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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헌.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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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憲/羅獻[1](? ~ 270년)

삼국시대 촉한서진의 무장. 자(字)는 영칙(英則).

촉한의 3세대 장수. 아버지 나몽은 난을 피해서 촉으로 왔는데 관직이 광한태수까지 이르렀다. 신동끼가 보여 13살에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렸으며, 초주한테 가르침을 받았는데 초주의 제자들은 그를 자공이라고 높여 불렀다고 한다.[2] 호방하고 쾌활하면서 엄정한 성품을 갖고 있어서 선비를 대우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진수와 비슷하게 좀 굽히지 않는 성격을 갖고 있어서 많은 이들이 황호한테 아부했지만 나헌은 따르지 않아서 황호가 나헌을 파동태수로 좌천시켰다. 또한 등지비의처럼 오나라에도 사신으로 갔는데 나라 칭찬을 받았다.

264년, 영안을 2000명의 병사로 지키고 있다가[3] 유선의 항복으로 촉한이 망하고 사람들이 패닉을하자 성도에 문제가 있다고 한 사람의 목을 베면서 혼란을 안정시켰다. 이후 유선이 쓴 칙서를 받게 되자 자신의 병력을 통솔하여 도정에 3일간 있었다.[4]

촉한이 망하자 나라는 겉으론 도움을 준다고 하지만 속으론 나헌을 공격하려 하자, 나헌은 **"우리 조정이 기울어져 넘어졌고 오는 순치[5]의 관계에 있건만 우리의 어려움을 애석히 여기지는 못하고 맹약을 배반하고 이익을 구하려 하니 옳지 못함이 심하다. 또한 한은 이미 망하였으니 오가 얼마나 오래 갈 것이라고 내가 어찌 오에게 항복하여 포로가 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였다. 이때 성을 보호하고 갑옷을 고치면서 절의를 가지고 노력하니 분격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오나라는 당시 종회강유가 성도의 난의 실패로 제거되고 등애도 아들 등충과 함께 제거되어서 촉을 빈땅 취급한 모양(…).[6] 오나라는 군사를 익주로 보냈으나 파동(나헌이 있는 곳)에서 굳게 지켜내 오나라 병사들의 진군을 막아냈다.
오는 이를 보고 무군장군 보협(步協)을 서쪽으로 보냈다. 나헌은 이를 막을 수 없다고 여겨서 참군 양종(楊淙)을 파견하여 안동장군 진건한테 도움을 요청하러 보낸 뒤 영안을 공격한 보협과 싸워서 대파했다.
손휴는 화가 나서 오나라 최후의 명장으로 불리는 **육항**을 3만 대군과 함께 파견해서 영안을 포위한 병사를 증가시킨다.

나헌은 육항의 3만 대군을 6개월이나 막아낸다.[7] 6개월이나 버텼지만, 구원병이 아직 못 와서 성 안의 절반이 질병을 앓았다. 어떤 사람이 나헌한테 성을 버리자고 간언하니 나헌은, "나는 성주이고 백성들이 우러러보고 있다. 위태로운데 편안하게 할 수 없으면서 이를 버린다는 것은 군자가 할 일이 아니다. 여기에서 목숨을 끝마치겠다."[8] 마침내 진건이 진왕(사마소)에게 요청하려 호열을 2만 대군과 함께 파견해 서릉을 공격하자 264년 7월에 오나라 군사는 퇴각했다.

군의 진군을 막은 공로로 에서도 옛 책임을 그대로 받고, 능강(陵江)장군[9]의 칭호를 얻는 것과 더불어 만년정후(萬年亭侯)에 책봉되었다.

268년 3월에 화림원에서 집행된 연회에 참석했는데, 사마염촉한의 인물 중 누가 뛰어나냐고 하자 진수,[10] 제갈경,[11] 상기, 두진, 수량, 고궤, 여아, 허국, 비공,[12] 진유[13]를 천거하고 사마염은 이들 모두에게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 임지에 돌아와서 오나라를 습격해서 무성을 빼앗고 오나라를 토벌할 계책을 상주했다고 한다.

태시 6년(270년)에 죽으니 안남장군으로 추증되고 열후(烈侯)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아들 나습은 작위를 이어 능강장군에 임명되고 아버지의 부곡을 이끌며 작위가 광한태수까지 이르렀지만 요절했다고 한다.[14] 나습의 아들 나휘는 순양내사로 있었지만 영가 5년(311년) 영가의 난 때 도적 왕여에게 피살되었다.

그의 조카로는 나상이 있다.

http://kongming.net/11/i/p/port_lg/175-Luo- Xian.jpg

[JPG external image]

삼국지 9~삼국지11

![나헌12.png](//rv.wkcdn.net/http://rigvedawiki.net/r1/pds/_eb_82_98_ed_97_8c/%E B%82%98%ED%97%8C12.png)

[PNG image (251.69 KB)]

삼국지 12 일러스트

10배넘는 육항을 상대로 최소한 6개월을 버텼다는 점이 반영되어 대대로 통솔은 후기시나리오장수들 중에선 단연 탑급.

삼국지 9에선 통솔력이 80이나 돼서 강유, 부첨와 더불어 공명 사후 촉한의 셋뿐인 희망이다. 병법들도 쓸만한 분투, 연사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86/67/75/68/73. 나헌이 처음부터 등장하는 PK전용 고전분투 시나리오에서 나헌보다 통솔이 높은 장수는 등애, 강유, 육항, 양호 단 4명이며 곽회와 같은 통솔이다. 물론 무력, 지력 둘 다 조금 적당히 높은지라 저 먼치킨들과 효용도를 비교하긴 무리지만.

삼국지 11에서는 통솔력이 10보다 1깎인 85를 마크했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다 올라서 70아래 능력치가 하나도 없어졌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상향. 아쉽게도 무력이 비교적 낮아서 전투형으로 쓰긴 조금 애매하다. 게다가 특기가 잉여인 철벽이지만 동시대 장수들 99%가 무력도 어정쩡하고 통솔은 바닥인 잉여들이 대부분이여서 활약할수 있다. 노병S, 공성S. 후반부 시나리오 중 하나에서는 무려 군주로 나오는데 촉이 서진한테 먹히고 나서 홀로 오나라와 맞장 뜬 상황을 시나리오로 만들었다 -_-. 예상 할수 있듯이 상상을 초월하는 난이도. 삼국이 정립된 이후에 제일 어려운 진영이라고 많이 여겨지는 맹획 진영보다도 더 희망이 없는 시나리오다.

능력치와 별개로 코에이의 삼국지시리즈에서 저 위의 일러스트를 엄청 우려먹었다. 게다가 후반부 인물들중 꽤 많이 빠진 삼국지12에서는 아예 짤렸다가 PK에서 다시 등장한다. 능력은 후반기 시나리오에서는 S급으로 강유, 부첨와 함께 촉의 희망이고, 영웅집결에서는 강주에서 등장, 유언군의 A급 장수가 된다. 군사 특기가 있어서 비책을 쓸 수 있다. 능력치는 85/70/72/78 전법은 궁군병격으로, 성도의 연노,엄안, 장임 등의 궁병 장수와 결합해 적군을 일점사하면 맵병기급 화력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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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양양기에 따르면 나헌에서 헌자가 獻이라고 하는데 진서, 자치통감, 정사 삼국지 본전에서는 憲이다.
  • [2] 13살에 글을 쓴 것은 촉서 <곽준전>과 진서 <나헌전>에도 공동으로 보이는 내용이지만 초주 관련 기록은 진서가 출처다.
  • [3] 자치통감에선 영안이 처음부터 병력 2000가지고 수비한 것처럼 기록되어있는데 진서 <나헌전>의 기록과 촉서 <곽준전>을 보면 263년 위나라의 촉한 침공때 나헌의 상관이었던 염우가 영안의 병력을 이끌고 가서 2000의 소수병력만 남은 것이라고 한다.
  • [4] 도정에 3일간 있던 것을 보고 나헌이 "우리 황제 다치게 하면 알지!?"라는 메세지를 보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 [5] 입술과 이빨의 관계를 말함. 즉 서로 돕는 관계
  • [6] 실제로 빈땅 맞기는 하다. 강유 등 항쟁파는 종회와 함께 쓸려나가고 극정 등 문관들은 중원 지역으로 이주.
  • [7] 진서 <나헌전>에 의하면 1년을 넘게 방어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자치통감과 촉서 <곽준전>을 보면 6개월이 맞다.
  • [8] 자치통감에선 나헌이 6개월을 버틴 뒤 이 발언을 하는데 <나헌전>에서는 1년 넘게 버틴 뒤 이 발언을 하였다.
  • [9] 5품의 직책이지만 장강 유역을 능멸하란 뜻을 가진 작위이니 오나라를 처바르라라는 뜻을 가진 직책이다
  • [10] 정사 삼국지를 작성한 그 진수가 맞다.
  • [11] 제갈량의 손자
  • [12] 촉한의 비의의 아들.
  • [13] 촉한의 진지의 아들.
  • [14] 진서 <나헌전>에는 별 말이 없고 요절했다는 것은 <곽준전>의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