 수준들에 필요한 조건과
에너지를 제공하며 높은 수준들이 낮은 수준들을 통제한다는 법칙을 내세웠다.
미시적 수준에서 기초적 형태로 정의된 자아와 타아간의 상호작용에서부터 시작된 파슨스의 사회체계에 대한 개념화는 이와 같은 미시적 상호작용의
특징들이 거시적 틀 내에도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저작의 핵심적 개념들인 행위자·상호작용·환경·만족의 최적화 및 문화에 의해 사회체계를
규정하려했다. 그 자체를 하나의 상호작용체계로 보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회체계 연구에서 상호작용을 기본적 단위로 여기지 않고 ‘신분-역할
복합체’를 기본단위로 상정했다. 이 지점에서 행위자는 사고와 행위가 아닌 신분과 역할의 묶음으로서 이해된다. 사회체계의 기능적 선행조건을
제시한 그는, 이를 통해 거시적 체계들과 그들 상호간의 관계(사회적 기능주의)에 논의의 강조점을 두었다. 그는 행위자들에 대한 언급을 할
때도 체계의 관점에서 이야기했으며, 이는 사회체계 내에서의 질서 유지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특히 중요한 사회체계는 (비교적) ‘자기-충족적 집합’인 사회였다. 그는 사회 내의 네 가지 구조를 담지한 역할에 따라
구분했는데 경제·정체·신뢰·사회적 공동체의 네 가지 구분이 그것이다. 경제는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사회를 위한 기능을 수행하고, 정체는 목표
달성의 기능을 수행한다. 또 신뢰는 잠재적 유형유지 기능을 담당하며 사회적 공동체는 통합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문화체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그의 행위체계의 가장 상위에 문화체계를 위치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문화결정론자’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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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미국 사회학부터 이야기해야하는데 영국에서 자유를 찾아 그 먼 바다를 넘어온 인간들인것 만큼초기
미국사회학자들은 거의 자유주의자들이여서 개인의 자유와 복지를 중시했고 특히 영국 스펜서의 영향을 많이 받아 사회진화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쉽게 말하면 사회는 그냥 놔두면 알아서 잘 굴러가고 개혁된다는 이야기고 이러다보니 당연히 제국주의로 쉽게 쉽게 넘어가게 된다. 원래
사회진화론이 제국주의자들과 초기자본주의자들에겐 정말 완벽하고 맘 편하게 만드는 이론이 아닐 수 없다. 가난한 놈들이 생기던 말던 내 알바가
아니고 사회는 그 자체로 진화하고 있다니까.존나좋군? 산업화와 도시화의 긍정적, 부정적 영향이 가득한 시카고에서
사회개량의 목표를 가진 과학적 사회과학이 발전하게 되는데 이를 시카고학파라고 한다.W.I.Thomas (1863-1947)이 과학성,
미시적, 사회심리학적 초점을 맞추면서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주요 토대를 마련하며 물고를 텃고,Robert Ezra Park
(1864-1944)라는 사람이 기자생활을 통해 도시문제의 심각성을 몸소 체험하고 이론을 세우면서 관찰를 통한 자료수집을 강조하게 된다.
George Herbert Mead(1863-1931)는 유기체와 그 환경세계에 대한 이론을 사회학의 영역에 적용시켰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주체아(타고난 자발적, 능동적 자아)와 객체아(어렸을 때부터 타인의 역할이해로 부터 얻어지는 사회적 자아)로 이루어져 있어 이
양자가 한 인간 안에서 서로를 견제한다.지킬박사와 하이드씨냐 개인과 사회는 이런 식으로 상호연관적이며 역사또한 거기서
형성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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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의 거시적 흐름이 구조기능주의와 상호작용이론으로 대표되는 주관주의로 양분됨에 따라 이 두가지를 통합하려던 여러 시도가 있었는데 부르디외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구조주의는 사회구조에 너무 초점을 두어서 행위자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한다는 문제가 있었고 상호작용이론은 거시세계에 쉽게
적용될수 없고 구조가 개인에 미치는 영향력을 지나치게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와 장이라는
개념을 통해 둘을 통합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좀더 구조주의적으로 치우쳐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따라서 후기구조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한다.
아비투스(habitus)란 사람들이 사회세계를 다룰 때 쓰는 정신적, 인지적 구조들이다. 아비투스는 사회세계의 구조들이 내재화된 사회구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어떤 한 사람을 구조적 관점에서 분석한다고 치자.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 남성, 블루칼라 노동자는 6.25 이후의
가난한 한국을 경험하면서 한국의 산업발전을 일구어 냈으며 그 변화상을 경험하면서 나름의 사회세계를 평가하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비슷한 사회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비슷한 아비투스를, 그렇지 않은 사람끼리는 다른 아비투스를 가지게 될 것이다.[14]
이 아비투스는 내재화된 상태에서 끝나지 않는다. 7~80년대 운동권 대학생의 아비투스는 독재가 옳지 않다고 평가를 하면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하였고, 아비투스는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변화된 사회구조, 민주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그에 따른 영향을 받아
이전 세대와는 또 다른 아비투스를 만들게 된다. 즉 아비투스와 사회구조는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
장場이란 관계에 대한 개념이다. 장 내에는 여러개의 객관적 위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위치는 위치를 점유한 행위자의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행위자들은 소유하고 있는 자본[15]``[16]
의 양과 그 비중에 따라 결정되고 수행자, 그리고 장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전공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아무개 교수님을 작은 사회로 간주하자면 이 장 내에서 교수님은 교수라는 직업의 상징적 자본을
가지고 학생들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위치가 행위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의 의미는 김아무개 교수님이 아니라 최아무개 교수님이 오더라도
수업은 진행이 가능하며 김 교수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김아무개이기 때문이 아니라 교수직이라는 상징적 자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장 내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혼자서 잘하는 학생도 있겠지만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많은 학생은 이
사회적 자본을 통해 그룹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 안에서 정보를 공유하는(족보라든지 노트)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이런 전략은
흔하지만 일반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에서는 그 학생이 구조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구조주의적 설명이 덧붙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전략을 선택할것인지, 어떻게 구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행위자들에게도 자유의 여지가 있다고 볼수 있기 때문에 상호작용론적인
해석도 배제할 수 없다.
부르디외의 작업 대부분은 이 두 가지 개념을 통해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데 있다. 기득권들이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고 재생산 하는지, 피 지배계층들은 어떻게 지배당하고, 기득권을 넘보는지에 대해서 분석한 구별짓기 Distinction(1984)나 재생산 Reproduction(1890)같은 저서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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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미셸 푸코 ¶
미셸 푸코는 전반기에는 모더니즘, 후반기에는 포스트모더니즘 성향을 보였다고 평가받지만 자신 스스로는 이런 구분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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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니클라스루만 ¶
원래는 법학을 전공했지만, 공무원 안식년때 탈콧 파슨스의 밑으로 들어가 제자가 되었고, 이후 파슨스 같은 구조기능주의 쪽이 아닌 자기만의 자기 생산적 사회 체계 이론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리고 이 생각들을 담은 저서를 70여편 써냈는데, 그중 Vertrauen이 영역판으로 나오면서, 신뢰와 위험 사회론이 유럽에 퍼져나가게 되어 이쪽에서 독보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또한 사회 체계 이론쪽에서도 다른 이들보단 인지도가 높은 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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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 장보드리야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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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회학과 ¶
보통 사회학과 나왔다고 하면 운동권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아무래도 정치와 밀접한 과이다 보니 비율로 보면 많을수는 있다. 하지만 사회학은
절대 사회의 문제만을 바라보는 학문이 아니다. 사회 전체를 학문의 대상으로 하거나,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현재 사회학과에서 가장 대표적인 교과서로 평가받는 것은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사회학>이다. 번역이 구리다는 의견이 중평이니, 관심이 있다면
적당히 훑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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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사회학
- 사회심리학
- 인구사회학
- 문화사회학
- 역사사회학
- 경제사회학
사회주의 경제학과는 다르다!! - 정보사회학
등등 여기에 적지 않은 여러 사회학 분과들도 엄청나게 많다. 그냥 아무 학문이든 간에 뒤에 '사회학'이란 단어만 붙이면 사회학이라고
부를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만큼 분과들이 엄청나게 많다.위키사회학 근데 사회학도로서 진짜 어느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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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 경제, 심리 등 사회과학 전체를 아우르는 대명사로 보아도 무방하다. 벌거벗은 아기 두 명이 있으면 사회가 성립해 버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표류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2]
앤서니 기든스, 피에르 부르디외 등의 이론이 대표적이다.[3]
당연하지만 사회학과생이라고 해서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마르크스가 사회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회학의 전부는 아니다. 당장 "사회주의 그거 쇠우리(iron cage)로 직행하기 딱임 'ㅅ'"이라고 지적한 사회학 양대산맥의 다른 축 막스 베버도 있고.[4]
미국의 급진적 사회학자.[5]
한국의 1950년대 베이비붐 세대까진 이런 현상이 거의 없었지만 그 자손들부턴 동일한 현상이 팽배하게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이글을 보고 있는 너 님 같은 위키니트들. 어르신들이 자주 말하는 '요즘 애들은 약해 빠졌다' 라는 말을 상기해봐도 된다.[6]
더 정확하게는 교황권을 비롯한 천주교를 말한다. 종교 개혁은 천주교의 입지를 위협하는 입장이었다.[7]
따라서 이를 서구 사회에 한정된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한국의 전통 사회도 근본적으로 서구 사회와 크게 다른 것이 없었고 그 서구 사회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서구 사회로서의 개념으로만 한정하기는 곤란하다.[8]
보수주의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게 아니다. 전술한 바대로 진보주의의 후폭풍에 의해 보수주의가 나올 수 있는 충분한 상황이었다. 종류도 다양해서 반자본주의자들도 많았지만 잘 알려진 초기 사회학자들은 보수성을 띄는 동시에 어느 정도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편에 속했다.[9]
양복 입고 전화질 하는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그 변호사 화장실 뚫어주는 배관공도 있어야 사회가 유기적으로 잘 돈다는 얘기. 한쿡은 배관공 같은 직업을 똥으로 아는 풍조 때문에...[10]
그러나 정신병 등의 개인적인 병적현상, 왕따와 같이 현실과 사회에 적응을 못한다는 등의 이유라기 보다는(또 앞의 내용과도 충돌하는 지점이 존재한다) 개인이 사회와 따로 떨어져 사회로부터 개인이 너무 자유로운 경우에 발생하는 자살이 이기적 자살이다. 이기적 자살의 개인은 사회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으며 사회에 목매달지 않는다. 흔히 사회적으로 왕따가 자살하는 이유는 사회의 압력/시선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지 사회로부터 '자유'로워서 죽는게 아니다. 즉 오히려 왕따 가해자들과 세상을 왕따시킬 수 있는 왕따 대상자 개인은 역으로 자살 안 한다. 즉, '용자'는 그냥 죽고 싶어서라면 몰라도 사회의 압력때문이라는 이유로는 자살을 하지 않는다!!![11]
좋다고 돌격한 애들도 있고 강제적으로 당한 이들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집단사회(일본)가 개인(국민)보다 극도로 우선시돼 발생했다는 점은 동일하다.[12]
'근간'이라기 보다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이윤 추구행위가 서로 '선택적 친화력'에 의해 결합되어,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서구의 자본의 축적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서 그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이렇게 언뜻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 간의 결합을 '설명'하려는 것을 베버는 '성좌적 배치'라고 불렀다. 물론 이게 '설명'인지 아니면 그저 '나열', '묘사'에 불과한 것인지의 문제가 존재한다.[13]
종교 개혁으로 발생한 청교도주의는 모든 일은 숭고한 것이니 자신이 맡은 소명에 지극히 충실하라. 그러면 돈은 알아서 굴러오는 법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사실 경제적인 목적 보다는 정치적인 목적, 특히 구 가톨릭에 대한 공격을 목적으로 한 사상이다.[14]
그러나 동일한 아비투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경험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으며 비슷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아비투스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15]
경제적 의미만의 자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르디외는 기본적으로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 사회적 자본, 상징적 자본을 토대로 장을 설명했다.[16]
경제적 자본이란 간단히 말해 돈, 문화적 자본은 여러 종류의 지식, 사회적 자본은 사람들간의 관계, 상징적 자본은 명예, 위세 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