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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문제.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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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종교, 종교인에 대한 내용은 매우 민감합니다. 편집할 때는 문화상대주의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작성해 주시고,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은 작성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Contents

  1. 개요
  2. 지금까지 제시된 악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그 반박들

2.1. 그나마 여기가 가장 좋은 세상이다.

2.2. 자유의지 때문이다.

2.3. 악은 경고이다.

2.4. 신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2.5. 악은 선의 결여이며,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2.6. 악이란 건 인간의 관점이고 신의 관점에서는 선이다.

2.7. 기타

  1. 결론
  2. 관련항목

"파리들의 장난꾸러기 소년들에 대한 관계가, 우리의 신들에 대한 관계와 같다. 그들은 장난으로 우리를 죽인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 왕》 中

"...나는 더 이상 종교적인 주장들과 삶의 현실들을 조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세계의 상황을 볼 때 선하고 전능한 신이 존재하는지, 그 분이 이런 세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지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나는 선하고 친절하게 행동하기 원하는 통치자가 있고, 그가 이 세상을 책임진다는 사실을 순순히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신은 신이 사랑과 능력이 많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머니를 위해 꽃 몇 송이를 손에 들고 집으로 걸어가던 어린 소녀가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여 즉사했고 신이 그것을 가로막지 않은 것에 대해 당신은 설명해야 한다..."

ㅡ 바트 어만(Bart D. Ehrma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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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Problem of evil. 절대선신과 악이 공존하는 것에 대한 모순을 다룬 종교 철학, 신학 상의 문제.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으로 선한 이 있는데 왜 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에 대한 일반론과는 다른 일종의 고유명사화가 되었다. 한편 신학에서는 이 주제를 다루는 분야를 신정론(theodicy)이라고 한다.

데이비드 흄이 정리했다고 알려진 요약은 다음과 같다.

1. 신은 전지하다. [2]

2. 신은 지선하다. [3]

3. 신은 전능하다. [4]

4. 이 세상에는 악한 행위가 발생하고 존재한다.[5]

5. 1, 2, 3, 4가 모두 성립할 수는 없기에 따라서 여기에는 모순이 발생하며, 이 중에 한 가지는 틀렸다는 결론이 나온다.

1.신이 전지하지 않을 경우

신은 악을 없앨 의지와 능력이 있지만 신이 악이 있는 걸 몰라서 악이 생겼으며 신이 이를 알기만 하면 없애버릴 것이라는 것.

2.신이 지선하지 않을 경우

신은 악을 없앨 능력이 있지만 신이 선하지 않거나 사악해서 악한 일이 발생해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

3.신이 전능하지 않을 경우

신은 악을 없앨 의지도 있고 악의 존재도 알고 있지만, 능력이 부족해서 관여하지 못한다는 것.

1, 2, 3이 다 맞는데 '사실 악은 없었다!!!'라는 설명도 있다.[6]``[7]

논의의 방향에 따라 표현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특성상 신이 2명 이상인 다신교의 경우 사악한 일을 악신의 탓으로 돌리면 되기 때문에 악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8] 악의 문제란 일반적으로 인격신을 믿는 일신교(Monotheism)적인 종교에 해당하는 문제다. 따라서 유일신교인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에서도[9] 난제 중 하나로 꼽는데, 종교의 특성 상 교리내에서는 '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은 당연히 피하고 있다. 반대로 유일신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악의 문제를 들어 전능하고 전선한 유일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세상에 악한 신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억지로 표현을 만들자면) "악신론"(dystheism/misotheism)이라고도 불리곤 한다.

이에 대해 악의 문제를 가지고 신의 부재에 대한 증거로 간주하는 것은 오류라는 식의 주장도 있다. 즉, 악의 문제는 일신교에서 주장하는 신이 가진 속성 중에 양립 불가능한 속성이 존재함을 주장할 뿐 신이 없다는 주장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 가령 한 점은 빨간 색인 동시에 파란 색일 수 없지만, 이걸 근거로 그 점이 없다는 걸 주장할 수는 없으며, 그냥 그 점은 빨간 색이거나 파란 색일 뿐이라는 것. 하지만 이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실제로 그 점이 존재한다는 근거라고는 '빨간색이면서 동시에 파란 색인 점이 존재한다'는 주장 뿐이라고 한다면, 그 주장의 모순점을 밝힘으로서 간접적으로 그 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종교측의 주장들 뿐인 현실에서, 그 종교측의 주장 내에 존재하는 모순점들을 밝혀내는 것 역시 충분히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고, 이는 곧 부재의 간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10] 물론 이것이 '신'에 대한 절대적인 부재의 근거는 될 수 없지만,[11] 적어도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부재 근거로는 충분히 쓸만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부재의 근거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선 헴펠의까마귀 항목을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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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금까지 제시된 악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그 반박들 ¶

이에 대해 고대로부터 여러가지 답안들이 제시되어 왔으나 아직도 기존의 종교 교리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근래에 기독교계 내부에서는 대체로 자유의지 때문이라는 답변이 가장 보편적이지만 여전히 헛점이 많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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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나마 여기가 가장 좋은 세상이다. ¶

신의론(神義論)이라고도 번역되는 이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theos(神)와 dike(義)이며 ‘신의 의로움’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악으로 인해 생겨나는 신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려는 주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변신론에서 연구의 주요한 촛점은 “우주에 명백히 존재하고 있는 악의 실재에도 불구하고 신의 선(善)과 섭리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이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악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 많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숙고해 왔다.

페르시아 종교와 같은 이원론에서는 세계란 선과 악이 서로 투쟁하는 전쟁터이고, 결국에는 선이 승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일신교의 경우에는 신의 전능과 사랑이 현세의 악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오리게네스는 악의 존재를 피조물이 자유를 남용한 죄의 결과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계몽주의시대의 회의주의자 베일(P. Bayle, 1647-1706)은 매력적인 변증법을 사용하여 악이 실재한다는 사실과 신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라이프니츠(C.W. Leibniz)는 그의 저서 ≪변신론≫(Essais de Theodicee, 1710)에서 이에 답하여 현실의 세계는 가능한 한 최고선의 세계이고, 회화(繪畵)에서 그림자가 전체의 미와 조화를 산뜻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처럼, 가시적인 악은 보다 높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정되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 그의 극단적인 낙관론을 피력하였다. 이렇게 변신론이란 단어는 라이프니츠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근대에 들어오자 자연적인 악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악이 크게 부각되면서 변신론은 신학적인 중심논제의 위치에서 밀려났다. 즉 사회악이 신의 사랑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근대신학은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가 관철될 수 있음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히 1, 2차 세계대전은 인간성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뿌리째 뽑아 버렸기 때문에 인간생활에 존재하는 악의 실재와 신의 사랑에 대한 문제가 논쟁의 촛점이 되었다. 이제 변신론은 이 문제의 중대성에 밀려 더 이상 논급되지 않는다. 다만 신에 대한 형이상학의 한 부분적 학문인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속에서 언급되고 있다.
-가톨릭 대사전, <변신론> 항목 中-

'변신론' 혹은 '신의론'이라고 번역되는 주장이다. 독일의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는, 여기가 그래도 있을 수 있는 세상 중에서는 가장 좋은세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현대신학에선 거의 폐기된 주장이다.

  • 볼테르는 자신의 풍자소설 《캉디드(Candide)》에서 라이프니츠의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없음을 보였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온갖 불행을 겪지만 자신이 그래도 가장 행복하다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 애초에 신에 비하면 지성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인간조차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할 수 있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신이라는 존재가 그런 세계를 상정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현실에선 한낱 인간들조차 을 만들고 치안을 확립하며, 도덕윤리를 교육하여 사회를 발전시키고 있다. 인간도 할 수 있는 일을 전지전능한 신이 못한다는 것인가? 인간 사회의 변화는 지금 이 세상이 완성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이 주장은 그 자체로 신의 전지전능함에 한계를 인정하고 있는 셈.

  • 당시의 계몽주의 지식인들에게 라이프니츠의 변신론이 가장 크게 반박받은 것은 이미 1755년 포르투갈 대지진이라는 반례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해당 항목 참고. 아닌게아니라 이 사건 이후로 유럽인들은 세계관이 완전히 뒤흔들려서 "섭리하는 선한 신" 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엉망진창이 되었고 계몽주의가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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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자유의지 때문이다. ¶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인간이 그 자유의지를 사용했기에 악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기독교 내에서는 악에 대한 해명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논점들을 가지고 있다.

  • 자유의지의 존재유무
    자유의지의 존재유무부터 확실치 않다. 자연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될 가능성이 있는 개념이다. 게다가 자유의지는 전지전능이라는 속성과 양립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인간은 자유롭지 않은 것이고, 인간이 스스로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한 것이라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이 있지만, 문제는 이런 반론에 의해 새로운 문제점이 생긴다는 점이다. 바로 과연 이렇게 누군가에게 허락받은 자유의지가 진정으로 자유의지인가 하는 점이다. 또한 일부 종교인들은 자연과학은 세상의 일부만을 해석하고 증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영적영역이나 신의 영역을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냐고 주장하는데, 자연과학 역시 꾸준히 영역을 넓혀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한 대상들이 자연과학의 영역 밖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과거에는 날씨조차도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신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잊지 말자.

  • 기회의 문제
    어째서 자신의 피조물을 사랑하사 그들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길 바라는 전지전능한 신은 악을 행할 가능성이 있는 자유의지를 주었는가? 마치 버그없이 프로그램을 만들수 있는 개발자가 50%확률로 에러를 내뿜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뻑나면 "이럴줄 알았지. 넌 나쁜 프로그램이야."하며 프로그램을 삭제하는것과 다른점이 없다.

  • 방관하는 신
    왜 전지전능한 신이 자유의지를 만들고 우리가 잘못된 길로 들어가는데 당장 모습을 드러내어 바로잡지 않고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약속만을 부르짖는가? 지옥에 집어넣어야할 영혼의 할당량이라도 있는가?

  • 선의의 피해자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하사하였고 어떤 미친놈이 자유의지를 십분 활용하여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자살하였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 살던 선량한 한 사람은 얼굴과 몸에 2도 화상을 입었고 겨우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선량한 시민은 남은 평생동안 고통받으며 살아가겠지.

신이 전지전능하고 선하다면 어찌하여 이 선량한 시민을 구해주지 않는가? 그 선량한 시민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불타오를 아파트에 살고있었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화상을 입은 것이기 때문에 신에게 그 책임이 없다는것인가? 한낱 인간조차 무고한 사람들을 보호하려 드는데 인간을 만든 전지전능한 신이 자신의 아들딸들이 고통받는데 그저 보고만있다 이 소리를 하는건가?

악인은 심판받고 지옥불에 불타고 선인은 신의 나라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왜 지금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 자유의지?
    모든 악이 자유의지로 인해서 나타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이코패스만 보더라도 순수하게 자유의지 때문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이런 답은 악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 국한하고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만하다.

오히려 현실 속의 악은 종종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인간의 욕심은 본능이다. 결국 인간을 만든 것이 신이라면 역시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의 결함조차 창조한 신이 인간에게 책임을 모두 전가하려 드는 것이 어딜 봐서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이란 말인가? 어딜 봐도 궁지에 몰린 인간의 변명이다.

이같은 논리에 대하여 기독교에서는 악으로부터의 구원을 신의'은혜'로 보느냐 아니면 '책임'으로 보느냐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설명한다.

야생에서 굶주림과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새들을 사람들이 데려와서 돌보아 준다고 하자. 야생에서 새들이 굶주리고 천적에 의해서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이를 '악'이라고 부르고 신에게 책임을 묻는다.

기독교에서는 사람들이 악에서 벗어나서 완전한 선의 삶과 영생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을 벗어나는 일이고 전적으로 신의 '은혜'로 인한 것이라 해석된다. 사람들이 일부 선택된 새들을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풀 수 있지만 모든 새들을 돌보아 주지 않는다고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 않는가?

물론 이러한 설명도 헛점이 많아서 무수히 까이고 있다. 야생의 새를 인간에 비유하고 새를 돌보는 사람을 신에 비유했는데, 애초에 새를 사람이 만들었던가? 아니면 천적을 사람이 만들었던가? 모든 것의 창조자인 신을 새나 천적의 창조자가 아닌 사람에 비유하는 것 자체가 전형적인 잘못된 유추의 오류인 것이다.

무신론자들과 기독교인과의 기본적인 의식의 차이는 현실에서의 죽음과 고통이 '악'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갈리게 된다. 무신론자들은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사후의 보상으로 현실에서의 고통이나 죽음을 상쇄할 수 없다고 보는 반면에, 기독교인들은 사후의 영생과 구원을 믿고 현세의 고통이나 죽음을 신의 의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어쨌든 선과 악에 대한 판단기준은 문화적, 사회적, 시대적 배경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의지와는 무관하게 악행이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엔 선악에 과연 절대적 기준이 있는가 하는 점이 먼저 문제가 된다. 종교인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악의 판단기준이 아니라 신의 뜻을 선의 기준으로 삼는다고는 하는데, 문제는 신의 뜻이랍시고 나오는 종교 교리조차도 문화적, 사회적, 시대적 배경에 따라 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 자유의지가 있든 말든 '그럴 상황'을 아예 주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어보자. 아이들이 넘어저도 다치지 않게 부드러운 바닥을 깔고 미끄럼틀을 만들고 그네를 설치하자. 그네는 인기가 많으니까 1개만 설치하고 그네앞에 몽둥이와 칼을 두고 서로 싸워서 이긴쪽이 그네를 타게 하는거야.

...신이 인간을 사랑하고 전지전능하다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이 서로 싸우지 않도록 안배하는것이 옳다. 식량이 부족해서 싸우지 않도록 모든이들에게 만나를 베풀고 땅이 부족하지않게 아름다운 목초지를 약속해야한다. 그러나 재화는 늘 부족하고 불공평하게 분배되며 이로인하여 싸움과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신이 하는 행동은 어린아이 2명을 3일동안 굶주림에 방치하고 서로 싸워서 이긴쪽에게 빵을 쥐어주며 "죄를 지었으니 지옥에 가야지?"하며 지옥으로 밀어버리는것이겠지.

자유의지고 뭐고, 상황이 안 좋으면 악을 행할 수 밖에 없다. 전지전능하고 선하신 신이 있다면 이렇게 자유의지를 줌과 동시에 상황 자체를 통제하여서 더욱 좋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앞으로 위험에 처할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막을 힘도 갖추었지만 상황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런 존재를 선하다고 하기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 전지전능한 신과의 모순
    특히 유일신을 기반으로 한 종교에선 신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신이 알아야 한다. 즉 신이 전지전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이 창궐하는' 자유의지를 주었다면 신은 실제로는 전지전능하지 않든지, 아니면 전지전능하지만 해결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든지 한다는 자체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자유의지를 주고 그것에 고통을 받고 마침내 자유의지에 의한 악을 극복하는 과정의 신이 계획한 인간의 성장'이라는 반론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모순이 된다. '전능'한 신이 일부러 자신이 '싫어하는' 타락과 악을 가지고 인간을 육성한단 말인가? 그리고 더 나은 방법을 알고 실천할 능력이 분명 있을텐데(전지전능한 신이니까) 일부러 고통스럽게 한다? 이건 절대선이라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인간을 너무도 사랑해서 어쩔 수 없이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것도 모순이다.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당연히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결과를 주기 전부터 알 수 있어야 맞다. 그런데 이러한 점을 알고서도 그랬다면 신이 고도의 새디스트라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일례로 어지간한 막장 부모라 할 지라도, 아이가 총기를 좋아한다 해서 총기를 아이에게 주고 방치하지 않는다. 허접한 인간도 이럴진대 전지전능하고 절대선이며 인간을 사랑한다는 신이 총기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악과 그것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자유의지를 내버려둔다? 앞뒤가 맞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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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악은 경고이다. ¶

악은 신이 인간이 무엇인가를 잘못하고 있을 때 보내는 일종의 경고이다.

  • 악은 경고가 아니라 결과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경찰들은 살인범을 찾아 감옥에 집어넣고 피해자의 가족은 세상의 동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피해자의 가족의 슬픔이 사라지지 않으며 죽은자가 돌아오지 않는다. 신이 경고를 보냈는데 왜 인간이 피해를 받아야 하는가.

  • 경고는 화를 피하기 위함이다.
    경고는 정신을 환기시키는 행동이다. 어린아이가 불타는 집에 들어가려고 하면 아이를 끌어내서 그러지 말라고 교육해야지 몽둥이로 다리를 부러트릴 필요는 없다. 전지전능한 존재이면 좀 더 제대로 경고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 전지전능하고 선하신 신이 악을 보냈다?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악'이 아니던가? 그게 아니면, 신을 안 믿으니 악을 보냈다는 것인가? 결국 신이 악을 조장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만약 그런 신이 있다면 말 그대로 악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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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신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

좀 이상한 주장이다. 신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것이기에 악하다고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캐런 암스트롱이 저서 《신을 위한 변론》에서 주장한 방법이다. 여기서 신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떠한 것이라고 표현함으로서 신을 악의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자토스?

하지만 암스트롱은 자신의 동일한 저서에서 "신은 절대적인 선과 아름다움, 질서, 평화, 진실, 정의"의 상징이라고 언급하였다. 분명히 동일한 책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암스트롱의 견해를 채택하는 순간 신은 악의 문제를 피해가는 동시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신이 절대선이 아니라면 인간이 신의 뜻을 윤리의 기준으로 여길 이유가 없다. 선하지 않은 신에게도 복종해야 한다면 인간은 진심으로 그를 믿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우리보다 강해서 굴종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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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악은 선의 결여이며,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

(중략)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내재하는 ‘악’의 사실을 설명하기 어려웠었다. "왜 신은 만든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과 천사가 그 자유를 악 때문에 남용함을 막지 않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노는, 악이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선’한 것으로서 만들어진 의지가 자신의 놓여 있는 질서에 배반할 때에만 악이 존재한다는 것, 이 의지의 반역 즉 ‘죄’를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그 악에 대하여 당연한 벌을 받게 되며, 이리하여 악도 신의 섭리 안에 들어 있음을 밝혔다. 성서 가운데에는 신의 전능과 악의 존재에 관한 논리적인 해석이 제공되어 있지 않으므로, 근대에 와서 여러 각도에서의 신학적인 주장이 펼쳐졌다.

(중략) 여기서 특히 가톨릭에서 해석하고 있는 ‘악’이라는 용어를, evil과 wrong의 경우 두 가지로 나누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evil : 당연히 있어야 할 선, 자연히 본질적으로 속해 있어야 될 선의 결여를 ‘악’(evil)이라 한다. 즉 자연히 갖추어져 있고, 어떤 존재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을 이 경우의 ‘악’으로 본다.

② wrong : 바르지 않은 것, 틀린 것을 이 경우의 ‘악’(wrong)이라고 말한다. 인간행위에 적용하였을 때, 당연히 나아가야 할 길, 인간의 최종목적인 천국에 다다르는 길에서 벗어남을 지칭한다. ①②가 마찬가지로 ‘악’의 의미로 쓰이지만, 엄격히 말해서, ‘wrong’은 ‘진리’에 반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evil’은 ‘선’에 반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가톨릭 대사전, <악> 항목 中-

재미있는 주장이다. 현재 가톨릭의 주류를 이루는 설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는 신학자들.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데 "선은 옷이고, 악은 옷에 생긴 구멍이다."와 같은 비유를 통해 선과 악의 관계를 설명하려 하는 경우도 있다.

악은 사실 존재하지 않고 단지 선이 없는 상황을 뜻할 뿐이다. 즉, 악은 선의 결여(privatio boni)이다.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명사를 부여해서 그것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가령 뜨거운 주전자에 대해 '열이 있다'라고 표현하는 경우를 보자. 이 때 열은 마치 물건처럼 취급되지만 사실 열이란 대강 말해 분자의 운동에 따른 현상이며 물건의 일종이 아니다.

악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악'이라고 호칭하기 때문에 악이 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악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단지 선이 결핍되어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은 어둡다. 이는 '어둠'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빛이 거기에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선과 악의 관계도 이와 같다.

나름 참신하고 좀 깨는 발상으로 해결을 시도하긴 했지만 이 주장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도 많다. 우선 첫번째 문제로 선의 부재가 악일 경우, 자칫하면 역설적이게도 선과 악을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이해하게 될 위험성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으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에 성금을 낸다면 '선'이다. 그렇다면 여기를 지나쳐버리는 사람은 악한 것일까? 이 사람을 악하다고 하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뭇거릴 것이다. 논리적으로 명료하지 못할 뿐더러 '그러면 선은 무엇인가?', '선의 결여는 어떻게 정의하는가?'라는 새로운 의문을 야기하게 된다.

또한 이 주장은 결국 '자유의지'와 거의 똑같은 비판을 받게 된다. 즉 신이 인간에게 허락해준 자유의지로, 인간이 '선이 결여된 언행'을 하여서 타락하게 되는데 왜 신이 이것을 바로잡아 주지 않느냐는 점이다. 세부적인 비판은 자유의지와 거의 겹친다.

즉 이 설은 "신은 왜 악을 만들었나?"라는 말에 대답은 할 수 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신은 왜 타락하여 선으로부터 멀어지는 인간들을 바로잡아주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답하기가 어렵다. 물론 교단 측에서는 "그래서 존재하는 게 신앙입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럼 "(그리스도교) 신앙을 접할 기회가 없는 사람은?", 그리고 더 나아가 **"그렇다면 신과 관련을 맺지않는 윤리체계, 즉 세속윤리(secularethics)는 불가능한가?"**라는 의문과 반박에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가톨릭의 경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wiki/%EC%A0%9C2%EC%B0%A8%20%EB%B0%94%ED%8B%B0%EC%B9%B8%20%EA%B3%B5%EC%9D%98%E D%9A%8C)에서 언급된 "자기 탓 없이 아직 하느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신다."라는 말[12]로 일정 정도 설명을 꾀하나 그리스도교만해도 타종교인, 무신론자의 구원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종파들이 적지 않을 뿐더러, 선과 종교적 신성은 명백히 개별적이며 신을 매개하지 않더라도 선을 분별하고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충실하다고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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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악이란 건 인간의 관점이고 신의 관점에서는 선이다.

기독교에서 최종적으로 말락 야훼를 부정하면서 내세운 주장. 자세한 건 해당 항목을 참고할 것.

  • 신이 인간과 세상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신의 분신이다
    대다수의 인간은 전쟁보다 평화를, 다툼보다 공존을, 불행보다 행복을 바란다. 이러한 주장을 듣다보면 신의 분신인 인간이 선을 추구하고 신은 악을 추구하는 역전된 결과가 나온다. 무엇보다 정식 종교로 선택된 성경에서도 신의 이름을 걸고 서로 죽이고 미워하며 배척하라고 쓰여있지 않다.[13] 거기에다 이는 특히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자기모순인데, 분명 성경에서 인간의 선악 기준은 신이 내리신 거라더니 이제와서 신의 선악은 인간의 선악과 다르다고?

의외로 이 주장과 반박을 동시에 기반으로 하는 창작물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이 이론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종족간의 가치관 차이로 인한 갈등'이란 클리셰와도 맞물리기 때문. 이 경우 앞의링크처럼 선악의 개념이 다른 초월적 존재 앞에서 무력한 인간[14]이란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로 가거나, 반대로 인간 입장에서 신을 악으로 간주하고 죽여버리는(!) 충격적인 전개가 펼쳐진다. 특히 후자의 경우 **신죽이기**란 클리셰와 연결되며, 이 항목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YHVH가 인류의 적으로서 처단당하는 진 여신전생2가 가장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찌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DC 종교 갤러리에 [올라온 글](http://gall.dcinside.com/list.php?id=religion&page=&keyword=&no=342990 &k_type=&search_pos=/). 단 이에 대해서도 교리상으로는 "오원춘이나 장자 살해에 대한 선악판단은 인간의 것이지, 신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고 반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신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선행을 강요하는가?" 하는 물음이 나올 수도 있다. 덧글 중에서 한 네티즌은 어째서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의 선악잣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었냐는 언급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런 논의에 대해서 전지전능한 신의 뜻은 인간이 이해할 수없다무지에 호소하는 논리정신승리를 반박이랍시고 하는 아Q들도 있지만 당연히 설득력은 없다. 의외로 자주 나오는 종류의 주장인데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자기도 당연히 이해못하고 모르면서 주장하는 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신 관점의 선을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당연히 엉터리로 위에 나온 언급대로 자칭 선하고 전지전능한 신이 스스로 선의 기준을 정했다면서 만든 일개 피조물들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잣대가 어찌 아집이나 독선이 아닌 진정한 선이라 할 수 있을지 문제가 된다. 인간에게 중립적인 존재나 우주와 자연 그 자체를 신이라 가정할 지라도 이런 신은 극복이나 적응 또는 타협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인간에게 선하지 않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악신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더 나아가 전지전능하고 선한 유일신의 부재에 대한 증명으로도 볼 수 있다. 또 신의 뜻을 일개 피조물이 이해할 수 없다는 종류의 주장들은 정말로 신이 인간의 이해 수준을 뛰어넘기에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신앙인들 스스로 변명할 말이 없어서 우기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문제가 된다. 당장 그런 주장을 하는 종교인들은 인간이 아니거나 자신도 인간이라는 점에서 스스로도 이해 할 수 없는 잣대를 선으로 확신 또는 망상하고 믿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타인에게 적용하거나 강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즉 주장하는 자들 스스로도 그들이 주장하는 신의 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니 그들의 정신승리나 망상 말고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알거나 따져볼 방법도 없고 그럴 이유와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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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기타 ¶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 제시한 답이 애매모호하고 사람들을 납득시키지 못하자, 이를 답답하게 여긴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만든 여러가지 이론들도 있다.

대표적인 기타 이론은 혼돈-질서 대립 이론인데, 신은 창조에는 전지전능하지만 질서와 혼돈의 개입 영역에는 전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이것은 '신이 전지전능하다'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정론으로 굳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혹은 이 모든 게 신의 섭리이고 따지고 보면 선도 악도 다 필요했다고 말도 있다. 유다가롯이 예수를 팔았기에 예수가 인류를 구원할수 있었다는 식으로, 결국 인간은 신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라는 주장. 하지만 이렇게 되면 불쌍한 유다 가롯은 하나님으로부터 배신자로 만들어졌고 배신자로써 지옥에 떨어지는 운명이 고정된 것이기에 당연히 명확한 해답이 되지 못한다. 밀턴의 실낙원 같은 경우, 이런 부류로 야훼를 해석해서 루시퍼의 타락도, 아담의 타락도 알았던 것으로 나오며, 대개 이런 주장의 경우 욥기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해 범위를 넓게 잡아놓는 편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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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론 ¶

사실 '절대적인 선(善)'이 무엇인지 증명되지 않는 한 '신이 인간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면서 신만이 알고 있는 절대적인 선에 따라 인간이 악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존재케 했다'고만 해두면 내부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다만 이런 논리는 '절대선신 = 인간의 관점에선 악신'이라는 결론[16]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절대선신의 존재[17]를 증명하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웬만하면 논의를 여기서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온갖 종류의 복잡다단한 설명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이처럼, 이 문제는 초반에 확인한 바 있듯이 "전지란 무엇인가", "선과 악은 무엇인가", "전능이란 무엇인가" 같은 주제들이 먼저 명확히 정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개념들은 그리스도교 신학 외에도 윤리학 및 종교철학, 종교사회학 등의 분야에서 뜨겁게 불타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 주제에 대한 좀 더 심도있는 개관을 원한다면 《신과 인간 그리고 악의 종교철학적 이해》 등의 저서를 추천한다. 불행히도 개신교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룬 책 중에는 애저녁에 논파된 낡은 떡밥들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도 가장 정교한 논의를 진행하는 책으로는 《고통과 씨름하다》 등이 있다.

이처럼 악의 문제는 수많은 철학자들과 윤리학자, 신학자들이 진지하게 논의한 주제이며, 여러 창작자들이 작품을 창작할 때 소재로 삼기도 했다. 심지어 종교에 관심있는 일반인들도 가끔씩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및 신무신론 운동의 출현 등으로 인해, 과거에는 신학자들이나 철학자들 정도만 관심을 가졌던 이 주제가[18] 이제는 흔한 일반인이나 심지어는 청소년들까지도 관심을 갖게 되는 확산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리고 만약 신과 사후세계가 실재할 경우 사후세계에서 신과 독대하게 된다면 인간들의 FAQ 1순위를 꿰차게 될 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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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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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그는 개신교 근본주의 풍토에서 수학했으나 이후 악의 문제로 인하여 신앙을 버리게 되었다. 신앙을 버린 이후에도 그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말하면 "신이시여, 만일 당신이 계시다면 지상의 이 모든 비참한 사태에 대해 어디 변명이라도 좀 해 보십시오!" 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즉, 현대적 의미의 신무신론과 같은 입장인지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 물론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신무신론자가 된 경우도 있으니 단정하긴 힘들 것이다.
  • [2] "신이 전지하다" 는 말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일단 신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안다고 치면 된다.
  • [3] 이 역시 논란이 많다. 여기에서는 신은 모든 악한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 성향을 지닌다는 정도로 하고 넘어가자.
  • [4] 이 말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여기에서는 가능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정도로 하고 넘어가자.
  • [5] 악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일단 "무고한 고통" 으로 정의한다.
  • [6] 이런 논의가 있는 건 맞지만 인기 있는 설명은 아니다. 대부분의 크리스트교에서는 악의 존재를 인정하며, 장 칼뱅을 비롯하여 일반적인 정의는 "신에 대한 불복종 내지는 거부, 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정도로 내려지는 상태이다.
  • [7]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악은 선의 부재(nicht gut)로 보았다.
  • [8] 다만 이 경우 선신이 악신을 없애지 못하므로 선신의 전능함에 있어 문제가 있다.
  • [9] 이 떡밥은 대부분의 유일신교들이 해당하는 문제이지만, 이 문서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그리스도교를 위주로 작성되었다.
  • [10] 예를 들어 어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치자. 누군가가 해당 사건을 창문으로 본 목격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장에 창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는 것 만으로도 그러한 목격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간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11] 앞서의 예시를 통해 보자면, 분명 창문이 없다는 것은 '창문을 통해 본 목격자'의 부재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만, 다른 방식으로 목격한 목격자의 부재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 [12] 교회헌장, 교회와 비그리스도인 中
  • [13] 인간의 손을 들어 불가능한 기적을 행하사 다른 인간과 민족을 죽이거나 배척하는 경우가 있긴하지만...
  • [14] 크툴루 신화에는 인간에게 관심 자체가 없는 건 그나마 다행이고, 아예 선악이고 뭐고 없이 전 인류를 취미로 가지고 노는 극악무도한 케이스도 존재한다. 이 악의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의외로 야훼가 이런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 [15] 어째서 넓게 잡는다는 부분이 서술되었느냐 하면, 결국 욥기에서도 명확한 해답은 내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 [16] 당연히 이 경우를 달가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무신론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 [17] 아무리 절대선신이라도 인간의 관점에서 악하다면 있어서 좋을 일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주의 다른 모든 생물들을 지키기 위해 인간을 멸종시키는 신을 생각해보자. 아무리 숭고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우리 인간이 그런 신의 존재를 반길 수 있겠는가?
  • [18] 인류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악의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서는, 1755년 포르투갈 대지진을 기점으로 한다고도 알려져 있다.