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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탈아론 전문 해석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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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亞入歐(脱亜入欧, だつあにゅうおう). 직역하면 "아시아를 벗어나 구라파(유럽)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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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年3月16日、福沢諭吉が「時事新報」紙上に掲載した社説を「脱亜論」と呼んでいる。
世界交通の道、便にして、西洋文明の風、東に漸し、至る處、草も気も此風に靡かざるはなし。蓋し西洋の人物、古今に大に異なるに非ずと雖ども、其擧動の古に遅鈍にし
て今に活發なるは、唯交通の利器を利用して勢に乗ずるが故のみ。故に方今当用に國するものゝ為に謀るに、此文明の東漸の勢に激して之を防ぎ了る可きの覺悟あれば則ち可
なりと雖ども、苟も世界中の現状を視察して事實に不可ならんを知らん者は、世と推し移りて共に文明の海に浮沈し、共に文明の波を掲げて共に文明の苦樂を與にするの外あ
る可らざるなり。文明は猶麻疹の流行の如し。目下東京の麻疹は西國長崎の地方より東漸して、春暖と共に次第に蔓延する者の如し。此時に當り此流行病の害を惡て此れを防
がんとするも、果して其手段ある可きや。我輩斷じて其術なきを證す。有害一遍の流行病にても尚且其勢には激す可らず。況や利害相伴ふて常に利益多き文明に於てをや。當
に之を防がざるのみならず、力めて其蔓延を助け、國民をして早く其氣風に浴せしむるは智者の事なる可し。西洋近時の文明が我日本に入りたるは嘉永の開國を發端として、
國民漸く其採る可きを知り、漸次に活發の氣風を催ふしたれども、進歩の道に横はるに古風老大の政府なるものありて、之を如何ともす可らず。政府を保存せん歟、文明は決
して入る可らず。如何となれば近時の文明は日本の舊套と兩立す可らずして、舊套を脱すれば同時に政府も亦廢滅す可ければなり。然ば則ち文明を防て其侵入を止めん歟、日
本國は獨立す可らず。如何となれば世界文明の喧嘩繁劇は東洋孤島の獨睡を許さゞればなり。是に於てか我日本の士人は國を重しとし政府を輕しとするの大義に基き、又幸に
帝室の神聖尊嚴に依頼して、斷じて舊政府を倒して新政府を立て、國中朝野の別なく一切萬事西洋近時の文明を採り、獨り日本の舊套を脱したるのみならず、亞細亞全洲の中
に在て新に一機軸を出し、主義とする所は唯脱亞の二字にあるのみなり。
我日本の國土は亞細亞の東邊に在りと雖ども、其國民の精神は既に亞細亞の固陋を脱して西洋の文明に移りたり。然るに爰に不幸なるは近隣に國あり、一を支那と云い、一
を朝鮮と云ふ。此二國の人民も古來亞細亞流の政教風俗に養はるゝこと、我日本國に異ならずと雖ども、其人種の由來を殊にするか、但しは同様の政教風俗中に居ながらも遺
傳教育の旨に同じからざる所のものある歟、日支韓三國三國相對し、支と韓と相似るの状は支韓の日に於けるよりも近くして、此二國の者共は一身に就き又一國に關してして
改進の道を知らず。交通至便の世の中に文明の事物を聞見せざるに非ざれども耳目の聞見は以て心を動かすに足らずして、其古風舊慣に變々するの情は百千年の古に異ならず
、此文明日新の活劇場に教育の事を論ずれば儒教主義と云ひ、學校の教旨は仁義禮智と稱し、一より十に至るまで外見の虚飾のみを事として、其實際に於ては眞理原則の知見
なきのみか、道徳さえ地を拂ふて殘刻不廉恥を極め、尚傲然として自省の念なき者の如し。我輩を以て此二國を視れば今の文明東漸の風潮に際し、迚も其獨立を維持するの道
ある可らず。幸にして其の國中に志士の出現して、先づ國事開進の手始めとして、大に其政府を改革すること我維新の如き大擧を企て、先づ政治を改めて共に人心を一新する
が如き活動あらば格別なれども、若しも然らざるに於ては、今より數年を出でずして亡國と爲り、其國土は世界文明諸國の分割に歸す可きこと一點の疑あることなし。如何と
なれば麻疹に等しき文明開化の流行に遭ひながら、支韓兩國は其傳染の天然に背き、無理に之を避けんとして一室内に閉居し、空氣の流通を絶て窒塞するものなればなり。輔
車唇歯とは隣國相助くるの喩なれども、今の支那朝鮮は我日本のために一毫の援助と爲らざるのみならず、西洋文明人の眼を以てすれば、三國の地利相接するが爲に、時に或
は之を同一視し、支韓を評するの價を以て我日本に命ずるの意味なきに非ず。例へば支那朝鮮の政府が古風の専制にして法律の恃む可きものあらざれば、西洋の人は日本も亦
無法律の國かと疑ひ、支那朝鮮の士人が惑溺深くして科學の何ものたるを知らざれば、西洋の學者は日本も亦陰陽五行の國かと思ひ、支那人が卑屈にして恥を知らざれば、日
本人の義侠も之がために掩はれ、朝鮮國に人を刑するの惨酷なるあれば、日本人も亦共に無情なるかと推量せらるゝが如き、是等の事例を計れば、枚擧に遑あらず。之を喩へ
ば比隣軒を竝べたる一村一町内の者共が、愚にして無法にして然も殘忍無情なるときは、稀に其町村内の一家人が正當の人事に注意するも、他の醜に掩はれて湮没するものに
異ならず。其影響の事實に現はれて、間接に我外交上の故障を成すことは實に少々ならず、我日本國の一大不幸と云ふ可し。左れば、今日の謀を爲すに、我國は隣國の開明を
待て共に亞細亞を興すの猶豫ある可らず、寧ろその伍を脱して西洋の文明國と進退を共にし、其支那朝鮮に接するの法も隣國なるが故にとて特別の會釋に及ばず、正に西洋人
が之に接するの風に從て處分す可きのみ。惡友を親しむ者は共に惡友を免かる可らず。我は心に於て亞細亞東方の惡友を謝絶するものなり。
『時事新報』1885(明治18)年3月1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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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화의 바람이 동양을 향해 불어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모든 국가는 서구사회와 더불어 이 운동에 동참하여 문명의 열매를 맛보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문명은 홍역과 같지만, 여러 이로운 점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홍역보다는 이롭다. 그러므로 국가는 문명에 거역할 수 없으며 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문명화 과정에서 보수적인 정부 (도쿠가와 막부)는 걸림돌일 뿐이며 이를 뒤집어야만 일본에서 문명화를 이룰 수 있다.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얻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시아를 벗어나는 것'(脫亞)이다. 비록 일본이 이미 정신적으로는 아시아를 벗어났지만, 이웃의 두 나라 (한국과 중국)은 개혁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들의 유교적 가르침은 모두 위선적이고 뻔뻔할 뿐이다. 중국과 일본의 개혁이 실패한다면, 이들은 곧 세계열강에게 나라를 빼앗길 것이다. 서구인들은 언제나 일본, 중국, 한국을 같은 문화를 가진 비슷한 나라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일본에게 걸림돌이 될 뿐이다. 나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마찬가지로 나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일본은 이웃의 나쁜 아시아 나라들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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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1885년 3월 16일자 일본 신문 <시사신보(時事新報)>에 〈탈아론(脫亞論, 일본어: 脱亜論 (だつあろん))〉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기고하면서 일본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을 이르는 말. 저 글자를 좀 비꼬아서 말하자면 우매하고 서구 문물을 못 받아들여서 개혁을 생각 못하는 구정부(도쿠가와막부)같은 아시아(특히 동북아시아, 그 가운데서도 한국과 중국)를 깔보고 재빨리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그와 동등한 위치에 선 뒤 우월한 유럽 열강 사이에 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여기에는 후쿠자와가 대놓고 탈아시아 선언을 한 것과 상관없이 근대 이전부터 일본의 문화가 주변 나라들과 꽤 이질적인 면이 많았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각 지방이 하나의 나라나 다름없는 체제나 상공인의 힘이 명목상의 신분과 달리 꽤 막강한 것, 귀족 가문이 문장(Crest)을 쓰는 것 등 전통문화 자체가 이미 서양에 가까운 부분이 꽤 있기 때문에 이런 개드립을 치기에 더 용이했다. 그리고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완전히 빼도박도 못하게 서구화한 나라로 탈바꿈했으므로 상황 자체가 마음만 먹으면 후쿠자와가 아니더라도 저런 소리를 지껄일 만한 분위기였던 것. 나중에 식민사관론자들이 정체성론이라는 개소리를 짖어댔던 것도 바로 저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아예 "나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마찬가지로 나쁜 인상을 주니, 일본은 이웃의 나쁜 아시아 나라들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라고까지 한다. 한 마디로 동양은 후진적인 것, 이제 우리는 서양문명을 따라서 근대 문명인이 되자!
이 사상에 입각하여 해군과 산업 및 은행 제도는 영국에서, 육군은 독일에서, 예술과 음식은 프랑스에서, 건축은 이탈리아에서, 법률의 초석은 미국에서 가져와 자국에 맞게 변형시켰다. 이러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고대 일본이 중국과 한국에서 율령체제와 불교와 유학, 건축학과 음식문화와 의복문화 등을 수입해 일본식으로 변형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서구의 시각을 그대로 따라 주변의 동북아시아 국가를 조롱하고 적극적으로 서구문물을 신봉하여 받아들이는 병크로 이해하기 쉽지만, 당시의 서양식 문명화와 근대화를 매우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상을 고려하면 꽤나 선진적인 선택이었다. 그 덕택에 일본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기술적으로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릴 만한 유산도 만들어냈다.
우습지만 그렇게 아시아를 '벗어나서' 유럽에 끼어 유럽의 지식과 기술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 때는
동양인들이 좋은 친구들인 백인들에 맞서 단합해야 한다면서 대동아공영권을 외쳤다.(…)
그러면서 '좋은 친구'인 이탈리아나 독일과는 편을 맺었다가 '좋은 친구들' 가운데 하나인
미국에게 개발살났다...
물론 미국은 일본을 '좋은 친구'라고 안 생각했지만...[2]
대동아 공영권과 같은
개념은 사실 세부적인 부분은 조금씩 다르지만 후쿠자와 유키치말고 조선이나 중국에서도 일부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았으나, 후쿠자와 유키치는
처음에 동양 삼국이 근대화를 이루어서 단합으로 외세를 막아내자고 주장하다가 조선의
갑신정변이 실패하면서 방향을 바꿔 탈아입구론을 주장했다.
그는 조선과 중국이 근대화를 이루려면 일본처럼 구체제를 쓰러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두 나라 모두 근대화를 위한 개혁정책들이 보수파의
저항으로 실패하여 후쿠자와는 아시아 근대화에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3]
이러한 탈아입구론은 입아(入亞)를 추진한 일본 제국이 멸망한 후 일본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기에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일본은 동북아시아에 대한 소속감이 매우 희박하다.
반댓말로는 탈구입아(脫歐入亞)가 있다. 사실 이것도 일본에서 종종 나오는 말인데(…) 성장하는 아시아 대륙인가, 기존의 강대국인 서구 국가들인가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일본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에서도 "엔화를 중심으로 아시아는 모이자~"라며 다급하게 외치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에게 아시아 국가들이 **"아시아를 버릴 때는 언제고?"**라며 비꼬는 문장으로도 말했다.
실제로 2000년 초반, 아시안 경제회의에서 일본은 아시아끼리 뭉치자며 난데없이 일본의 엔화를 중심으로 우리도 유로화처럼 아시아 공동 통화를
만들자라 했지만, 한국이나 중국이나 아랍권을 비롯한 나라들은 대꾸조차 않고,
인도네시아의 인사가 유럽이나 미국 쪽과
손잡고 아시아를 벗어나자던 놈들이 지금 와서 뭔 개소리냐며 비웃던 적까지 있다. 심지어 지금에 와서는 자신들이 주장했던 아시아권 내의
경제협력을 걷어차고, 미국 주도로 재편되고 있는 TPP[4]
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감탄고토[5]
.
자민당 정권시에 미국과 동맹관계를 한층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려다가 민주당 정권 들어서 미국을 벗어나 독자적인 입장에서 아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생각하는 모습에서 이런 일본의 혼란을 짐작할 수 있다. 끝내 이런 모습 때문에 죽도 밥도 못 만들고, 미국과 아시아 양쪽 다 일본에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특히 미국 버락오바마 정권이 들어서고 일본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을 초기에는 양국관계가 상당히 냉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과의 대등한 외교와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외치던 일본 민주당이 중국의 대국화 움직임에 밀리고, 급기야 불법 조업하던 중국인 선장을 중국의 희토류 금속 수출 압력에 풀어주자 일본 안에서도 중국에게 경계심이 팽창했으며, 끝내 일본 민주당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들고 나왔다. 아무래도 당분간 일본은 미국과 손을 잡으면서 중국을 경계하는 태도일 듯하다.
일본의 유명잡지이자 우익지인 <문예춘추>에 글을 실은 어느 우익인사는 탈아초구(脫亞超毆)란 용어를 지어 쓰기도 했는데, 이것은 아시아 따위는
이미 벗어나 이제 유럽/미국의 서구를 뛰어넘겠다는 의도로 쓴 용어. 당연히 현실은시궁창. 이 표현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응용 가능해서 상당한 바리에이션을 보인다[6]
.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상은 과거의 비극적인 역사를 불렀고, 현재에도 일본을 동아시아에서 고립시켜 자국의 국익과 미래에도 큰
걸림돌이다[7]
. 일본 안에서도 이러한 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과 유럽 대신에 아시아를 고르는 것 자체가 국익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 있다.
패전 이후에도 이 탈아입구 사상은 일본인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70~1980년대 당시 같은 아시아 국가인 한국, 중국의 비민주적, 인권탄압적 사회 모습과 비교했을 때, 일본은 나름대로 서구 민주주의적 제도를 갖추는 데 성공했고, 이것이 일본인들의 탈아입구적 사상을 비교적 현재까지 끌고온 배경이 되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뿐이고, 아이누나 류큐, 재일, 부라쿠민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인종차별과 대를 이어 되물림되는 정치인 등의 실상을 보면 자신들의 추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본의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물론 현재에 와서는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을 다방면에서 많이 쫓아왔고, 일부 지수에서는 뛰어난 점도 있는 만큼, 21세기에 탈아입구는 유용하지 않은 사상이 되었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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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한국도 탈아입구적인 사고방식이 있다. 2011년 11월 21일자
동아일보는 한국형
탈아입구가 대한민국 대학
사회에서 얼마나 심각한지 보도했는데 대학생에다 기업이나 학부모들도 어른들도 많이 이렇다. 국내 유명 대기업들도
"뉴요커풍/파리풍 생활은 화려하고 부유하지만 동남아풍 생활은
초라하다."라는 투의 문구를 2010년에도 대놓고 썼으니 세계적인 망신거리다.[8]
그리고 파리풍이니 파리지앵 이런 건 일본인들이 먼저이런 사고방식 가지고 파리에 가서 실제와 다른 모습에 쇼크를 받았던바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미국 기득권에 들어가서 학교강사를 해 자격도 충분하고 백인들도 가르침을 받던 흑인 강사를 두고 백인이 아니라서 학부모들이
영어강습을 피한다는 보도도 한국에서 나온다.[9]
반대로 백인이라서 강사라고 썼더니 무자격에 미국에서 아동 성폭행을 저질러 인터폴 수배를
받던 파렴치한 아동 성범죄자[10]
라는 일도 드러나서 충공깽에 빠진 때가 겨우 2000년대 중순이다. 알게 모르게 탈아입구적
사고방식이다.
사실 이건 9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때까지 지금은 흔한 일본문화를 배제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 당시까지의 젊은이들은 한국 전통문화를 비롯하여 일본문화까지도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다며 외면하고 배제하였다. 반면 미국문화나 영국문화 등 서구문화에는 지나치게 호의적이고 크게 집착했으며,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유럽산 악세사리나 자동차 등을 들이는 과소비 풍조까지 겹치면서 고질적인 사회문제였다. 사실 이것도 일본에서 이미 선례가 있었다.
다만 이러한 유행으로 탈아입구와 다르지만 과거 미국이나 남미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칠레, 아프리카
라이베리아같은 나라들도 있었다.
라이베리아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역사적인 원인이 있었지만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칠레는 유럽풍 문화를 더 고상하게 여기고 남미 지역
원주민들과 혼혈화가 이뤄진 다른 남미 나라들과 달리 개국 초기부터 원주민들을 죽이고 순혈 유럽계 백인들이 땅을 차지하여 국가를 건국하고
백인들 중심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는 등 역사적인 이유도 있었는데다 부유층이 모국이 남미가 아닌 유럽으로 여겼던 점, 미국은 비록 유럽으로
여기지 않아도 일부 부유층이나 유행에서 유럽풍을 열망하던 역사[11]
가 있다.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D%83%88%EC%95%84%EC%9E%85%EA%B5%A C?action=edit§ion=6)]
- 메이지 유신
- 탈아론
- 후쿠자와 유키치
탈구입아세가와 코나미의 PC버젼 게임 지역락들카자흐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이쪽은 원해서 탈아입구한 게 아니다.2015년 1월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1]
http://ko.wikipedia.org/wiki/탈아입구[2]
다만 이 때 대동아 공영권은 탈아입구를 주장한 후쿠자와 유키치와 정반대의 입장, 즉 일본의 지도 아래 아시아와 협력하여 함께 아시아를 일으키자는 흥아론자들의 입장에서 발전한 이론이다. 따라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 사상에 책임을 물으면 잘못이다. 그저 상황에 따라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하는 일본과 일본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3]
특히 1884년 12월 갑신정변은 후쿠자와 유키치 개인적으로도 조선의 독자적인 근대화에 기대를 걸고 자금을 원조했으나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좌절하고,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의 군사력은 청나라에 훨씬 못 미쳤으므로 청나라의 간섭을 벗어난 조선의 독자적 근대화 희망을 버렸던 것이 탈아론 작성의 직접적인 계기였다. 자세한 내용은 西洋思想の日本的展開-福澤諭吉からジョン・ロールズまで』慶應義塾大学出版会、2002年、福澤諭吉の西洋理解と「脱亜論」참조[4]
Trans-Pacific Partnership 혹은 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5]
일본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국의 경제대국으로의 부상과 여기에 한 수 아래로 여긴 한국에까지 경제력에서 따라잡혀가는 상황이 되다보니 미국과의 동맹에 더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6]
일본이 서구를 초월할 수 없는 이유는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미덕으로 삼는 서구의 풍습을 따라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장 일본내에서는 천황제를 비난하는 것 자체도 허용되지 않거니와 개개인의 자유는 사실상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서구와 같은 수준의 국가로서의 도약이 어렵다. 거기다 일본은 역사적으로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왔다.[7]
당장 미국의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정책이 차질을 빚는 이유도 이런 선상에서 놓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일본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만행이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의 사고방식의 괴리가 상당하기 때문이다.[8]
실제 뉴요커인 재미교포들이 이런 문구를 보고 뉴요커 상당수도 빈민이거나 서민층이고 되려 그 뉴요커 운운거리는 해괴한 생활패턴은 서울에서 더 많이 보는 듯하다라고 깐 바 있다.[9]
근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영어는 아예 앵글로 색슨 계열의 영국인만 가르쳐야 한다. 다스 베이더 목소리로 유명한 배우 제임스 얼 존스, 모건 프리먼, 그리고 버락 오바마만 봐도 알겠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흑인 화자들도 오히려 백인을 능가하는 목소리와 화법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흑인들이 미국 주류 영어와 다른 화법을 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백인도 민족및 거주지역에 따라서 영어 발음도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똑같다.[10]
뿐만 아니라 백인이라고 영어강사로 대충 썼더니만 미국도 유럽도 아닌 브라질이라든지 남미 출신 백인이라든지 엉뚱한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영어도 그리 못하는 이를 고용하던 경우도 있다.[11]
19세기 중후반만 해도 미국은 유럽에서 듣보잡 신생 국가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으며 역사적으로 뒤쳐지는 걸 컴플렉스를 가진 미국 부유층이 유럽 명문가랑 사돈이 되면 그걸 무척 자랑하던 사례가 있다. 돈지랄 항목에서도 그런 사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