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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st Powerful Woman on the planet
Hillary Rodham Clinton
(1947-)
- 소개
- 일생
2.1. 출생부터 아칸소 시절까지
2.2. 영부인 활동과 정계진출
2.3. 2008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2.4. 국무장관 임명과 그 이후
-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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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 대통령 빌클린턴의 부인으로, 전 미국 영부인 출신이자 미국의 전 국무부장관.
차기 가장 강력한 대권후보이며 미국 역사상 가장 당선가능성이 높았던 여성 후보이다. 과거에는 '클린턴' 하면 빌 클린턴을 의미했으나 요즘은 그의 부인인 힐러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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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노이 주 시카고 출신. 3살 때 시카고 교외의 파크리지라는 곳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재미있게도 고등학교 때까지의 힐러리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성향이었는데 이는 가족과 주변사람들이 모두 공화당 지지자들인 영향이 컸다.
이후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위치한 웰즐리(Wellesley) 여자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다. 대학 초기에 잠시 공화당 청년조직에 가입하기도 했지만 베트남전쟁과 흑인 민권운동을 둘러싸고 청년조직의 다른 이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탓에 비록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업무 보조역을 하긴 했지만 심적으로는 민주당 쪽으로 점점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 법학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이곳에서 법학과 학생이던 빌 클린턴을 만나게 된다. 빌이 대학 졸업후 뉴욕 주 변호사 시험에서 낙방하고 고향인 아칸소 주의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자 아칸소로 빌을 따라서 건너가게 된다.
1975년, 빌의 청혼에 두 사람은 결혼했는데 이때 힐러리는 자신의 처녀 때 성인 로댐을 계속 유지했기에 풀네임이 성이 로댐클린턴이 되었다. 빌은 이미 약관의 나이에 정계진출을 시도했는데 1974년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했지만 1976년 리틀록의 지방판사에 선출되어서 빌과 힐러리는 리틀록으로 이주했고 힐러리는 로즈 로펌에서 일하게 된다.
어린이 보호활동을 전개해서 아칸소 주의 어린이 보호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고 1978년 빌이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되자 농촌지역건강지원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아칸소주의 가난한 지역들에 의료시설을 확충하는 역할을 했다. 이 때의 경험은 그녀가 빌 클린턴 행정부 초창기때 의료보험 개혁작업을 주도하는 데로 연결된다.
1980년, 빌은 아칸소 주지사 재선에 실패했지만 2년 뒤에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 힐러리는 남편의 선거운동을 적극 지원해 유권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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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빌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힐러리는 영부인이 되었다. 기존의 영부인들이 조용히 대통령을 내조하는 수준이었던것과는 달리 힐러리는 적극적으로 정책에 관여했는데 보통 백악관 동관(East Wing)에 영부인 집무실을 두는 관례를 깨고 백악관 서관(웨스트윙)에 집무실을 둘 정도였다.
1993년, 빌 클린턴은 힐러리에게 국민의료보험 개혁을 맡겼다. 이때 힐러리는 고용인이 피고용인의 의료보험을 보장하는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미국의 특성에 민간의료보험 회사들의 엄청난 로비가 더해져 의회에서 개혁안은 부결되었고 힐러리는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고 힐러리에 대한 지지율은 40%대 이하로 추락했다.
여하간 이때 나온 유명한 농담이 힐러리의 옛 애인과 만난 클린턴 부부 이야기. 이 예전 애인이던 양반은
주유소 사장님이 됐는데, 이걸 본 빌 클린턴이 힐러리에게
"(대통령감이었던) 날 만난 걸 영광으로 알라"는 식으로 말하자 힐러리가 **"아니, (계속 내가 저 주유소 주인을 만났다면) 저 양반이
대통령이 되었겠지"**라고 일침했다는 것. 남편은 아내 나름이라니까
아이러니컬하게도 힐러리를 다시 끌어올린 것은 남편 빌의 스캔들 파문이었다. 초기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륜설이 돌았을 때 힐러리는 이를 보수 측의 음모로 규정했지만 스캔들이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그녀는 남편과의 결혼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2003년에 출간된 그녀의 자서전에는 **이 양반이랑 계속 살아야 해?**라고 고민했다고 솔직히 털어놨지만. 이 때문에 그녀가 정치적 목적에서 이혼을 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남편을 감싸는 모습에 그녀에 대한 동정여론이 확산되면서 그녀에 대한 지지율은 70%대를 넘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그녀가 정계로 진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다만 훗날 스캔들이 터졌을 당시 남편이 밉지 않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는 **"(클린턴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르윈스키를 가리켜 나르시시즘에 빠진 루니툰이라고 비난하기도.
1998년, 뉴욕 상원의원 자리가 비게 되자 민주당 인사들의 권유를 받아 상원 선거에 출마했다. 당초 그녀의 강력한 경쟁상대로는 뉴욕 시장이던 루디줄리아니가 거론되었는데, 아마 줄리아니와 붙게 되었다면 승패를 장담하기 힘들었겠지만 줄리아니가 전립선암으로 출마를 포기하면서 그녀는 55%의 득표율로 상원의원에 오르게 된다. 이후 그녀는 미국에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정치인으로 주목받게 된다.
상원위원으로 활동할때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쟁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이는 후에 대선과정에서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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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미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었지만...민주당 대선 경선의 시작이라고 할수 있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뉴비 버락 후세인 오바마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기를 잡은 후보가 대선후보가 되는 미국의 특성상 힐러리로서는 충격적인 결과. 물론 아이오와 법칙이 꼭 필승도 아니긴 했지만 경선 흥행을 위해 힐러리도 전략적으로 띄워주던 오바마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것이다. 두 번째로 열린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는 승리를 거두면서 반전의 계기가 되나 싶었는데... 이게 민주당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선의 서막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뚜껑을 열기전에는 힐러리의 대세가 점쳐졌고 그렇게 흘러가나 싶었지만 예상 밖의 결과에 힐러리도 상당히 당황했던 듯 하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이후 흑인 배우이자 시인인 마야 안젤루가 힐러리 지지를 선언하면서 흑인표에 줄 영향에 기대를 모으게 되었다. 물론 오바마는 오프라윈프리의 지지 선언을 얻어내서 별 실효는 없었지만.
2008년 1월과 2월에 각각 열린 미시간 프라이머리와
플로리다 프라이머리[1]
에서는 힐러리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하필이면 두 주가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규정을 어긴 채 프라이머리를 시행하는 바람에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미시간과
플로리다의 프라이머리를 무효로 선언해 버렸다(...).[2]
힐러리는 이에 반발해 미시간과 플로리다의 프라이머리를 다시 실시할 것을
주장한 반면 오바마는 재경선 실시에 미적대는 반응을 보였다.
양측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2008년 2월 5일, 22개주에서 동시에 경선을 치루는 슈퍼화요일에서 승부가 결판날지 관심이 집중되었다. 보통 슈퍼 화요일에서 승리를 거둔 후보가 대선 후보로 확정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오바마는 13개주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힐러리는 8개주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두 후보의 득표율은 초박빙이었고 어느 쪽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해 승부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2008년 3월 4일 텍사스,
오하이오, 로드아일랜드,
버몬트의 4개주에서 경선이 치뤄지는 미니 슈퍼 화요일에서는 힐러리가
텍사스, 오하이오, 로드아일랜드 3개주를 석권해 승부는 계속 이어졌다.(...) 죄다 보수주에서 이겼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 주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하자 민주당 내에서는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 사퇴하쇼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힐러리는 끝까지 가겠다라면서 경선 완주를 주장했다.
결국 사상 유례없는 혈전이 된 경선은 반년 만인 2008년 6월에야 마무리 되었고, 힐러리는 6월 7일 뉴욕에서 경선 패배를 인정하고 오바마를 적극 돕겠다고 선언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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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국무장관 임명과 그 이후 ¶
경선 패배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힐러리 부통령의 소위 드림티켓론이 논의되었지만 힐러리는 러닝메이트를 거절했다. 거절한 사유에는 전직 대통령의 부인이 부통령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과 힐러리가 경선 과정에서 진 거액의 빚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2009년,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힐러리에게 국무장관 직을 제안했고 힐러리는 고심 끝에 이를 수락했다. 다만, 미국법상 국무장관이 되려면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힐러리는 경선때 진 거액의 빚을 아직도 해결못한 상황이었다. 이 문제는 드라마 《어글리베티》의 주연배우이자 힐러리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아메리카 페레라가 열성적으로 기부금 모금에 나서준 덕에 해결되어서 힐러리는 국무장관에 취임할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후반, 차기 대선에 나설 거냐는 질문에 국무장관직을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했다.
하지만 2016년 대선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Hillary Clinton 2016! 페이스북 페이지(물론
비공식)도 있다.일단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원사격을 받았기 때문에 재선될 경우 어떻게든 클린턴 전 대통령을 배려할 수밖에 없고 이미
대통령을 지낸 클린턴 전 대통령을 배려한다면 그 배려의 결과는 힐러리의 2016년 출마 지지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다만 이 문제는 아직
먼 이야기이기 때문에 좀더 두고봐야 할듯 하다. 근데 2016년이면 칠순이 가까워지는데
다만 문제는 힐러리의 건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힐러리는 바이러스성 위질환으로 쓰러지는 과정에서 뇌진탕까지 겹쳐서 2주 정도 요양한 상황이었는데 다시 혈전 증세로 입원했다고 한다. 일단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존 케리가 힐러리의 뒤를 이어 국무장관이 되었으므로 휴식기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힐러리의 오랜 참모그룹들이 2008년 경선이후 와해되어 힐러리가 대선에 재도전한다 해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힐러리의 참모들은 힐러리의 경선패배에 큰 내상을 입었고 힐러리가 오바마의 국무장관 제의를 수락하자 힐러리에게 환멸을 느끼고 뿔뿔히 흩어졌다는 것. 힐러리가 대선에 재도전 하려면 우선 와해된 참모그룹부터 복구해야 하는 과제가 있을것으로 보인다.
2013년 6월 10일에 트위터를 개설했다. 사실 계정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팔로 기능을 차단했다가 그것을 오픈한 것. 하룻만에 26만 명이 팔로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런 행보는 힐러리가 차기 대권 출마의 포석을 놓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6월 13일에는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의 행사에 참석해 자신이 국무장관 퇴임 후 세 가지 이슈에 관심을 집중할 것이며, 그것은 '유아발달, 경제성장, 여성의 정치참여'라고 밝혔다. 세간에는 여성의 정치참여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대권 행보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국정과제를 큰 틀에서 제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남편 빌 클린턴과 딸 첼시도 때를 맞춘듯이 적극적인 대외활동에 나선 것도 힐러리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중.
아직 이르긴 하지만 차기 미국 대선의 예비 지지도 조사에서도 힐러리가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아직 힐러리는 대선 출마를 분명히 밝힌 것도 아니고 공화당에 딱히 중량감있는 차기 주자가 부상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는 몰라도 미국 NBC는 힐러리를 다룬 미니시리즈 제작을 발표했고[3]
CNN 계열의 CNN 필름은 2014년에 힐러리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이리
되자 공화당에서 발끈하고 나섰는데, 특정후보 밀어주기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중단하지 않으면 프라이머리 토론회에 NBC와 CNN의 참여를
막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드러냈다.
한때 공화당 차기 대선 후보이자 현 뉴저지 주지사인 크리스 크리스티에게
지지율이 밀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크리스티가 뉴저지 포트리(Fort Lee) 시의 시장에게 정치보복을 하기 위해
뉴욕 맨해튼으로 연결되는
조지 워싱턴 다리를 의도적으로 막았다는 의혹, "브리지게이트"가 떠오르면서[4]
다시 크리스티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h
ttp://tkctv.com/news/boardDetail.asp?pBoidx=6684&pPage=1&pBoardType=NEWS)
한편, 이렇게 대통령을 향해 거침없는 행보를 하던 힐러리에게도 대형 악재가 발생했다. 30여 년 전 변호사 시절에 여아 성폭행범을 유죄란 걸 알면서도 감형시켜준 걸 자랑한 [육성 테이프가 공개](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 =sec&sid1=104&oid=437&aid=0000044030)된 것. 어린이, 여성에 대한 인권 신장을 기치로 하는 힐러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암초를 만난 셈이다. 평소 자신이 주장하던 가치관과 모순됨과 동시에,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미국에서 대단히 민감한 이슈인 소아 성폭행이라는 점이다. 힐러리 지지층의 기반이 '아이를 가진 여성'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선을 넘어, 앞으로의 정치생명도 위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015년 4월 12일 (미국 현지 날짜) 공식적으로 대선에 출마할 것임을 발표했다. https://m.youtube.com/watch?v=N708P-A45D0
[[edit](http://rigvedawiki.net/r1/wiki.php/%ED%9E%90%EB%9F%AC%EB%A6%AC%20%EB%A 1%9C%EB%8C%90%20%ED%81%B4%EB%A6%B0%ED%84%B4?action=edit§ion=7)]
중국은 힐러리 회고록을 [금지했다.](http://m.news.naver.com/read.
nhn?mode=LS2D&sid1=104&sid2=231&oid=421&aid=0000895937)
빌과 힐러리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정치적 동맹이다 등등 말이 많지만 백악관 시절 일을했던 사람들이 은퇴한 후에 써놓은
책을 보면 아닌듯 하다. 한예로 빌과 힐러리가 둘만 있을 때는 참모들이 반드시 노크를 한 후에 들어갔다고... 대통령 각하와 영부인 각하께서
십대처럼 격렬하게...하고 있던 것을 목격한 참모가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목격하고 나서 관타나모수용소
끌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참 민망했다고).
힐러리가 정치인으로 있는 시절에 사망(내지 부상)한 정치인들 이 꽤 많다.(상당히 많다... 음모론이 괜히 생긴 게 아닐 정도로)
대중적인 이미지가 한때 상당히 안 좋았다. 미국의 한 투표에서 지난 천년간 가장 사악한 인물에서 이디아민, 사담후세인을 제치고 6위에 랭크되기도 했다고.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며 2012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서 외교의 아이콘으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이미지가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올라간 듯.
하지만 현재 2014년, 힐러리가 차기 민주당 대선주자로 각광받고 있지만 수많은 미국의 젊은 진보층은 힐러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있는
경우가 많다. 공화당과 마찬가지로 대기업들의 노예가 된 민주당의 이미지를 거의 대표 격으로 떠안고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에 찬성표를 던진건
덤. Mother Jones같은 진보 언론페이지에 보면 심상찮게 "힐러리는 내 표를 받지 못할것이다" 내지는 "(공화당은 안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뽑겠지만, 절대 이상적인 대표가 아니다" 같은 반응을 볼 수 있다. 이런 미국 내의 다른 진보들은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 상원의원[5]
과 엘리자베스 워렌 (Elizabeth Warren)을 드림티켓으로 보고있다. 실제로 둘은 대부분의 민주당
의원들보다[6]
사회, 경제적으로 훨씬 진보적인 정책을 주장한다. 이는 힐러리 스스로 대선에 나갈 생각이 있다면 확실히 고쳐야할
이미지이자, 개선해야할 행보.

[[JPG external image]](http://i0.kym- cdn.com/photos/images/original/000/280/609/55b.jpg)
'국무장관 여사'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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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을 2016년 대통령으로
롬니야, 넌 좀 짜져있어
G6 안에서 시크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사진에서 포풍간지를 뿜어내어 또 한번 필수요소가 되었다.
힐러리 여사의 억양은 미국 중서부 지역 억양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캘리포니아식 억양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약간 색다르게 느끼게 들릴 듯. 그리고 위엄있는 말솜씨와 분명한 자기주장의 능력자이다. '낙태'에 찬성한다는 이유로 힐러리를 궁지에 몰아넣으려던 상대 공화당 의원을 역관광시키기도 한다.
위안부에 대해서 개념찬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안부 대신 아예 성노예라고 불러야 한다고.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9515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 정치인이지만, 전 주미 러시아 대사이며 러시아의 현 외교부 장관 세르게이 빅토로비치 라브로프는 힐러리와 몇 마디 대화를 하고 나서 그녀를 "외교에 무지하다"고 디스했다...사실, 역대 미국 외교가 인물중에서 러시아의 높은 평가를 받은 인물자체가 매우 드물다. 조지 케넌 이나 애치슨에게도 뻐큐를 날린 곳이 러시아 외교가...오오 대륙의 기상!
\----
[1]
당시 오바마는 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덕분에 플로리다에서는 힐러리와 "Uncommitted"가 대결을 벌였다.[2]
슈퍼 화요일에 시행해야 된다는 전국 위원회의 말을 씹어서 위원회 측에서 대의원 투표권을 박탈해 버렸다. 나중엔 명당 0.5표씩 카운트 되게 조정이 되기는 하였다.[3]
그런데 주연배우가 힐러리 본인과는 달리 섹시한 이미지의 다이앤 레인이라 뒷말이 많다.내 힐러리가 이렇게 섹시할리가 없어?[4]
조지 워싱턴 다리는 힐러리를 돕는 다리?[5]
사민주의자이다[6]
버니 샌더스 의원은 무소속(I- Vt)이다. 하지만 만약 언젠가 대선에 나간다면 민주당쪽에 합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